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전날 밤, 세탁기 앞에 앉아서.
오랜만이다 그치.
평소랑 다르게 집이 좀 어수선하지? 못 보던 짐들도 나와 있고. 내가 봐도 지저분하긴 하다.
기분이 안 좋아 보인다고? 아냐 아냐. 딱히 엄청 신나거나 그런 건 아닌데 그렇다고 나쁜 건 절대 아니야.
아마 이것저것 신경 쓰느라 피곤이 좀 몰려와서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걱정 안 해도 돼.
아니. 진짜 시간 빠르지 않아? 벌써 우리가 만난 지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어. 처음 너를 보러 왔을 때 흉터는 없는지, 문제는 없는지 유심히 본 것도 기억나고 그런다.
그때는 이 정도로 오랜 기간 함께할 줄 몰랐는데. 이제는 이 정도로 시간이 짧게 느껴질 줄 몰랐네.
참 많은 일이 있었어.
여기서 너와 마주 보고 앉아서 참 많은 얘기를 했던 것 같아.
그만큼 남들한테는 못할 말들이 속에 가득 차는 그런 시기도 있었나 봐.
신입사원이었던 내가 어느새 회사에 적응을 끝마치기도 하고, 우리 처음 만났을 때 이제 막 태어난 갓난아기였던 조카가 지금은 뛰어다니고 말도 하는 어린이가 되고, 아무도 없이 혼자였던 내가 새로운 인생챕터를 시작하는 시점을 맞이하기까지.
옆에서 도와주고 내 얘기를 들어줘서 진심으로 고마워. 돌아보면 고맙다는 말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것 같아. 이래저래 너의 도움을 참 많이 받은 것 같은데 말이야.
아마 내일 우리가 마지막 인사를 하면 앞으로는 보기 힘들겠지? 이제는 너도 나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이전에 잠깐 봤던, 내일부터 너와 함께 지낼 그 사람을 도와주느라 또 한동안 정신이 없겠지.
그래도 난 너를 잊지는 못할 것 같아. 내 인생에서 중요한 변화가 많은 이 기간에 나와 함께 잊어준 너를 잊는 게 쉽지는 않겠지.
너에게 좀 더 잘해줄 걸 하는 후회도 든다. 너무 갑자기 아니냐고? 그러게. 평소에 있을 때 잘할걸... 그치?
내가 너와 다음에 함께 할 사람한테 너에 대해서 잘 말해놓을게. 어떻게 다뤄야 네가 좀 편해하는지, 너는 뭐랑 잘 안 맞는지 등등 말이야. 주책인 것 같아도 그렇게 하고 싶은 내 마음도 이해는 해줘.
우냐고? 아 안 울어. 우는 거 아니야. 짐 싸느라 땀을 좀 많이 흘렸네.
아. 시간이 너무 늦었다. 아직 짐을 다 싸지도 못했는데 큰일 났네. 내일 또 너무 정신없어서 얘기도 제대로 못할까 봐 이렇게 앉았어.
정말 정말 고마웠어. 나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줘서. 그럼 진짜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