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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Oct 18. 2022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야


주말이라 외식을 하기로 하고 나가려는데 신랑이 버스를 타고 가자고 한다. 

왜 갑자기 버스? 편하게 차로 가지?


으응~ 나도 가서 맥주 한 잔 하게~


아~ 그래~




그렇게 버스를 타고 무한리필 양꼬치 집에 도착.
살은 쏙쏙 빼먹고 빈 꼬챙이만 통 안에 세워 둔 것이 수북하게 산을 이룰 정도다. 아무리 간판이 무한리필이라지만 이 정도면 직원에게 눈치가 보일 정도이다. 장난꾸러기 막둥이는 "도대체 이게 몇 개냐~" , "우리 한 번 세어 볼까요~~" 하는데 창피한 마음에 난, 눈동자로 그만하라는 압박을 주어 가까스로 말렸다. 그렇게 두 시간 가까이 포식을 하고 집에 가려는데 벌써 9시가 가까운 시간. 집이었으면 아이들은 이 닦고 잠잘 준비해야 하는 시간에 아직도 밖이라니 마음이 조급해진다. 게다가 우리가 타야 할 버스번호만 전광판에 뜨지를 않는다. 아이들은 조금씩 지친 표정이고... 그렇게 20여분 정도 기다린 후 드디어 버스를 잡아 탔는데 사람이 생각보다 많아서 앉을 수 있는 자리는 떨어져 있는 겨우 두 자리뿐. 아이들을 떨어트려 각각 앉히고 막둥이는 신랑이 담당하고 난 딸내미 앞에 손잡이를 잡고 서 있었다. 오래간만의 폭식과 술에 지친 데다 또 오랜만에 버스를 탔더니 기사님이 마음이 급하신가 버스는 출렁대고... 나는 다리에 힘을 바짝 주고 서 있어야 하니 점점 더 지쳐만 갔다. 

그렇게 두 정류장이 지나고 조오기 앞에 자리가 하나 빈 걸 매의 눈으로 발견한 나는 자리를 뺏길세라 얼른 딸에게 물어보았다. 

딸~ 엄마 저~~ 기 앞에 빈 자리에 가서 앉아도 돼?


왠지 불안한 표정인 딸내미...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엄마~ 내가 서 있을 테니까 엄마가 앉을래? 


어?? 아니야. 그냥 앉아 있어. 


5학년이나 되었고 체격도 큰 편인데 덩치에 안 맞게 무서움을 많이 타는 딸, 내가 떨어져 앉는 게 싫은 모양이었다. 급기야 자기 자리를 내준다고 하는데 난 괜찮다고 하고 그냥 서 있게 되었다. 딸은 자신 때문에 엄마가 앉지 못하고 서 있는 것에 대해 못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딸아이는 조금 덤벙거리는 편이다. 자주 넘어지고, 뭘 자꾸 쏟고, 떨어트리고, 주변 상황을 잘 돌아보지 않는 천방지축 자유로운 영혼이다. 딸과 잠시 바꿔 내가 앉아 있다가 혹시나 있을 급정거로 서 있는 딸은 넘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난 그냥 나의 피곤함을 선택하고 말았다.

그리고 잠시 동안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난 항상 받고만 지냈었구나...

어릴 적엔 부모님께서 나를 돌봐주셨고 조금 커서는 고작 두 살 차이지만 엄마 같은 언니가 늘 나에게 양보해 주었다. 결혼하여 내 옆에 자리한 남편은 항상 나를 본인보다 우선하여 챙겨 주었었다. 그러고 보니 난 누군가를 챙겨준 적이 없던 삶을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나이만 먹었지, 아직 마음은 어린데 내가 이 두 아이의 엄마라니... 가끔 믿어지지가 않는다. 또래보다 성장이 빠른 딸내미는 이제 곧 나의 키를 따라잡을 추세이다. 둘이 있는 뒷모습을 보면 친구로 오해받을 정도로... 언제 이렇게 컸지... 몸만 컸지 아직 초등학생인데... 중학생, 고등학생 때까지 내가 이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잘 해낼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덜컥 부담감과 압박감이 느껴졌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바른 가치관을 갖고 자랄 수 있도록 현명한 엄마로 끝까지 버팀목이 되어 줄 수 있을까? 원하는 목표가 생겼다고 꿈이 있다며 나에게 희망이 가득 찬 얼굴로 이야기를 꺼낼 때 경제적인 문제로 걸림돌이 되지 않는 부모가 되어 줄 수는 있을까?  

버스 안에서 앉지 않고 잠시 서 있었을 뿐인데 참 여러 생각을 하게 된, 짧은 버스여행이었다. 
앞으로 나와 우리 가족의 인생여행도 어떤 길로 어떤 속도로 가게 될지 다소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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