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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Apr 01. 2023

미숫가루는 굉장히 위험한 음식입니다

죽을 뻔했어요




삼 남매가 짠 듯 돌아가면서 장난을 쳤다.

장난감도 얼마 없으니 먹을 거로도 장난을 쳐야 했다.

영양도 풍부한 각종 곡류의 가루 집합체 미숫가루! 요것이 그날 우리의 장난감이 돼주었다.


이걸로 뭘 하면 재미가 있을까.

뭘 하고 놀아야 재미있게 놀았다고 동네방네 소문이 날까.


고민하며 물도 없이 한 숟갈 입에 퍼 넣는데 갑자기


콜록 콜록 콜록

코홀록 켁켁 콜록


언니가 기침을 해댄다. 물에 녹여 먹어야 하는 걸 가루로 먹으니 당연히 사레가 들지.

안쓰러운 마음에 등을 콩콩 쳐주었다.

그랬더니 언니가 씨익 웃으며

"장난이지~ 메롱~"

한다.


"이런~! 속았네! 큭큭큭"

그렇게 웃고 넘기려는데


또!


콜록 콜록 코올록

켁켁 콜록 코홀록


이번엔 남동생이 기침을 해댄다.

아이고 넌 또 왜 그러냐. 언니랑 나랑 둘이서 등을 토닥토닥 쳐 준다. 걱정 어린 눈빛으로.

그랬더니 이 놈 또 씨익 웃으며

"아닌데~ 장난인데~"

한다.


"아~ 뭐야~"


하고 눈을 흘겨 주었다. 마지막으로 한 숟갈만 더 먹어야지 하며 크게 미숫가루를 뜬 숟가락을 입에 가져다 넣는데


허억...

미숫가루가 그만 목구멍을 턱 막아버렸다.

숨이 막혔다. 기침도 안 나온다. 목구멍을 막은 거지 콧구멍이 막힌 건 아니라서 숨 쉬는 건 문제가 없을 텐데 희한했다. 숨이 안 쉬어지는 거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언니가 기침했을 때도 두드려 주고, 동생이 기침할 때도 두드려 주었는데 왜 내 등은 두드려 주지 않는 거지? 원망스러웠다. 아직 어려서 다 자라지 않아 짧은 내 팔이 내 등의 필요한 위치를 직접 두드릴 수 없다는 사실에 너무 슬펐다. 차라리 기침이라도 나왔다면 기침소리가 격하게 나올 테니 위급한 정도를 알아차리게 할 수 있을 텐데 어찌 된 건지 소리조차 나오질 않았다. 숨은 점점 막혀오고 태어나서 숨을 쉴 수 없는 상황은 처음이었기에 당황해서 어찌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숨을 못 쉬어 어쩔 줄 몰라하는 내 표정을 보고 언니와 남동생은

"아~ 뭐야~ 아까 우리가 다 한 건데 뭘 또 똑같이 장난쳐~~ 다 알아. 장난인 거~ 이제 그만해. 재미없어."

라는 대사까지 하면서 나더러 장난치지 말라며 웃었다.


'웃지 말고, 대사 치지 말고 내 등을 좀 쳐달라고 제발.'

말은 몸 안으로만 울려 퍼졌다. 밖으로 내뱉지 못하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숨통은 점점 막혀오는데 그렇다고 이 정신에 살려 달라고 글을 휘갈길 수도 없었다. 글로 써서 알리려고 연필을 찾다가, 찾으면서 죽어갈 것 같았다. '아... 죽음의 그림자는 예고도 없이 이렇게 다가오는 거구나.'하고 느꼈다.


'이대로 죽는구나. 나는.'

묘비명에 <미숫가루 숟가락으로 퍼먹다가 세상을 떠남>이라고 남겨지겠구나. 아찔했다.


그렇게 정신이 아득해지려는데 갑자기 내 등을 탁! 치는 손.


숨을 못 쉬어 허옇 질려 미숫가루 색이 되어버린 내 얼굴을 보고 그제서야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언니는 속는 셈 치고 내 등을 탁탁 쳐댔다. 목에 걸린 미숫가루 덩어리 사이에 미세한 구멍이 생겼는지 드디어 작은 숨이 쉬어졌다.

가까스로 기침도 튀어나왔다.


켁켁 커거걱 코올록 콜록 커거거걱 컥컥 코홀록 콜록 콜록


한도 끝도 없이 터져 나오는 기침을 하다가 숨은 쉬어지지만 이번엔 기침하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얼마나 기침이 연신 튀어나오던지 기침을 해대면서 한동안 미숫가루는 쳐다도 안 보겠다는 다짐을 했다.


또, 아무리 재미있는 장난이라도 적당히 해야지 반복적으로 상대가 익숙해질 만큼 심한 장난을 치다간 사람 골로 가는 건 일도 아니겠다는 생각을 내 나이 여덟 살 때 깨달았다.

그리고 나를 힘들게 한 미숫가루는 너무너무 위험하지만, 맛있어서 안 먹을 수는 없으니 반드시 물에 타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




출처.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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