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갈렙 Jan 19. 2024

있을 때 잘해

세탁기가 아프다.



'으아아아! 어떡해!‘



세탁기가 고장 났다. 어제까지도 잘만 작동했었는데, 오늘은 어디 아픈 사람처럼 그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는 것만 같다.




전자제품이 고장 났을 때는 ‘때리는 게 답’이라는 말도 있던데 왠지 그것만은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어 가만히 두었다. 왜 그럴 때 있지 않은가. 지금은 작동이 안 돼도 한 몇 시간 정도 두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멀쩡한 상태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믿음이 들 때.

사람도 때때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듯이, 저 친구도 그럴 거라 생각하며 깨지 않게 조용히 자리를 비켜줬다. 혹여 무리해서 웅크린 몸을 일으켜 인사할까 싶어 그러지 말라는 손짓과 함께.  




집에 돌아가기 위해 짐을 챙기는 순간에 생각했다. 아니 기대했다. ‘그 친구는 좀 괜찮아졌으려나? 뭐 좀 챙겨 먹었으려나?’




집에 들어오자마자 겉옷과 가방만 내려놓고 바로 세탁기 앞으로 달려왔다. 달려왔다기에는 한 세 걸음 정도이긴 하지만. 여전히 몸을 웅크린 채 가만히 있다. 안색이 좀 더 창백해진 거 같기도 하고. 그래도 기대감을 갖고 전원 버튼을 눌러 친구를 깨워본다.




이럴 수가. 비상이다. 친구가 의식마저 잃어버린 것 같다. 꼼짝 않고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응급실에 데려가야 한다. 당장에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한다.




이런, 영업시간이 끝났다는 자동응답기의 음성만 흘러나온다. “저기요! 여기 사람… 아니 세탁기 죽어요!”








다음 날, 서비스센터 영업시간 3분 전부터 대기모드 중이다. 전 날 밤에 검색해 보니 서비스센터에 서비스접수 하고 일자를 예약하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정보를 얻었다.

꽤나 오랜 시간 대기해야 겨우 상담원과 연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위급해 보이는 세탁기를 생각하며 빠른 통화 연결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기로 한다.




대학교 수강신청 이후 처음으로 초단위까지 표시되는 시간 프로그램을 켰다.



‘09:00’.



약속의 시간이 됐다. 미리 번호를 다이얼에 찍어놓았기에 바로 통화 버튼을 누른다. ‘내가 제일 빨리 전화해야지. 그나마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최대한 빨리 치료받게 해주는 거야.’

세탁기 없이 지내야 하는 불편함을 감내하기 싫은 얄팍한 감정에 그럴듯한 선한 이유를 덮어 전국에서 가장 빠르게 서비스센터 전화벨을 울리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통화량이 많아 현재 모든 상담원이 통화 중입니다. 간단한 문의는 홈페이지 혹은…’ 패배다. 대학교 수강신청에서도 인기 과목을 골라 담던 황금손으로 통했던 나의 완전한 패배다. 담담히 나보다 앞선 승리자들의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통화 연결이 되었다.




“네?



서비스받으려면 20일 이후에 가능하다고요?



더 빠른 날짜는 없나요?



아…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때로 접수해 주시고 혹시나 일정이 더 빨라질 수 있으면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상담원님께 읍소하며 통화를 마쳤다. 참고로 지금은 2일이다. 보름 넘게 나는 손빨래를 하거나 코인 세탁방을 이용해야 한다.



이 모든 상황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망했다.’



일주일이 지났다. 가족과 함께 살 때 내 빨래를 모두 해주던 엄마한테 미안할 정도로 나는 빨래가 많이 나오는 사람이었다. ‘내 빨래가 이렇게 많았었나’ 하는 생각을 5,890번 정도 한 것 같다. 하긴 거의 매일같이 bgm으로 세탁기 소리가 들렸었다.




세탁기가 보고 싶다. 아니 정확히는 세탁기 안에서 빨래가 돌아가는 그 역동적이고 활기찬 모습을 보고 싶다.



평소에 있을 때는 그 소중함과 중요성을 잊고 살다가, 막상 망가지고 나니 절실히 느끼고 있다. 손빨래도 어느 정도지. 이제 손이 아리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어렸을 적 들었던, 아니 귀에 흘러 들어왔던 트로트 곡의 가사 일부분이다. 뜬금없지만 아픈 세탁기 친구를 보며, 그리고 불편함을 느끼며 내가 갖고 있는 것, 누리고 있는 것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아니 너무 많잖아?’



생각해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좋아하는 유튜브 영상을 보고 들을 수 있는 눈과 귀, 사랑하는 사람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코, 세상 맛있는 것들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혀 등 신체적인 것만 해도 몇 가지나 되는지.

발목을 심하게 다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목발을 짚어야 했던 날, 나는 생각했다. 이것만 나으면 소원이 없겠다. 하지만 낫자마자 그 생각은 금세 사라지고 또 다른 것들을 갈망하게 되었다.




우리가 우울한 이유 중 하나는 ‘어떤 것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돈이든, 명예든, 혹은 사람이든. 갖지 못한 것에’만’ 집중하는 게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건 분명하다.

그럴 땐 내가 갖고 있는, 누리고 있는 것들을 돌아본다. 생각보다 우리가 많은 것과 함께하고 갖고,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감사함이 온다. 건강한 기분이 든다. 동시에 나에게 있는 것, 누리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들 중 하나만 사라져도 상당한 상실감과 불편함이 생기게 될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




있을 때 잘하자. 사람에게도, 물건에게도,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이전 05화 실수는 실패가 아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