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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 May 21. 2024

입대, 그리고 공황

스물한 살이 되고 군대에 들어갔다. 첫날을 무사히 보낸 뒤 둘째 날, 훈련소의 복도 한가운데에서 갑작스럽게 난 쓰러졌다. 공황 발작이었다. 평소였다면 발작이 찾아옴을 느끼고 홀로 참았겠지만, 혼자 있을 수 없었던 훈련소에선 그러지 못했다. 결국 폭발한 발작은 평소보다 훨씬,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찾아왔고, 난 두 시간을 내리 쓰러져 있었다. 한 번도 남들 앞에서 보이지 않았던 모습을 군대에서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 드러냈다. 그때부터 내 악몽은 시작됐다.


손 발이 떨리고 숨이 몰아치고 정신을 가담을 수 없는 고통. 처음으로 기절할 정도의 발작을 겪을 뒤엔 다시 발작을 일으킬 게 두려워 증상이 악화될 뿐이었다. 군대에서 찾아간 병원에선 뻔한 말들과 도움이 안 되는 약을 줄 뿐이었고 군대라는 환경 안에서 정신은 피폐해져만 갔다. 핸드폰도 담배도 없이 쉬는 것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그곳에서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발작을 기다리며 나는 점점 무너졌다.


뭘 할 수 있었을까. 뭘 해야 했을까. 거기에서 난 그저 154번 훈련병, 정신병에 걸려서 발작을 일으키는 미친놈이었는데, 말 그대로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자유를 빼앗기고 극단적으로 망가진 정신 속에서 애타게 희망을 갈구했다. 그렇게 입대 전 기억을 하염없이 떠올렸지만 거기에서 찾은 건 후회뿐이었다. 조금만 더 잘해볼걸, 조금만 더 노력할걸. 뒤늦게 나를 돌아보고 이렇게 후회 속에 파묻혀 고통스러워할 줄 알았다면, 고통을 피하기만 했던 삶이 이렇게나 괴로운 거였다면, 그렇다면 조금 더 열심히 살아볼걸.


다른 세상에 온 듯했다. 그리고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모든 걸 실패하고 감옥에 처박힌 죄수처럼 하염없이 밖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훈련소에선 비행기가 자주 보였다. 비행기가 자주 지나가는 건지, 아니면 내가 하늘을 자주 쳐다본 건지. 새장 속의 새처럼 하늘을 그리워했다.


살기 위해 내가 든 건 책이었다. 작가가 될 거라면서 스무 살이 되고는 한 번도 글을 쓰지도 책을 읽지도 않은 내가, 반쯤 나가 있는 정신으로 책을 읽었다. 그리고 노트에 닥치는 대로 떠오르는 걸 적었다. 그건 살기 위한 글이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희망도 없이 하루를 살 것 같아서 적은 글. 그게 묘하게 마음에 와닿아서, 다시금 작가를 꿈꾸기 시작했다. 일 년 반 동안 글을 쓰자. 그리고 밖으로 나가면 작가가 되자. 그렇게 다짐했다.


전역한 지 세 달이 안된 지금 가끔 그 다짐을 떠올리곤 한다. 난 그때 내가 바라던 대로 살고 있을까. 아마 한참 모자라겠지. 짧았던 눈물자국이 길어졌음을 느끼는 요즘, 가끔은 그게 버겁게 느껴진다. 고통으로 새겨진 흉터가 지금의 날 만들었단 걸 안다. 내 근본이 거기에 있음을 알기 때문에 나는 계속 고통을 찾는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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