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락호락하지 않은 삶을 알려주마
오늘도 역시나 아이들 하굣길이다.
큰 아이와 막둥이의 한 시간 차이 하교 시간 때문에 항상 밖에서 한 시간을 까먹어야 하는 나다. 멍하니 하늘만 보다가 하릴없이 핸드폰만 톡톡 거리다가 안 되겠다 싶어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가지고 다니는 중이다. 이럴 거면 하교 시간 차이가 없게 연년생으로 낳을 걸 그랬다. 뭐 내 맘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막둥이가 먼저 끝나는 날, 차를 인근 주택가에 대놓고 쨍쨍 내리쬐는 햇볕에 그대로 앉아있다간 차 안에서 쪄 죽을 것 같아 창문을 약간 열어두고 밖에 나와 시원한 그늘에 서서 책을 펴 읽기 시작했다.
집중해서 책을 읽은 지 얼마나 흘렀을까. 내 눈은 책의 글자를 좇고 있는데도 조그마한 꼬마 하나가 살금살금 걸어오는 게 시야에 들어온다. 또래보다 작은 체구에 제 몸만 한 가방을 메고 흔들거리면 걸릴세라 실내화 가방을 품에 꼬옥 안고 도둑고양이처럼 한 발 한 발 살금살금 걸어 내게 다가온다. 더운 한 여름 날씨이기도 하고 날 놀래켜 줄 마음에 상기되었는지 볼은 이미 발그레, 표정은 장난기 가득이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난 이미 널 봤는데?
나도 장난기가 발동한다. 와서 날 놀래킬 심산인데 호락호락한 내가 아니다. 난 느희 엄마란 말이다. ㅋㅋ
자~ 좀 더 와. 좀 더 다가오라고... 기다린다. 먹이를 낚아채려고 숨죽여 기다리는 보호색으로 위장한 도마뱀처럼.
그리고는
지금이야~!!!!!!!
"워!!!!!!!!!!!!!!!!!!!!!!!!!"
"앜!!!!!!!!!!"
막둥이 녀석 얼마나 놀랐는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엉덩방아를 찧는다. ㅋㅋㅋㅋ 그러고는 울상을 지으며 나에게 원망 섞인 목소리로 이야기를 한다.
"엄마가 깜짝 놀래야지~!
아~앙~~아~~~아~~~ 엄마가 놀랬어야지~!!!"
"엉?? 그런 법이라도 있는 거야?? ㅋㅋㅋㅋ"
세상 허무하다는 표정. ㅋㅋㅋ 인생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단다.
여기까지가 지난주에 있었던 일이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하굣길에 차를 몰고 가는데 주차도 하기 전 저 멀리서 아장아장(내 보기엔 아직도 애기다) 걸어오는 막둥이가 보인다. 마음 같아서는 창문을 열고 이름을 크게 부르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리고는 주차를 하고 사이드미러를 얼른 휙 쳐다보았다. 막둥이도 차를 단 번에 알아보고 이번엔 실패하지 않겠다는 각오에 찬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이다.
이를 어쩌나. 내가 또 널 먼저 보았는데. ㅋㅋㅋ 그래. 이번엔 니가 이기자.
시동은 끄지 않고 차문을 열어서 워~!!! 할 수 있도록 밖에서 차문이 열리게끔 버튼은 눌러두고 할 일도 없으면서 부산한 척 차 안에서 이것저것 만져본다. '난 널 절대 못 봤어.'라는 몸의 언어다. 이제 문이 열리고 큰소리로 놀래킬 시간이 되었는데~. 자식.. 걸음이 느리다. 하지만 절대 뒤를 봐서는 안된다. 지금인가?
차 문이 벌컥 열리더니
"워~!!!!!!!!!!!!!!!!!!!!!!"
하는 소리와 개구진 표정의 얼굴을 들이민다.
"으악!!!!!!!!!!!!!!!! 깜짝 놀랐잖아!!!" (아.... 연기하기 힘들다... 조만간 배우 오디션에 나가도 될 판이다)
깔깔거리며 아들이 배꼽을 잡고 웃겨 죽겠다는 듯 웃는다. 그러더니 뒤늦게 걱정이 되는지
"많이 놀랬어???"
하고 묻는다.
내가 대답한다. 물론 정해진 답이다.
"그럼~~ 많이 놀랬지~~"
가슴을 쓸어내리는 손동작과 함께. ^^ 완벽했다.
"지난번엔 엄마가 안 놀랬는데 오늘은 놀래서 좋아?"
"응. 만족해~"
"엉? 그래. ㅡ.ㅡ"
이제 겨우 3학년인데 초등학교만 졸업해도 엄마랑 이런 장난은 다신 안 치겠지?
체구가 너무 작은 우리 아들, 아빠처럼 키가 쑥쑥 커서 든든한 아들이 되어주길 바랬는데 막상 커서 사춘기 오지게 오면 속 많이 썩이겠지?
에고... 모르겠다. 그때 일은 그때 돼서 걱정하자.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그렇다고 또,,, 너무 건강만 하지 말고, 공부도 좀 해가면서 알았지?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