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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Dec 20. 2022

먹고 싶은 걸 먹었는데 수명이 줄어듭니다

어떤 우유 드세요?

-우유 마시는 귀여운 꼬마숙녀- 출처. 픽사베이



초등학생 자녀를 둔 나는 퇴근할 때마다 항상 습관적으로 사는 것이 있다. 바로 아이들의 성장을 돕는 우유를 사는 일인데 항상 다른 우유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언제나 서울우유를 집어 장바구니에 담았었다. 서울에 살지는 않지만 '언젠간 서울에 살 수 있을까.'하는 막연한 생각과 함께 대한민국 사람이면 당연히 수도 이름을 본뜬 서울우유지~ 하는 (이름 하나 정말 잘 지었다) 생각이 들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울을 버리고 매일우유로 바꾸었다. 단번에~!


그 이유는 <무엇이든 물어보살>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걱정거리를 한가득 안고 고민 상담하러 온 모자 때문이었다. 아들은 고등학생처럼 보였고 어머니는 근심 가득한 목소리로 사연을 풀어놓았다. 아들의 병명은 호모시스틴뇨증이라고 했다.




https://blog.naver.com/pbc1903/222569812828





호모시스틴뇨증

메치오닌 (methionine)이라는 아미노산의 대사과정 중 시스타치오닌 (Cystathionine) 합성효소의 장애에 의해 발생되는 선천성 대사질환이다. 지능 저하, 골격계기형, 혈관장애, 안질환을 특징으로 하며 상염색체 열성으로 유전되고 발생빈도는 200,000~300,000명 중 한 명이다. 세계적인 빈도는 1/300,000명, 아일랜드에는 1/65,000명이고, 한국은 1/180,000명으로 매우 드물다. ... 네이버 지식백과


쉽게 말하면 특정 단백질 성분이 분해되지 못해 몸에 축적되고 혈관에 쌓여 막히게 되면 뇌졸중으로 20세 이전에도 즉사할 수 있다고 하는 심각한 병이다.


어렸을 때는 엄마가 주는 대로 먹어야 하기 때문에 그나마 병 관리가 쉬운(?) 편이었지만 점점 커갈수록 엄마의 통제는 잔소리로 받아들이는 아들은 피자, 치킨과 같은 일반음식이 먹고 싶어서 "그냥 맛있는 거 먹고 그만큼만 살고 싶어요."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옆에 자리한 엄마는 깊은 한숨만 내쉴 뿐이었고...

엄마의 심정은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흡사 매일 자해하는 아들을 보고 있는 심정이 아니었을까...


서장훈이 단백질 대사에 문제가 있으면 어떤 식으로 먹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우유를 먹어야 한단다. 우유는 일반우유가 아닌 특수우유라 불리는 것이었다. 궁금해진 나는 이 우유를 어디서 제조하는지 바로 찾아보았다. 당연히 서울우유겠거니 했더니 반전이었다. 매일유업이라니~!

이것이 바로 내가 우유 브랜드를 바꾸게 된 계기가 되었다.  
어머니 말로는 특수우유를 만듦으로 인한 수익은 회사로서는 거의 가져가는 것이 없고 오히려 마이너스라고 했다. 아들의 나이가 8살 때 이 병을 알게 되었는데 그 당시 우리나라에 환아는 9명뿐이었다고. 환아가 적으니 만들면 만들수록 회사는 본전은커녕 손해가 나는 애물단지 우유이다.


특수우유를 만드는 과정

특수분유를 만들려면 그냥 성분만 바꿔서 생산을 하는 게 아니라, 해당 생산라인을 정지시키고 전체 세척을 진행한 후 생산해야 한다. 그래서 1년에 한 번, 하루 동안 일반 분유의 생산을 중단하고 라인을 교체하여 특수분유 12종을 총 5천 캔 정도 생산한다. 단순히 비싼 걸 싸게 팔아서 손해를 보는 게 아니라 구조적으로 절대 수익이 나올 수 없고, 돈 문제를 떠나 설비에 남아있는 기존 분유가 섞여서도 안되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이만저만 수고로운 게 아니다. ...나무위키



https://www.insight.co.kr/news/202884



이렇게 번거롭고 성가신 우유를 굳이 왜 만드는 것일까?

막말로 돈도 안되는데 말이다.


단 한 명의 아이도
소외받아서는 안 된다.


김정완 매일유업 회장의 부친인 고(故) 김복용 매일유업 창업주가 한 말이다.
이 땅에 있는 아이들이 굶주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염원에서 닻을 올린 게 바로 매일유업인 만큼 아픈 아이들도 허기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적용된 셈이다. 아들 김정완 회장도 아버지의 '착한 혁명'을 그대로 이어받아 여전히 마이너스 수익을 감내하면서 특수분유를 생산하고 있다.

그럼 매일유업은 선행만 베푸는 훌륭한 기업인가. 그렇지 않다. 한때 치즈값 담합과 눈금자 논란으로 남양유업의 주가 폭락을 그대로 재현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은 없다.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순도 100프로 착한 기업을 찾기 어디 쉬운가.
잘못한 일을 떠나서 동일선상에 두고 동종업계에서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을 번거롭고 수고로운 일을 하면서 꾸준히 제조하는 것만으로도 그 기업을 높이 사고 싶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추구다. 그런데 이 특수우유를 만듦으로써 매년 4억의 손실을 감당하면서까지 지속한다는 것은 잘못한 일을 덮고도 남을 정도라 본다. 만일 이 기업이 생산을 중단한다면 희귀 질병을 가진 가정에서는 3~4배나 비싸게 해외에서 구입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가계부담이 더욱 컸을 것이다.

우리는 때로 어느 기업이 잘못을 저지르면 불매운동을 벌여 혼쭐을 내주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반대로 잘하는 기업이 있다면? 그 기업은 더욱 칭찬해주고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 이 사회가 좀 더 나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고작 나 하나가 착한 기업의 우유를 매일 한 개씩 산다고 해서 매출에 도움은 요만큼도 없을 거라는 건 너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다수가 힘을 합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 기업의 성장은 물론이고 주변 기업에 끼칠 선한 영향력까지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파급효과와 더불어 조금 더 나은 사회를 꿈꿔볼 수도 있지 않을까.


혹여나 이런 선행을 행하는 기업에게 재정적인 문제가 발생한다면 정부가 나서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면 한다. 이렇게 알게 모르게 선행을 베푸는 기업들에게 좀 더 혜택을 준다면 분명 다른 기업의 모범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매일우유를 사러 간다.
다른 아이들은 내킬 때 언제든 먹을 수 있는 평범한 음식들을

먹고 싶어도 못 먹고 평생을 살아야 하는 희귀질환을 가진 환우들이 좀 더 힘을 내보기를.

암도 치료하는 좋은 세상인데 치료법이 하루 빨리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저는 매일유업과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특정우유의 상호명이 없이는 이 글을 작성할 수 없기 때문에 부득이 구체적인 상호명을 공개하였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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