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시아 Feb 19. 2023

뜻밖의 타이밍에 찾아온 이혼

결혼한 사람 중에 이혼하는 사람 참 많다던데 말이야. 


이건 드라마 대사가 아니다. 

결혼한 커플 3쌍 중 1쌍이 이혼한다는 연일 보도되는 뉴스기사도 아니다. 비율은 아주 예전 비율을 기억해 내어 쓴 것이니 요새는 이혼비율이 훨씬 더 늘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그럼 저 대사는 누가 한 걸까?


바로바로 

믿을 수 없는 

남편의 입에서 나온 소리다. 내가 그토록 믿고 의지하는 남편 말이다.


이혼이라는 단어가 나왔으니 나도 이제 브런치 메인 등극의 여지가 생기는 건가!

하는 마음도 잠시 

가만! 

지금 나에게 넌지시 운을 띄우는 건가? 

이혼 어떠냐고? 


보자 보자~~

지금 이 양반이 뭘 하고 있나 보자~~ 하고 목을 빼고 봤더니 또 조신하게 설거지를 하고 있다. 

헉. 충분히 그런 말이 나올 법하다. 


마누라는 자판이나 퉁게 퉁게 두드려 대고 어릴 적에 익히 들어왔던, 남자는 부엌 자꾸 왔다 갔다 하면 꼬-츠 떨어진다는 옛 어른들의 말쌈을 거스르고 투박한 두 손을 설거지통에 담그고 있으니 얼마나 기분이 참 그저 그럴까. 


그래서 하는 말이었을까?


"요새 결혼한 사람 중에 이혼하는 사람 참 많다던데 말이야."


그런데 남편과 십여 년의 세월을 지지고 볶고 살아온 나로서는 저 냥반이 진짜로 이혼을 원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안다. 

분명 다음 대사가 이어져 나올 텐데 난 갑자기 

빵~! 터져서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푸하하, 깔깔깔깔깔깔


의자등받이에 한 없이 밀착시켜 둔 등과 꾸욱 안쪽으로 밀어 넣은 엉덩이에 갑자기 용수철이 달린 듯 띠용~~ 하고 튀어나가 잽싸게 신랑한테 다가가 한마디 한다. 


"여보~ 힘들었지? 얼른 나와. 내가 할게. 큭큭큭큭"


진심으로 위로를 해야 하는데 자꾸만 웃음이 터져 나와 그만 푸하하하하하

벽을 잡고 계속 웃고 말았다.

처음엔 의아한 표정이더니 내가 웃는 의미를 알아챈 남편도 같이 싱긋이 웃는다. 


혼자 계속 웃으면 나 혼자만 바보 같고 뭔가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갈 테니 정신을 추스르고

내가 느낀 감정을 쐐기를 박듯 그대로 읊어주었다. 


"아니, 힘들면 힘들다. 하기 싫으면 하기 싫다 말하면 되지, 설거지하다가 갑자기 이혼 얘기를 꺼내면 응? 큭큭큭큭. 아니야 아니야. 내가 잘못했어. 여보. 얼른 나와. 내가 할게 응? ㅋㅋㅋㅋ"


남편이 말한 대사의 의미가 그게 아니란 걸 너무 잘 알지만 상황과 대사가 너무 딱 맞아떨어지는 바람에 웃음이 끊기지 않는다. 아주 배꼽을 잡고 주저앉을 판이다. 계속 웃느라 정신을 못 차리는데 싱크대에서 뒤돌면 바로 있는 아일랜드 식탁 위에 갈 길을 잃은 부엌 식칼이 보인다. 그런데 갑자기 그 식칼을 남편이 집어든다. 


"앜ㅋㅋㅋㅋ 칼은 또 왜 응? (비정한 이혼 시나리오에서 돌이킬 수 없는 가정폭력으로 이어지는 내용인가?)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다신 안 그럴게. 이렇게 빌게. 큭크긐ㅋ 푸하하하하하"

파리처럼 손을 모두어 싹싹 비는 시늉을 한다. 


남편은 '이 여자 오늘 왜 이러지.' 하는 표정으로 집어든 칼을 싱크대 하부장을 열어 칼꽂이에 집어넣는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 타이밍 왜 이래. 정말 너무 웃기잖아~~~~ ㅋㅋㅋㅋㅋㅋㅋ"


아주 배꼽이 떨어질까 봐 배꼽을 쥐고 웃음이 멈추질 않는 나는 겨우 진정을 하고 습습후후 라마즈호흡을 몇 번 하고는 남편에게 묻는다.


"근데 뒤에 하고 싶었던 말이 뭐였어? 여보? "


"이사 가려고 찜한 집들이 좀 넓은 평형대니까 거기 사는 사람들 중에 이혼한 사람들이 생기면 집 팔고 나올 텐데 왜 우리가 원하는 곳 매물이 없을까?"


하고 말하려던 참이었단다. 




달밤에 아주 혼자 웃겨 죽을 뻔한 날이었다. 

웃음은 마구 터지는데 내 머릿속은 우연히 맞아떨어진 타이밍에 딱 맞는 대사를 하고 있는 남편의 모양새에 괜히 나 혼자 찔려 온종일 웃음이 터졌던, 아주 웃기지만 이상한 이야기를 브런치에 꼭 써야지 하는 의지를 불태우며 웃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는, 웃기지만 웃을 수만은 없었던 그런 이야기였다. 


아... 앞으로 집안일 열심히 해야지... ㅋㅋㅋ 




출처. 셔터스톡




이전 03화 미숫가루는 굉장히 위험한 음식입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