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리스본 공항에서 산타아폴로니아역까지
우리 아들은 태어나기 전부터 효도했다.
아내가 임산부라서 비행기 체크인부터 보안검색, 비행기 탑승부터 내리는 것까지 단 한 번도 줄을 서지 않고 빠르게 진행했다. 줄을 서지 않고 프레스티지 등급과 같은 곳에서 체크인했고 좌석은 가장 앞자리를 배정받았다. 비행기는 가장 먼저 타고 가장 먼저 내렸다. 이번 여행에서 한국과 포르투갈 모두 사회 전반적으로 임산부에 대한 배려가 깔려있다는 것을 느꼈다. 앞서 말한 공항을 비롯한 공공시설, 관광지 대부분은 프리패스였고 많은 편의를 봐주었다. 또 국적 불문 임산부에 대해선 모두가 친절했다. "She is pregnant" 한마디는 덩치 큰 백인 아저씨도 자리를 양보하게 했고, 굳은 표정의 깐깐한 공항 직원도 무장해제시켰다. 그 덕에 임신 중인 아내와 큰 무리 없이 여행할 수 있었다.
이 작고 소중한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나기까지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배려가 있었다. 사라졌던 인류애가 조금 싹을 틔우는 것 같기도 했다. 내 아내를, 우리 아기를 배려해 주신 여러분들께, 또 지금도 어디선가 임산부를 배려해 주시고 양보해 주시는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감사합니다! Obrigado!"
나의 해외여행은 형광조끼를 입은 외국인의 안내로 시작한다.
입국심사는 “Are you from seoul?" "yes"로 끝났다.(사실 나 서울사람 아닌데 ㅎ) 15시간이 넘는 비행을 마치고, 어두운 조명이 내린 기다란 복도를 부지런히 걸어가면 항상 형광조끼를 입은 외국인 직원들이 기다리고 있다. 나름 많은 나라를 여행해 봤는데, 복도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형광조끼의 존재는 거의 만국 공통인 것 같다. 공항 운영 매뉴얼에 써이기라고 한 것일까? 파블로프의 개처럼 이젠 그 형광조끼를 보면 내 심장 BPM이 조금 오른다. 여행 시작에 대한 조건반사인 것이다.
이들의 안내에 따라 입국심사를 마치고 짐을 찾아 공항 밖을 나서면 낯선 기후와 낯선 냄새가 이제 진짜 여행의 시작임을 알린다. 포르투갈의 밤은 온화했다. 11월 말임에도 저녁 온도가 섭씨 10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았다. 한국보다 따뜻하다는 정보를 들었지만 '그래도 겨울이니까'라며 경량패딩을 하나 챙겼으나 이마저도 필요 없었다. 날씨도 마음도 봄이었다. 도착 시간은 7시 반이었다. 당연하게도 어둠이 내렸다. 작년 저번에 프랑스 여행을 여름에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9시 넘어서까지 해가 지지 않았다. 그것이 유럽에 대한 가장 최근 기억이기에 어둠이 깔린 저녁 7시의 유럽은 조금 어색했다.
리스본 공항에서는 Kiss & Fly Zone에서 볼트로 이동하는 것이 편하다.
포르투갈 대사관 누리집에는 '리스본 공항에서 시내로 이동할 때는 택시는 비싸고 사기가 많으니 우버 이용을 권장한다'는 공지가 있다. 공무원으로서 나라님 말씀을 적극 따르기로 했다. 혹시 택시를 타시고자 하는 분은 적정 가격 등 유의사항이 같이 공지되어 있으니 참조하시길 바란다.
https://overseas.mofa.go.kr/pt-ko/brd/m_9320/view.do?seq=1344981
볼트는 우버보다 저렴하고 처음 사용하는 여행자에게는 할인쿠폰도 준다고 한다. 볼트 및 우버 타는 곳과 택시 타는 곳은 완전히 다른 곳에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볼트나 우버를 타기 위해서는 짐을 찾고 자동문을 나오자마자 오른쪽으로 향해야 한다. 보다폰이 보이는 장소까지 조금 걷다 보면, 오른쪽에 에스컬레이터가 있고 이를 타고 올라가면 공항 밖을 나가는 출입문이 바로 보인다. 이 출입문을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면 Kiss&Fly Zone이다. 아래의 친절한 유튜버분은 우버나 택시 타는 곳까지 가는 방법을 영상을 찍어 올려주셨다.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https://youtu.be/DOB4xuxlKh0?si=ydDDSIxa0mhaWKiY
두 명이 캐리어를 끌고 이동할 땐 큰 차를 부르자
우리도 캐리어가 큰 것이 두 개라 큰 차를 불렀다. 그런데 아우디 SUV가 왔다. 기사님이 부자인가 보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포르투갈에 방문한 것을 환영한다는 말과 함께 페레로로쉐 초콜릿을 주셨다. 한 개만 주신게 아니라 초콜릿 통을 내밀었다. 내가 맘만 먹으면 두 개도 먹을 수 있었다. 기사님은 부자임이 분명했다. 외국에서 택시 탈 때 좋은 점은 기사님 눈치 보지 않고 개인적인 말을 맘껏 해도 된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기사님이 부자인 것 같다는 말을 아내와 나누며 리스본 시내로 이동했다. 친절하시고 운전도 잘하셨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일부 자동차 소유주는 우버 면허를 딴 뒤, 직접 운영하지 않고 기사를 고용하여 수수료를 주면서 우버 수익을 얻는 것 같기도 했다. 실제 차량 운전자와 우버 어플 상 사진이 다른 것을 종종 봤기 때문이다. 아 물론 페레로로쉐 기사님은 어플 사진과 실제 얼굴이 같으셨다.
