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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끌림 21화

유정의 과거-6

연애의 배신.

by 겨리

꽃피는 봄날처럼 설레던 둘의 연애는

행복하고 달달하만 할 것 같았다, 그 화를 받기 전 까는.


재훈과의 주말데이트.

약속시간에 맞춰 서둘러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유정. 평소 가벼운 메이크업 만으로 다니는 그녀였지만 그를 만날 때만큼은 더 생기 있어 보이는 핑크색조의 섀도와 립으로 멋을 내었다. 몸선이 드러나 보이는 캐주얼한 청바지에 살짝 달라붙는 흰색니트를 매치하고 전신거울에 비친 족스러운 모습에 미소를 짓고 있던 그때, 모르는 번호로 휴대폰 진동이 울린다. 저장된 번호가 아니었기에 굳이 받을 생각 없이 끊어졌지만 또다시 같은 번호로 울리는 진동소음에 통화버튼을 누른다.

"여보세요?"

"진유정 씨 전화 맞나요?"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그녀인지를 물어보고 있었다.

"네, 그런데요. 누구시죠?"

"한재훈 씨라고 아시죠?"

이 느낌, 직감이라고 하는 걸까? 귀에서 윙하는 소리가 울리더니 머릿속이 먹먹해지는, 말할 수 없는 묘한 기분에 휩싸여 핸드폰만 귀에 댄 체 거울옆 침대 위로 살짝 걸터앉는다.

"네, 재훈이 오빠를 어떻게 아세요?"

기다렸다는 듯 유정과는 일면식도 없는 그 여자는 선 유정에 대한 설임 하나 없이 당당하게 그와의 관계에 대한 얘기를 시작한다.

자신의 가게 인테리어를 해주면서 2년 전 알게 된 사이라는 것, 함께 붙어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서로에게 끌려 사랑하게 되었고 결혼까지 약속, 부모님께도 인사를 드린 관계라는 것, 대략 6개월 전부터는 연락이 뜸해지고 만나는 것도 계속 미루는 데 이상한 촉이 발동돼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난주 재훈이 집에서 자고 갈 때 휴대폰을 열어 았다고. 진사장으로 저장되어 있는 번호와의 연락이 일방적으로 많았고 문자를 열어보았더니 이 모든 상황은 진유정이라는 여자 때문이었구나를 알게 되었다는 것까지.

일방적인 상대방의 얘기가 끝나고 길고 긴 시간이 지난 듯 통화 끝에 그녀가 전한 말은,

"그래서 어떻게 할 거예요?"

"솔직히 지금은 아무 생각이... 엄청 당황스럽고 아직도 제가 무슨 말을 들은 건지 잘 모르겠어서요. 어떻게 해야 할지는 시간이 좀 필요할듯하네요 "

"그쪽 사정도 있을 테니 잘 생각해 봐요.

어떻게 하는 것이 본인을 위한 최선인지. 답은 이미 정해져 있을 테니까요."

상대방의 용건은 다 끝났다는 듯 미련 없이 끊어버린 전화뒤로 유정에게 들리는 뚜뚜거리는 소리만이 멍한 머리에 경고음으로 들릴뿐이다.

심장의 두근거림과 빠른 맥박소리가 양쪽귀에서 쿵쿵 데며 날이 서게 한다.

'내가 방금 들은 게 사실일까? 그럴 순 없는 거잖아.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당장 재훈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할 수도 있었다.

그러기에는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이 다 되었고 전화기로 들리는 목소리만으로 물어보고 확인하 싶지 않았다.

그를 직접 만나 이건 아니라고, 오해라고, 하는 말을 그의 입과 눈을 보며 듣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일단 만나자. 만나서 확인해봐야 해. 그 여자 얘기가 맞는 건지 오해가 있었는지, 있었다면 왜 그랬는지, 그것도 아니면 진심이 무엇이었는지. 나를 왜 그들 사이에 두고 장난친 건지.'

걸터앉았던 침대에서 힘없이 일어나 거울 앞으로 가까이 서서 자신의 창백해진 얼굴과 다시 마주 한다. 통화 전 굴을 생기 있게 물들였던 핑크빛색조 들은 더 이상 이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듯 어색해 보인다. 화장대 서랍을 열어 색이 바랜듯한 말린 장밋빛색의 립스틱을 꺼내어 핑크립 위에 덧바른다. 화사했던 조금 전과는 달리 차분하고 어두워진 분위기의 유정이 약속장소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선다. 이 일이 없었다면 재훈과의 데이트로 즐거웠을 시간이 지금까지 그녀가 알던 모든 것들이 거짓이었던 그가 털어놓을 말들로 가득 차게 될 그곳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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