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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Feb 16. 2023

헐벗어도 괜찮... 지 않아!

노브라의 애로사항

겨울이 좋다.

겨울에만 탈 수 있는 스키라던가, 스케이트, 눈썰매의 계절이라서 좋은 게 아니라 헐벗을 수 있어서 좋다. 추운 겨울에 더 꽁꽁 싸매야지 왜 헐벗느냐고?

겨울엔 소위 김밥패션이라고 해서 롱패딩으로 몸을 돌돌 말아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남들 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으랴. 봄, 여름, 가을엔 꾸몄을까 말았을까 하는 나의 패션을 보여주었다면 겨울엔 제일 바깥 옷만 신경 쓰면 된다.

한데 긴 패딩으로 나를 감쌌으니 나의 속은 보이지 않을 테고 따라서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가끔은 겨울에도 예쁜 옷을 입어 보긴 하지만 패딩으로 감싸면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겨울엔 예쁜 옷을 입지 않기로 했다. 원래 옷이란 건 남들에게 보이려고 입고, 나 이렇게 예쁜 옷 입었네~ 뽐내려고 입는 옷인데 보이지 않는다면 입을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그렇다고 바바리맨과 혼동하시면 안 된다. 그렇게 많이 홀딱 다 벗고 다니지는 않는다. ㅡ.ㅡ



여자는 패딩 바로 안의 외출복만 입는 게 아니라 다 아시다시피 꽉 죄어오는 속옷은 필수로 갖춰 입어야 한다.

한 여름을 포함해 다른 계절엔 그것을 꼭 필수로 착용해야만 한다. 남자들 중에서도 유독 볼록 솟아올라 옷을 뚫고 나갈 것 같은 진취적인 유두를 감추기 위해 유두패드도 붙이고 다니는 판국에 여자는 말해 무엇하랴. 청소년기 때부터 여자라면 상의 속옷은 늘 필수였고 예의의 아이템이었다. 나 또한 동방예의지국에서 한 예의하던 여성이었으므로 하루도 빼지 않고 착용해 왔었다.


외출할 때는 외출하니까 했고 집에 돌아와서는 습관이 되어 풀지 않았다. 그냥 그것은 내 피부와 같았다. 가끔 소화가 안 돼서 더부룩한 뱃속일 때면 도움을 줄까 싶어 그것을 탈의하는 날에는 그 허전함이 말도 못 해 오히려 일이 손에 안 잡힐 지경이었다. 보통은 존재의 거추장스러움에 불편을 느끼는데 없는 것도 이렇게 신경이 쓰일 수 있구나 싶어 참 신기했다.




그런데

그렇게 한 몸이던 그것이 나와 이별을 고하고 말았다.

언젠가 TV에서 전문가가 말하는 걸 내 귀로 직접 들어버린 것이다.


여성들이 착용하는 브래지어는 혈액순환을 방해합니다. 너무 옥죄여 순환이 어렵게 되면 유방암에 걸릴 확률도 높아지기 때문에 가급적 집에 계실 때는 굳이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마시고 편하게 있는 것이 질병을 예방하는 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으흑...

그동안 난 남들 눈 편하자고 나의 몸에 병을 키우며 살아왔단 것인가.

그날로 그것과 이별을 했다. 물론 첫날은 허전함에 몸이 적응을 못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신발을 신은 강아지의 엉거주춤 희한한 걸음걸이처럼 이건 안 하던 걸 한 게 아니라 오히려 풀어헤쳤는데 몸의 자유는 자신을 다시 속박해 달라며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안 하던 걸 해야 오류가 생기는 거 아닌가요~(출처. 유튜브. 강복순 영상 캡처)




금방 익숙해질 거야. 처음에만 이상한 거겠지. 그래. 조금만 견뎌보자.


별 거 아니었지만 낯선 자유로움으로 도대체가 적응이 안 되는 시간을 하루, 이틀, 사흘 지나고 나니 세상에! 적응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너무 편했다. 어찌 이리 속박의 굴레를 매번 몸에 채우고 다녔을까. 그게 더 의아해졌다. 봄, 여름, 가을에 외출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예의상(?) 갖춰 입고 나가지만 집에 들어오면 훨훨 벗어던지고 날아다님을 택했다.




겨울이 왔다. 내가 좋아하는 겨울.

밖에 나가더라도 속옷을 굳이 챙겨 입지 않아도 되는 겨울.

내가 챙겨 입었는지 말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겨울. 그래서 겨울을 참 좋아한다.


막둥이의 사소한 병치레로 잠시 소아과에 들렀다가 집에 돌아가는 길.

막둥이 눈에 들어온 국숫집 간판.

개업한 지 며칠 안 됐는지 깔끔하고 맛깔스럽게 꾸며 놓은 국숫집을 보더니


"엄마~ 우리 저기서 국수 먹는 거 어때?"

한다. 나는 면을 좋아하는 걸 넘어 사랑한다. 역시나 나의 유전자가 아들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졌는지 아들도 면을 참 좋아한다. 국수라는 말 한마디에 둘 다 기분까지 좋아진다. 둘은 싱긋 웃어 보이며


"그럴까?"


신나서 가게로 들어갔다.

실내가 후끈하다. 둘러봐도 빵빵한 점퍼나 패딩을 입고 음식을 먹는 사람은 없다. 먹을 때는 자고로 편한 차림으로 먹어야 하니 패딩 지퍼를 주욱 내리려다가 스톱~! 아차차! 그제서야 나의 허전한 상체를 깨닫고 말았다.



다시 후다닥 주르륵 지퍼를 올리고 아들의 손을 잡고는

"다음에 다시 올게요~ 홍홍"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국숫집을 나왔다.


아들은 밖에 나와서 나에게 묻는다.

"엄마! 먹기로 했는데 왜 안 먹고 그냥 나와~?"


"으응... 엄마가 오늘...... 헐벗어서 안 돼..."


아들은 빵빵한 나의 패딩을 보고 이게 무슨 헐벗은 거냐며 믿을 수 없다고 한다.


네가 모르는 헐벗은 지점이 있단 말이야.

크면 알게 돼. 짜샤...



이제 곧 3월 꽃피는 봄이 온다. 나는 이제 또 속박의 계절을 맞이하게 되겠지.

자유의 길은 참 멀고도 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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