리스본을 먼저? 포르투를 먼저?
포르투갈은 보통 리스본과 포르투를 여행하지만 대한항공 직항은 리스본만 있다. 직항만 이용한다고 가정한다면 아래와 같은 옵션이 발생한다. 본인의 상황과 체력에 맞기 적절하게 선택하시길 바란다.
1. 리스본 - 포르투 순서로 여행 후 마지막날 포르투에서 리스본으로 이동해서 귀국하기
- 파업이 잦은 유럽에서 이런 모험을 하고 싶진 않았다.
2. 리스본 공항에서 바로 비행기 타고 포르투 가기
- 짐을 찾고 다시 체크인해서 비행기 타는 과정이 너무 힘들 것 같아 탈락
3. 리스본 시내로 이동 후 바로 기차 타고 포르투 가기
- 기차시간이 무려 3시간이 걸려, 포르투 도착하면 12시가 될 것 같아 탈락
4. 리스본 시내에서 하루 자고 다음날 기차 타고 포르투 가기
- 2안~4안 중 고민했지만 체력에 부담이 적은 3안으로 결정!
우리의 첫 호텔은 Riverside Santa Apolónia Hotel로 잡았다.
호텔 이름에서 나와있듯이, Riverside이고 Santa Apolónia역 바로 앞에 위치한 곳이다. 5성급이고 판테온과 도둑시장과 가까웠다. 다음날은 토요일이라 도둑시장이 열리는 날이었다. 가격이 25만 원으로 포르투갈에서 갔던 호텔 중 가장 비싸긴 했지만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니라 이곳으로 예약했다.
하지만 첫 느낌은 아주 별로였다. 역 앞이라 그런지 많은 노숙자들이 있었고, 길에는 유럽 특유의 찌렁내가 진동했다. 방은 '리버뷰 코지룸'을 선택했으나 도로에 바로 맞닿아 있어 밤새 이곳을 지나는 자동차 소리에 '낫 코지'했다. 온수도 잘 나오지 않았고 수압도 아주 약했다. 청소도 잘 되어 있지 않았고 방이 너무 좁았다. 창이 있어 그나마 나았지만 좁은 공간이 주는 심리적 불편함은 어쩔 수 없었다.
장점이라면 역과 한 건물로 붙어있었고 역 안에 작은 마트가 있어 군것질거리 사기는 편했다. 숙소 바로 앞에는 구글평점 4점이 넘는 다양한 포르투갈 식당이 많이 있다. 아쉽게도 늦은 시간에 도착해서 식당을 이용할 수는 없었다.
혹시 GYM을 찾으러 가는 여정 자체가 운동인 걸까?
나는 호텔에 가면 그곳에서 제공하는 편의시설들, 특히 GYM은 거의 무조건 이용해 보는 편이다. 엄청난 운동 덕후는 아니지만 그래도 새로운 기구를 활용해 보는 설렘은 또 있다. 여기 호텔에도 2층에 GYM이 있다는 안내판이 있었다. 기다란 복도를 걷고 또 걸었지만 아무리 가도 GYM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복도는 어마어마하게 길었다. 대략 100m는 넘는 것 같았다. 같은 디자인의 방이 연속해서 좌우에 늘어져 있었다. 왕복하니 200m는 걸었고, 숨도 제법 찼다. '아, 혹시 이 GYM을 찾으러 가는 이 과정이 사실 운동이라는 것 일가?'
해적왕이 숨겨둔 보물 원피스는 원피스를 찾으러 가면서 겪은 추억과 동료들이 아닐까?(아니길 바란다.)
어쩔 수 없이 운동은 포기하고 침대에 누워 군것질하며 TV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시장 독점은 서비스 수준을 낮춘다.
내가 2화에서 밝혔듯, 나는 숙소를 잡을 때 최우선으로 유명 호텔 체인이 몰려있는 곳을 중심으로 본다. 호텔 간에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경쟁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수산시장에서 회를 사는 이유와 비슷하다.) 여기 Riverside Santa Apolónia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이유는 이러한 경쟁이 없어서가 아닐까 싶다. 구글맵을 켜보면 Santa Apolónia 역 주변에 갈만한 숙소는 이곳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많은 여행자들이 기차를 편하게 타기 위해 이곳을 숙소로 선택할 것이다. 호텔은 별다른 노력 없이도 관광객 수요가 있으니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호텔 컨디션 개선에 소요되는 비용을 절감했을 것이고 서비스와 컨디션은 점점 더 열악해진 것이 아닐까 싶다. 이상 내 뇌피셜이었다.
나와 같은 일정으로 포르투갈을 여행하실 분들에게는 이 호텔을 어쩔 수 없이 추천하겠지만, 룸 컨디션은 기대하지 말라고 덧붙일 생각이다.
이렇게 나의 포르투갈 여행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