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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날

by 마당넓은


어제 자기 전 눈 소식이 있었지만
눈이 워낙 오지 않는 곳이라
와야지 오는 거지 중얼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아침이 밝아오고 커튼을 여는데
온 세상이 하얗다.
눈이 왔다 오고 있다. 하늘에서
하얀 솜뭉치가 마구마구 내려
오고 있었다.

한 참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난 또
바빠지기 시작한다. 마음이 급하다.
하얀 눈길, 눈 내리는 새하얀 눈길을
나가서 밟고, 만지고, 느끼고 싶었다.
내 안의 아이가 깨어나고 있었다.

아침은 먹는 둥 마는 둥 식구들의
소리는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주방 정리를 빠르게 끝내고서
모자를 쓰고 마스크에 장갑, 머플러,
두툼한 패딩까지 야무지게
챙겨 입고서 집을 쌩하게 나왔다.

뽀얀 눈이 밟히는 소리
아! 얼마만인지 눈이 오기는 해도
자주 오지도 않았고 온다고 해도
살짝 헛 뿌리기 정도였는데.

오다가 그치기 일쑤이고
날이 온화한 편이라 금방 녹아버려
이 기분을 느끼기엔 늘 부족했는데
기억도 가물거리는 뽀드득소리를
내 귀로 듣는다.
뽀드득뽀드득

벌써 눈길에는 많은 사람들의
아침이 어지럽게 밟혀있었다.
모두 내 마음 같았을까
큰 발자국 작은 발자국 모두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길이 자꾸만 허허실실 미소가 지어진다.
누가 보면 저 사람 왜 저래
그랬을 것 같다.


폰을 꺼내고 사진을 찍어댄다.

비슷한 사진을 몇 장이나 찍었든지
눈이 고팠는지 혼자만의 시간이
고팠던 건지 핸드폰은 오랜만에
제 기능을 하고 있다.

집에서 나올 무렵 조금씩 잦아지던
눈이 내 마음을 알기나 하듯이
실컷 맞아보라고 함박웃음을
짓더니 펑펑 함박눈으로 바뀌었다.

사람들도 안 보이는 강 주변
산책길이 이제 다 내 것이다.
눈도 길도 내 마음도
내가 다 가졌다.

눈이 많이 오는 곳에서는
하늘에서 쓰레기가 내리고
휴지가 떨어진다고 하지만
난 내 안의 아이를 꺼내고
강아지 마냥 신이 나 종종거리는
발걸음마저도 춤을 추고 있는 게

눈 위로 선명히 새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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