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그래피티와 아줄레주
나의 중2병은 힙합 문화와 함께 그 증상이 심해졌다.
SG 워너비, 먼데이키즈 등의 락발라드가 유행하던 시기에 내 MP3엔 힙합 음악이 가득했다. 드렁큰타이거, 다이나믹듀오, 에픽하이로 대표되는 대중적인 힙합부터 소울컴퍼니, 가리온 등 언더그라운드 음악들 까지. 대중음악은 하위문화라고 생각했고, 재미없고 천편일률적인 사회에 대한 반항심이 생겼다. 늘 내 생각이 옳고 멋지다고 생각했고, 고리타분한 꼰대 문화가 싫었다. 나는 이런 '내 멋진 마음'을 표현하는 배출구가 필요했다.
그 배출구는 그라피티였다.
내 마음을 한 단어로 압축하여 표현하는 내 모습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시인 같달까?
예를 들면 Triumph(승리라는 말을 남들이 Victory로 쓸 때 나는 다르게 표현한다!),
또는 Fly(나는 하늘을 날꺼야..에픽하이에 빠져있던 시절) 등..
* 오그라드는 것이 중2병의 귀여움 포인트가 아닐까...?라고 나 자신을 용서해 본다.
아무튼, 그렇게 그라피티에 빠져있던 나는 수업시간엔 교과서 모퉁이에 그라피티를 그렸고, 집에서는 공부하는 척 연습장에 내 작품을 갈고닦았다. 그러면서 언젠가 실력이 더 쌓이면 스프레이를 잔뜩 사들고 해 질 녘 버려진 건물 외벽에 그라피티를 그리는 계획도 세웠다.
그러던 어느 날, 나와 같이 그라피티를 그렸던 제법 실력 있는 내 친구들은 내 계획을 좀 더 과감하게 실현했다. 아파트 지하주차장 벽면을 캔버스로 활용하고자 한 것이다. 그 '간지' 나고 과감한 '작품활동' 소식을 듣고선, 구경하러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엔 나 외에도 많은 예술가(ㅎㅎ) 구경꾼들이 몰려있었고, 많은 구경꾼들 앞에서 그 '실력자'들은 그라피티 쇼를 펼쳤다. 관객들 앞에서도 그들은 작품을 완성시켰고, 완성된 작품은 중학생 실력이라고 하기엔 매우 걸작이었다. 그 모습이 감명 깊어, 며칠 뒤 그 작품을 다시 한번 감상하고자 지하주차장으로 다시 향했다.
그러나 지하주차장에는 새하얀 페인트로 덧씌워진 벽만 남아있었다.
그 하얀 벽은 이것은 예술이 아닌 공공의 환경을 훼손하는 낙서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이것은 내 친구들의 그라피티에 대한 경비아저씨의 답변이 담긴 또 다른 그라피티였다.
이것은 낙서일 뿐이야 꼬맹이들아.
이런 말썽쟁이 예술가들을 신고하지 않고, 하얗게 바랜 마음으로 벽을 하얗게 덧씌웠을 경비 아저씨를 생각하니 내가 괜히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또, 부끄러워졌다. 그래서 그날 그라피티를 그만뒀다.
나의 작품 활동은 끝났지만, 그라피티에 대한 동경은 여전하다. 길거리에 그라피티를 보면 혀를 차며 비난하는 대신 미술 작품을 감상하듯 무슨 뜻을 담고 했을까 하고 고민해본다. 그러면 나의 과거가 거울처럼 비친다.
그런데 뱅크시의 낙서는 예술이다.
같은 그라피티라도 뱅크시의 그림에는 시대를 아우르는 메시지와 공간을 활용한 센스가 있고 대중을 울리는 스토레텔링이 있었으며, 무엇보다 대중적으로 예쁜 그림이었다.
이레즈미 문신은 혐오하면서 백예린의 문신에는 열광하는 이중적인 태도도 같은 이유다. 예쁘기 때문이다.
작품이 예쁘면, 그것은 대중의 선택을 받게 되고,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되면 그것은 어느새 예술로 변모한다. 우리의 그라피티는 분명 시대에 대한 원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지만(?), 예쁘지 않았다. 그게 우리 작품이 며칠 안에 지워진 이유라고 본다.
포르투갈의 아줄레주는 아주 예쁘다.
아줄레주는 포르투갈 문화의 상징적인 요소 중 하나로, 아름답고 섬세한 세라믹 타일 장식이다. 이 그림은 유명한 성당이나 역사 벽면을 채우고 있다. 전문가가 메시지를 담아 그린 합법적인 작품이며 무엇보다 예쁘다. 사용된 색은 파란색과 흰색뿐이라 자칫 지루할 수 있는데 그 디테일과 규모, 그리고 그 아름다움으로 모든 것을 압도한다.
우리의 중학교 시절 그라피티와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포르투갈 곳곳에 있는 아줄레주를 보며, 또 그 앞에서 줄 서서 사진 찍는 수많은 관광객을 보며, 어떤 낙서는 세계적으로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어떤 낙서는 범죄라는 것이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르투에서 본 예술성 높은 그라피티, 아줄레주를 소개한다.
1. 카르무성당
2. 산투 알폰소 성당
3. 알마스 성당
+ 이 그림처럼 귀여운 아기천사가 우리에게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