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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너머 Aug 11. 2023

8.참아야 한다, 참아야 한다.

아무리 버거워도 참아야 해. 

내가 그런 문자를 보낸 이유는 말하기 부끄럽지만 유튜브 때문이다. 그와 헤어진 후 전에 썼던 것 처럼

난 유튜브에 쌓여있는 타로 채널과 연애를 컨텐츠로 한 유튜브를 하루도 빠짐없이 봤었다. 재회타로는

물론이고, '절대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남자가 당신에게 돌아올 수 있는 방법' 같은 제목들이 달려있으면

무조건 클릭했으니까. 나에게 발렌틴은 딱 그만큼 단호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자기가 마음 먹으면 뒤도

안 돌아볼 사람. 게다가 이제 내 빈 자리를 채워주고 있는 친구들도 여러명 생겼고 자기 집에서 내가 과연

생각이나 날까 하며 그래서 우리 관계는 이제 아예 종결났구나 라고 생각했었는데, 


'너 지금 어디야?' 라는 말이 먹힐 거라고 해서 그렇게 답장을 보냈고 그는 바로 내 문자를 읽은 후

답장을 신속하게 보냈다. '나 집, 왜?' 라고. 

하지만 그 후 난 그에게 답장을 하지 않았다. 답장 하지 말걸, 연락을 아예 하지를 말아버릴 걸 하는 후회가

물 밀듯 밀려왔기 때문인데 아마 그때의 나는 발렌틴한테 나름의 복수를 하고 싶었던거 아닐까 생각한다. 

나도 너때문에 맘 고생 꽤나 많이 했는데 너 한번 당해봐라 하고. 물론 이렇게 계속 거절만 하다가 이제 얘가 

정말 마음 접고 연락 하지 않으면 어쩌지 라는 생각을 한두번 한게 아니지만 시간이 가면 갈 수록 나도 좀 더 

마음을 다부지게 먹을 수 있었다. 정말 우리 둘이 다시 잘 될 거라면, 얘가 정말 날 다시 사랑할 마음이 있다면

시기가 언제갸 됐든 뭔가 되겠지 라고. 

누군가는 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왜 사진도 안지우고 차단도 하지 않냐고. 그러면서 연락은 받지 않고 연락 오면 괴로워하고. 왜 너 스스로를 괴롭히냐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입장이 전혀 이해가 안되는 게 아니었다. 아니 차라리 훨씬 그들의 말 쪽이 납득

가능했다. 하지만 머리로, 내 이성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였다고 하면 너무 책임감 없는 설명이려나. 


사진은 지울 수 없는 것이었다. 사진은 '그'만 담겨있는 것이 아닌 '우리'가 담겨있었고 나의 여러 날이었다. 

정말 내 인생에서 반짝반짝 하고 빛나던 순간들인데 단지 한 사람이 내 삶에서 떨어져 나갔다고 해서 

그 전체를 도려내야 하는 건 나한테 못 할 짓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사진을 보니까 너무 슬프다며 징징대지만

않는다면, 내가 오롯이 사진을 간직하는 것에서 오는 그리움을 감내할 수만 있다면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차단은,.. 차단은 내가 그와 아직 남겨 놓고 싶은 마지막 끈 같은 것이었다. 

맞다, 그때까지도 난 그와 이별할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았던 거였다. 이별 인것처럼 보였지만 설마, 설마

진짜 이별이겠어 하고 있을 때, 그럴 때 발렌틴은 예상보다 빠르게 나한테 다가왔다. 


물론 이 감정의 소회는 지금에서야 가능한거고 후에 돌이켜보니 그랬구나 싶은거지 그때는 아직도 나와의

관계를 무책임하게 져버린 그를 용서할 수 없다는 마음이 더 강했다. 게다가 굽히고 들어오니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해서 더 받아주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고. 

