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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아 Aug 20. 2023

요동도 하지 않기 운동 3년

소설 같기도, 가까운 미래 같기도

넌 누굴 닮아서 그렇게 운동을 좋아하는 거니? 운동 못해 죽은 귀신이라도 붙은 거니? 옆집 철수 좀 봐라. 꼼짝 않고 침대에 누워 있잖니? 온종일 말이야. 두 달도 좋다, 석 달도 좋다. 그렇게 부모님 말씀 잘 듣고 누워 있는 것 좀 보라고! 꾸준히 누워 있으니 다들 갖고 싶어 하는 삼중 턱에 몸무게는 벌써 200kg을 향해 간다는데 넌 어떻게 그렇게 매번 거꾸로 가려는 거니? 청개구리가 친구 하자고 하겠다!


음식점에서 드론이 고장 나 수리에 시간이 걸리니 배달 지연에 양해를 부탁한다는 연락이 왔다. 가까운 거리라서 침대차를 타지 않고 잠시 걸어갔다 오려고 발이 편한 러닝화를 꺼내 신었을 뿐인데 엄마는 또 화르륵 내게 쏟아붓는다. 얼굴을 마주 보고 침을 튀겨가며 잔소리하는 게 아니니 얼마나 다행인지! 노래를 들으려고 귀에 꽂아 둔 무선 이어폰을 통해 고래고래 지르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아예 음소거를 해버리면 불시에 질문할  답하기 어려우니 볼륨을 1까지만 줄였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유튜브에서 수도 없이 영상이 나오던데, 심지어 엄마 스스로도 깊은 깨달음을 느꼈는지 다른 엄마들과 자신을 비교하지 말라며 내게도 영상을 전송해 주셨으면서 어쩌면 저렇게 내로남불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침대에 누워 지낸 지 29일째. 이제 하루만 더 버티면 "가만히 누워 있기 한 달 인증 마크"를 받을 수 있지만 도대체 좀이 쑤셔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한 자세로 오래 누워 있다가는 욕창이 날 수도 있고 그걸 방지하기 위해 침대 머리맡에 "좌로 굴러, 우로 굴러" 버튼은 필수였다. 그것 덕분에 몸을 이리저리 굴려 운동을 약간 할 수 있긴 했다만 3년 전 하프 마라톤 은메달을 받았던 전적이 있는 나는 그 정도의 운동은 성에 차지 않았다. 솔직히 침대 경사 때문에 내가 자동으로 구르게 되는 건 운동 축에도 속하지 않는 움직임이니 말이다.


가만있자. 오늘이 며칠이더라. 하도 누워만 있었더니 날짜가 가는지 오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시간을 좀먹는 가만히 누워 있는 일을 도대체 왜 다들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검지 손가락에 끼어 둔 반지 휴대폰을 흘끗 쳐다보니 2026년 8월 20일. 밖에 매미는 17년 만에 세상 구경한 게 신기한 건지 짝을 찾느라 분주한 건지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른다. 그러니까 게으름의 끝판왕으로 보이는 "요동도 하지 않기 운동"의  시작은 2023년 8월 20일, 정확히 3년 전이었다.


한 유튜버가 장난스레 올렸던 영상 때문이었다. 자신과 함께 누워 지낼 사람을 찾는다고 했다. 자신은 힘들고 바쁘게 하루하루 지내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며.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인데 뭐 하러 그렇게 아등바등 정신없게 사느냐고 편케 살면 어떻겠냐고 이야기했다. 매일이 버겁고 지쳤던 사람들은 하나 둘 동조하기에 이르렀고, 휴대폰은 항상 손에 쥐고 있었기에 어려운 일도 아닐 듯했다. 어려운 일은커녕 모두가 원하는 일이었다. 가만히 누워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것.


근데 과연 하루 24시간을 꼼짝 않고 가만히 누워하는 생활이 가능하기는 할까?


먹는 것은 진작부터 어플로 배달을 시켜왔으니 큰 문제가 없다. 드론이 가져다주고 로봇이 내 턱 밑까지 들고 와 줄 테니 문제없다. 입는 것은 어떨까? 오히려 더 좋다. 침대에 잠옷만 입고 주야장천 가만히 누워 있으니 외출복이 필요 없다. 절약하는 삶이 되었다. 회사에 온라인 회의라도 할라치면 "비즈니스룩 어플"을 열고 TPO에 맞는 대충 커리어 느낌 나는 가상의 옷을 하나 선택하여 얼굴만 디밀고 화상회의에 참여하면 된다. 잠자는 것이야 늘 자다 깨다 하는 것이니 전혀 문제가 없는 삶이며, 몸이 고달프지 않으니 괴롭지도 않았고, 다들 여유로운 삶을 살게 되었으니 화낼 필요도 없었고, 평화로운 나날들이 시작되었다.


또 하나 좋은 것은 명절 때 왕래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침대에 누워 꼼짝 않기로 했으니 시댁에 갈 일이 없어 고부갈등이 줄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물론 그 뉴스도 아나운서가 누워서 입만 움직여 말을 했다. 작가가 누워 글을 쓰고, 쓴 글을 아나운서에게 전송하고, 아나운서도 굳이 방송국 데스크까지 가지 않고 누워서 입만 열었다. 불과 3년 전만 하더라도 고부갈등에 시달려온 며느리들이 "당신 아들 A/S 서비스"를 신청해도 A/S 불가, 반품불가 메시지만 돌아오고, 며느리에게 막말 금지 요청을 해도 "갑질은 너한테나 하지, 내가 어디 가서 갑질 한 번 해 보겠니?"라는 말이 돌아왔는데 그 말은 이제 역사책에서나 나옴직한 말이 되었다. 혹은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폭행했다는 깜짝 놀랄 만한 사건도 몇 차례 있었으나 이 모든 건 모두가 침대에 누워 지내게 되면서 게 눈 감추듯 사라졌다.


그리고 또 좋은 점은






다음 화에 계속...


소설 같기도 한 이 글을 계속할 수 있을까. 이거 계속 써서 뭐 하나. 이렇게 머리 굴려 가며 써서 무슨 부귀영화를 얻겠다고 내가 이러고 있나. 고민을 좀 해 봐야겠다.. 침대에 엎드려서 쭈욱  :) 



*이미지 출처.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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