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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루(Habiru)" 입장에서 읽는 출애급기 (7)

이집트를 떠나다

아침 해가 하늘 높이 떠올랐을 때까지 비명소리를 그치지 않았다.

우리는 밤이 새도록 기다렸다.


한쪽에서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언제 떠나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 밤이 지나면 우리는 떠나야 한다는것을 알고 있었다.


파라오의 아들과 이집트 백성들

그리고 가축들에게서 조차

수많은 피를 흘리고,

절규가 하늘과 땅에 가득찼는데

우리 하비루가 이 땅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또다른 화(禍)를 불러 일으킬 것이라고.


아침해가 솟아 오르기 시작하면

일어나서 노동을 하고,

해가 뉘엿뉘엿 서산 뒤로 얼굴을 감추면 

집으로 돌아와서 잠자리에 드는 것이 일상인 우리에게

챙겨야 할 짐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난다는 것 외에

확실하게 정해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현실에서

빈손으로 집을 나서는 일도 간단한 것은 아니었다.


드디어 소식이 전해졌다.

파라오가 모세 앞에서 손을 들었다는 것이다.

하비루가 떠나는 일을  허락했다고 한다.


한쪽에서는 슬픔이 가득해서 처절하게 울부짖을 때

우리는 짐을 싸서 길을 나섰다.

하비루안에는 야곱의 자손들과 다른 지역에서 끌려온 사람들이 포함되었다.


저 앞에 보이지않지만 지팡이를 들고 있는 아론과 모세가 앞장 서고 있었다.

집을 나서는 하비루들.

그러나 모든 하비루가 이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비루 중에는 불평하는 사람들도 상당수 포함되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데...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는데,

 이보다 더 나으리란 보장이 있는가?

 누가 집을 준다고 했는가? 양을 칠 푸른 초장을 약속했는가?

 아무것도 모르고 이렇게 떠나는 것이 과연 옳은가?"


그렇다.

우리 하비루들은 양가감정을 가지고 떠났다.

"과연...파라오가 우리르 그대로 놓아줄 것인가?

 저 강퍅한 마음을 가진 파라오가 복수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이렇게 걸어가지만,

파라오가 말을 타고 달려오게된다면

우리를 쉽게 따라잡지 않겠는가?"


염려와 걱정을 모두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하염없이 걸었다.

아니 발을 재촉하면서 빠른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때로는 넘어지기도 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나 어린 아이를 부축하느라 걷는 속도가 빠른 것은 아니었다.


몇날을 걸었는지 모른다.

걷고 또 걷다보니 푸른 바다가 눈 앞으로 확 다가왔다.

막다른 길에 다달은 것이다.


기껏 도앙쳐 왔는데,

이젠 더이상 가야할 곳이 없다.

그렇다면 이곳이 우리가 정착해야 할 곳인가?

이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다.

하비루들은 분노하기 시작했다.

"내버려 두었다면 노동은 고되지만, 거주할 집과 세끼 먹을 양식을 제공되지 않았는가?

 수백년동안 그리 살았는데....

 갑자기 왜 우리를 이곳을 이끌어내어 죽게 만드는가?"


어떤 사람들은 무리들 앞에 나섰다.

"우리가 참으로 그릇된 판단을 하였오.

 모세라 했든가? 이 사람을 따라나오는 것이 잘못된 결정이었오.

 이 소리...들리는가? 이집군사들의 말발굽 소리가..

 지축(地軸)을 흔들며 굉음(轟音)을 내면서 치열하게 달려오고 있지 않은가?

 이제 우리에게 두 갈래 길이 남았오.

하나는 저들의 칼에 죽음을 당하던가

다른 하나는 이 거친 파도에 휩쓸려 수장(水藏)을 당하는 것이요."


모든 사람들이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 소리를 우리가 밟고 있는 땅을 흔드는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이 때 모세는 바다를 향해 그의 손에 들려진 지팡이를 들었다.

그러나 하늘에 소동이 일어났다.

동시에 눈 앞에서 진기한 광경이 일어났다.

서서히 바다가 둘로 나뉘어지면서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모세는 외쳤다.

"자 야훼가 우리에게 길을 내셨오

 어서 길을 건너시오. 어서.."


하비루들은 잠시 호흡을 멈추었다.

걸음도 멈추었다.

심장도 멈췄다.


"자 어서 건너시오,."


맨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뒤에 있는 사람들도 그들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사람들도..

가야할 방향은 앞의 사람을 따라가는 것이었다.

더이상 뒤로 돌아갈 수 없었다.

좌우로 바닷물이 입을 벌리고 춤을 추고 있었다.

"이 바닷물이 언제 우리를 삼킬 것인가?"

이러한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그단지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길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많은 사람의 발걸음에 치여 죽을 판이었다.

사람들이 끌고 온 염소와 양, 어설픈 마차, 아이들의 울음소리

그리고 넘실거리는 바다.. 모든 것이 어우러져서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가고 있었는가?

이집트 군사들의 함성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우리들의 마음을 바빴다. 조금했다.

그렇다고 하여

우리의 발걸음의 속도를 더 재촉할 수 없었다.

그저 앞으로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우리가 옮기는 발걸음에는

어떤 흔적도 남겨지지 않았다.

바다를 거의 다 건너왔을 때 즈음,

이집트 군사들은 바다 한 가운데로 맹렬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그 속도는 거센 광풍의 속도와 버금가는 정도였다.


우리는 또다른 두려움에 사로 잡혔다.

"기껏 바다를 건너왔는데,

결국 이곳에서 저들의 말발굽에 밟혀죽게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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