그리고 난 또 이 상황을 혼자 이겨내보고 싶었다. 그렇게 당해놓고 홀랑 걔가 고작 연락 몇번 했다고 

넘어간다면 내 자존심도 허락을 안 할뿐더러 날 그렇게나 챙겨준 사람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굳게 마음먹고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한다를 몇번이나 혼자 마음속으로 외쳤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Putney 집에선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결론이 서고 있었다. 추운 집, 위생적이지 않은 거실과 

화장실. 매니저 언니도 이미 내 숙소를 본 후로 집을 같이 찾아주고 계셨고 마침 Battersea 라는 동네쪽에

2 bedroom flat 인데 lockdown 때문에 한국으로 잠시 나가 있는 동안 3달간 머무를 사람을 찾는다고 해서

냉큼 뷰잉을 갈 수 있었다. 정말 다행히도 Battersea 동네 자체가 부촌인데다, 이 장소도 한달에 900파운드

였지만 신식아파트여서 지금 살고 있던 숙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좋았다. 

그리고 난 돈지랄(?)을 했다. 당연히 숙소 주인에게 내가 숙소 조건이 너무 열악해서 한달도 살수가

없을 것 같다며 돈을 돌려줄 수 없겠냐고 어필을 했지만 Deposit 도 없는 집에서 그런 걸 해줄 리가 만무했고

나도 기대하지도 않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 집에서 1달만 사는 것도 나에겐 무리였고 5일만 살고 그 자리에서

바로 난 Battersea 쪽으로 이사를 나가버렸다. 


내가 정말 운이 좋았던 건 그 아파트에서 원래 같이 살기로 했던 flatmate 분도 마침 내가 이사 가는 날

한국으로 출국을 하게 돼서 난 그 넓은 아파트를 혼자 쓸 수 있게 됐다. 

락다운, 추운 겨울 날 난 버스를 3번 이상 타며 짐을 가까스로 다 옮길 수 있었고 적어도 3달간은 

정착할 수 있게 됐다. 몸을 둘 곳이 확실히 정해지니 마음도 편해지고 잠깐이나마 걱정을 덜었다는 생각에

난 비로소 '일상'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것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논문도 열심히 준비하고, 수업도 열심히 듣고 과제도 열심히 했다. 발렌틴 생각이 안 나는건 아니었다. 난 

아직도 그와의 이별의 후유증을 쉬이 벗어나지 못했지만 몸이 편해지니 마음이 약해지는 건 예전보다

덜했다. 


차츰 차츰 이 집에서의 일상이 조금씩은 안정되어 갈 때쯤에 밤에 갑자기 날아온 카톡. 

한국 시간으로는 새벽이었기 때문에 웬만한 일 아니면 연락할 사람이 없고 난 직감적으로 발렌틴이라고

생각했다. Putney 에서 내가 답장을 하지 않은 후 약 1달 정도가 흐른 시간이었기 때문에 괜히 더 떨렸다. 

열어본 핸드폰 속에는 역시나 그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지만 이번 메시지는 달랐다. 

그 메시지를 받고 난 그에게 왜 지금까지 연락을 하고 싶지 않았었는지 깨닫게 됐는데, 이번 그의 텍스트엔

텍스트 한 줄 한줄 그의 진심이 깊게 담겨있었다. 단순히 나에게 보낸 문자가 긴 줄글이라고 해서 진심이 

느껴진게 아닌, 정말로 나와 이별 한 후 그의 마음의 여정을 훑을 수 있을 만큼 진정성 있는 문자였다. 

그의 전 문자들은 앞뒤 설명 없이 '잘 지내?' 라던가 '왜 전화를 안 받아? 전화 좀 받아주면 안될까?' 였다면

이번엔 단순히 부탁으로 밀어 붙이는 것이 아닌 그의 감정의 토로였고 내 마음은 동했다. 

난 고심했지만 고작 1달간 혼자 살아낸 거면서 이제 발렌틴 없이도 잘 살고 있었다는 은근한 자부심도

생겼고 그걸 그에게 알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생각은 발렌틴에 대한 내 감정을 내가 간과했음을 증명한 꼴이 되어버렸지만, 

난 그에게 비로소 답장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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