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시아 Dec 28. 2022

기분 예고제

우리는 화산이 아니잖아요?


지난 주말

막둥이가 오랜만에 부루마불을 만지작거리더니 목소리를 높여 누나를 부른다.


"누나아~~~~ 우리 부루마불 할까?"


"누"는 들릴락 말락 "나~~~"는 길:게 부르는 목소리가 참 귀엽고도 정겹다.


나이를 먹을수록 위로 십 년 아래로 십 년은 바로 친구를 먹게 되는 어른의 세계와는 달리

나이가 어릴수록 위계질서가 철저한 것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키즈카페에서 처음 보는 아이와 의견이 안 맞아 살짝 투닥거릴 때에도 결국은


"야~! 너 몇 살이야~?

 난 아홉 살이거든?!"


하고 나이로 사건을 종결짓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웃겨서 콧방귀가 절로 나오니 말이다.


우리 아이들도

꼴랑 두 살 밖에 차이가 안 나지만 동생이 누나에게 "야"라고 하면 누나가 쪼르르 나에게 달려와선 무슨 큰일이라도 난 듯이 흥분해서 막 하소연하듯 이른다.


"엄마, 엄마! OO가 나보고 '야'라고 했어~!"


그럼 속으로는 "야"가 뭐 어때서? 하고 나오려는 말을 겨우 붙잡고

 

"OO야~ 누나한테 그러면 안 되지~."

하고 중재를 해주고는 속으로 픽 웃고 만다.




누나~~~~ 부르는 소리에 안방에서 유튜브에 심취한 누나가 귀여운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럴까~~?"


오늘은 사이좋은 오누이 컨셉인가 보다.

대사들이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아름답고도 듣기 좋은 전형적인 질문과 예의 바른 대답 세트를 보여주니 엄마로서 참으로 흐뭇하게 듣게 된다.



잠시 후 요놈들

역시나 무언가 의견이 잘 안 맞는지 아니면 조그만 동생이 귀여워 누나가 뭔가 꼼수를 썼는지

뒤늦게 알아챈 동생이 느긋한 목소리로 하지만 위엄이 가득한 목소리로 한 마디 한다.




계속 그러면~~ 내가~~

성질을 내는 거야~~



푸하하

성질에 강조를 하며 여유로운 가락이 붙은 대사에 나는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막둥이는 예고를 했다.

일명 경고성 기분 나쁨 표시이다.


일기예보하듯 '내 기분이 조금씩 나빠지는 중이다. 조만간 성질을 낼 수도 있다.' 하며 예고를 하고 있었다.

오~~ 무서운데?? ㅋㅋ







이 사람은 다 좋은데 가끔 "욱" 할 때가 있어요.

그것만 빼면 참 좋은 사람이에요.


그렇다.

우리는 평소 마음에 휴화산 하나씩은 모두 품고 사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일상이 다소 잔잔하면

따분하고 심심하지 말라고

한 번씩 빵빵 터트려준다.


왜 그럴까.

계속 쌓아두고 참고 억누르기 때문이 아닐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참고

속이 좁은 사람으로 보이기 싫어서 참고

대인배처럼 보이고 싶어 참는다.


인간이란 혼자서 지낼 수가 없는 존재인데

어찌 되었든 관계를 맺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인데


매사에 꾹꾹 눌러 참고 삭히고 쌓아두는 경향이 없지 않다.


그리고는 어느 날

참다 참다 펑~!!! 하고 터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럼 무방비 상태의 상대는

"어이가 없네?"

하며 더 큰 싸움이 되는 것이다.




일기 예보에서

"내일은 태풍을 동반한 비소식이 있겠습니다."

하는 것처럼



*그렇게 말씀하시니 좀 서운해요~

*어머~ OO님~ 그렇게 안 봤는데 좀 실망이에요~

*저 왠지 조금 화가 나려고 할 것 같아요~

*오늘 기분이 좀 우울해요~



등등 이렇게 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대사를 한 번씩 건네면 어떨까.

나의 기분 상태가 이러하니 좀 알고 계셔라 상대방아~

하고 미리 예고를 한다면

깐죽거릴 것도 조금 참고

무례한 말도 좀 참고

상대가 좀 미리미리 조심하면서 살짝 몸을 사리게 되지 않을까.

덩달아 내 속의 휴화산도 힘들게 뻥 터질 일도 없고 말이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나의 보이지 않는 기분일랑
  폭발하지 말고 예고를 하자.




미소짓는 아이. 출처. 셔터스톡


이전 11화 먹고 싶은 걸 먹었는데 수명이 줄어듭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