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보기만 했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어요.
갱년기라는 시기와 증상에 대해서.
늘 바쁘게 아이들 키우며 일만 하면서 살다 보니
그런 것쯤 때가 되면 누구나 다 겪으면서 지나가는 거지 특별할게 뭐 있겠어라고 말이죠.
큰 아이 사춘기가 섭식장애로 시작되었을 때
그 무렵이었던 것 같아요, 제 감정 갱년기의 시작도.
신체적으로 나타나는 증상들은 아직 없지만 감정적으로 뭔가 끓어오르는듯한 기분과 끝없이 곤두박질쳐지는 우울함이 반복적으로 나타나서 스스로도 당황할 때가 많아요.
지난 한 주는 제가 일하는 부서에 일이 많았고 스트레스도 더해져서 육체적, 정신적 체력이 방전되어 퇴근하기 일쑤였죠. 퇴근길이면 늘 차를 운전하며 그날 듣고 싶은 플레이리스트를 켜고 혼자만의 공간에서 15분 정도 되는 나만의 귀한 시간을 음악에 흠뻑 빠지곤 해요.
그 한주의 목요일이었어요. 수능이 있었던 날이죠.
그날은 유난히 퇴근길에 발이 너무 무겁고 힘들게만 느껴지더라고요. 여느 때처럼 차를 운전하고 주차장을 빠져나온 그때 '한숨'이라는 노래가 플레이되고 있었고 저는 잠시 차를 세워야 했어요.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야가 뿌옇게 변하더니 얼굴로 눈물이 왈칵 쏟아졌기 때문에요.
제가 선택한 인생의 결과들에 큰 상처와 아픔을 겪으면서 힘들어했던 때, 눈물은 다시없을 거라 다짐하고 그렇게 삼키며 살아왔는데 무슨 일이었을 까요.
흐르는 눈물에 스스로가 너무 당황해서 혼잣말을 했어요. "나 지금 뭐 하는 거니? 이렇게 쉽게 노래 하나로 지금까지 버텨온, 약해지지 않겠다던 나와의 약속을 깨뜨려 버린다고?"
그 짧은 시간 스스로를 말로 다그치며 강한 척하는 나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주문을 외듯 반복해도 눈물이 멈추질 않았어요.
"멜로디가 슬펐어? 노랫말이 아팠어? 그런 게 눈과 귀에 들어온다고? 진짜 그럴 여유가 있다고? 도대체 뭐야, 구질구질하게 왜 울고 있는 건데? 왜!"
이런 우울한 감정을 안고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퇴근하고 싶지 않았어요. 저의 부은 눈과 얼굴 표정, 가라앉은 목소리와 기분을 아이들에게 금방 들켜버릴 테니까요. 한부모 가정에서 엄마인 저만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에게 불안하고 우울한 저의 심리상태가 그대로 전달이 되어선 안 되겠기에 더 이상은 안돼, 멈춰야 했어요. 제가 눈물을 버린 것도 아이들을 위해서였으니까요. 차 시동을 끄고 노래도 정지한 채 조용히 눈을 감았어요. 그 순간 눈물과 콧물이 동시에 저의 얼굴과 마음을 적시고 있었죠. 멈추려야 멈춰지지 않는 감정의 복잡함을 막으려고만 하지 말고 차라리 큰 소리로 엉엉 울고 고인 눈물은 여기서 다 쏟아내 버리자고, 저 자신에게 시간을 주고 한참을 소리 내어 울었어요.
문득 생각이 든 건 지나온 것들에 대한 후회보다는 앞으로의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감정이
갱년기라는 호르몬과 부딪치면서 우울함이 배가되어 감정조절을 못한 건 아닐까라는 거였죠. 그렇게 부정적이고 우울했던 감정을 눈물과 함께 흘려보내고 나니 기분이 한결 가벼워지더라고요. 비록 퉁퉁부은눈과 붉어진 얼굴만 남았지만 퇴근 후 돌아간 집에선 여느 때처럼 자신감 넘치고 씩씩한 엄마의 모습으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저를 마주하게 되었어요.
앞으로 갱년기라는 인생의 주기에서 이런 변곡점들이 얼마나 더 자주, 더 세게 몰아칠진 모르겠지만 그럴 때마다 이번처럼 스스로 잘 다독이면서 유연하게 넘어갈 수 있는 여유를 가져보려 합니다.
-사진출처: 네이버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