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새들 남쪽으로 가는 날

북유럽 소설

by 마당넓은


새해에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야기를 읽었다.


나의 이야기, 이웃의 이야기

부모님을 돌보고 있는

모두의 이야기인 것 같아

가슴 아프게 공감하며 책 속으로

천천히 스며들어간다.


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

리사 리드센 지음
이 이야기는
생을 마감해 가는 주인공이
살아온 지나간 여정을 독백처럼

그려내고 지금 겪고 있는
상황들을 순간을 상기시켜
주는데 영상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등장인물
보 - 주인공
한스 -아들
투레 - 둘도 없는 친구
식스텐 - 영혼의 단짝 반려견
엘리노어 -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손녀
프레드리크 - 아내 (치매로 요양원 있다)
앙리 드, 요한나 요양보호사



아내의 치매로 요양원으로 떠나보내고

일상을 요양사들과 반려견

식스텐과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텨 내고 있었다.
아내를 그리워하며...


아내의 체취를
기억하기 위해 치매에 걸린
아내의 스카프를 항아리에
담아 놓는 사람이 이 세상에
나 말고 또 있을까.



사랑하는 방식을 소통하지 않은 채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다가
아들과 주인공의 골은 깊어만 간다.


항상 이랬던 것은 아니었다.
그가 어렸을 때는 우리의 대화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고, 쉴 새
없이 종알거리는 입을 다물게 하기가
쉽지가 않았다.
-
대부분의 날이
비슷비슷했던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죽음의 문턱에서도 삶의
이어갈 수 있는 힘과 이유는
손녀 엘리노르가 아닐까

생각만으로도 에너지 넘치는
주인공이 상상이 간다.


엄지손가락으로 사진 속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
-
나는 힘주어 사진을 꽉 쥐었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나는 엘리 노르를 통해 계속
살아갈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치매에 걸린 아내 곁에
간다는 건 주인공에게는
기억하기 싫은 고통이다.
매번 아들이 약속을 하면
알아보지도 못하는데 엄마를
왜 찾아가야 하냐고 시큰둥해
하던 그는 사실은 아내를
제일 그리워했고 그 그리움이
아내의 모습에서 사라질까 봐

슬퍼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낯선 사람이 내
몸에 손을 대는 것을
싫어해요"

평생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거의 없었던 당신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
나는 당신이 나 때문에 화를
낸다고 생각했다.
당신의 눈빛에 담긴 분노는
그동안 당신에게
소리쳤던 내 모습을
상기시켰기에 부끄러웠다.



행동이 불편한 하루하루가
주인공 보의
삶을 갉아먹고 있었다.
아들 한스는 더 이상 반려견은
보에게 도움보다 위험을 초래
할 것이라는 걱정으로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것을 추진한다.
유일한 보의 편인 손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엘리노르의 한마디에 절망을 한다.


"할아버지 저 좀 보세요"
-
"저는 식스텐이 가족과
함께라면 더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엘리노르가 제 다리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엘리노르의 손길에 내 다리가
벌벌 떨리는 것 같았다.
-
-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한스에게 배신을 당하는 것보다
엘리 노르에게
배신을 당하는 것이
더 견딜 수 없었다.




보의 하루는 앙상한 가지처럼
겨울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기저귀를 차야 했고, 식사량도 줄어들고
점점 누워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아내의 오솔길 꽃밭이 눈앞에
어른 거린다.


나는 눈앞에 펼쳐진
꽃의 바다를 바라보았다.
파란색, 흰색, 노란색,
녹색, 클로버, 초롱꽃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커다랗고
아름다운 주황색 꽃
-
-
만약 당신이
여기 있었더라면
분명 꽃을 꺾어 꽃다발을
만들었을 것이다.




아내를 그리워하는 주인공 보가,
스웨덴의 광활한 꽃밭이 눈앞에
잠시 펼쳐졌다. 울컥!



"식스텐은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면 다칠 수 있어요.
그런 일이 생기면
아버지는 식스텐을
제대로 보살펴줄 수가
없어요.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아내가 요양원으로 가고
동반자인 식스텐이
떠나가고 있다.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현기증 날 일들이 코앞에
들이닥쳤을 때의 노인이 느끼는 무력감은 바위로 짓눌렀다.


너도 알다시피 난 네가
자랑스럽단다.
나는 안간힘을 쓰며
겨우 말을 이었다.
-
-
한스는 내가 잊고 있었던
그만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소년 시절의 눈빛이었다.
내가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들을 때의
눈빛.
마치 이 세상에는 그와
나밖에 없다고
말하는 듯한 눈빛.



마지막 가는 길.
서로가 알았던 몰랐던 속 이야기로
구름처럼 펴올라 마침내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한
주인공 보의 일생이 그들 곁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주인공 보가 시간의 흐름을
순리대로 따라가지 못하여
벌어지는 일상들이
가족 간의 사랑으로 지나간
순간을 기억하고 추억하며
뺏어낸 이야기는 가슴 아프게,
마음 따뜻하게 새해를 열어주었다.



노인의 삶을 마지막의 이야기는
아내를 그리워하고 하나뿐인
아들과의 건조한 관계
요양사들의 세심한 관리를
불편해했지만
결국은 가족의 알뜰한 보살핌을
알고 생을 마감한다.

북유럽 소설을 처음 접해보았다.
작가의 섬세한 글이 스웨덴의
풍광을 상상하고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

노인으로 가고 있거나 모시거나
혹은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면
우리 시대의 자화상 같은 글들은
읽어낼수록 더 깊이 빠져들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을
읽었던 날은 유난히 반짝이는
하루였다.
눈 덮인 겨울 따뜻한 온기로

다가온 소설이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