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부터 짜증나게
그 날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에게 문자로 다시 한번 차이고 나서 우린 정말로 이젠 볼 일이 없겠구나
라고 깨닫게 되는 그 기분. 그 감정은 딱 집어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복합적이었다.
슬픈것도 슬픈건데 실감이 나지 않았던게 난 그와 거의 3년동안을 연인사이로 지내면서 헤어질 거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것도 이런 식으로. 아직도 걔 얼굴을 볼 수 없다는게 믿기지 않았지만 현실은
내가 보는 그대로 주어져 있었고 그 괴리감에서 오는 서글픔은 연애를 처음 해본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컸다.
내가 슬픔을 제대로 느낄 새도 없이 언니 오빠와 친구들은 빨리 도착했다. 아마 언니 오빠의
배려였으리라. 퉁퉁 부은 눈으로 맞이했지만 그들은 애써 모른 척 해줬고 크리스마스 이브는 덕분에
최악은 면할 수 있었다. 간만에 걔 생각 안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술도 마셨으며 그에 곁들여 좋은 대화까지
나눴으니, 내가 제일 좋아하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기에 걸맞았던 좋은 이브로 기억 된다.
그리고 당연히 언니 오빠는 내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주기 위해 그에 대한 얘기는 1도 꺼내지 않았고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 였다.
새벽 내내 술을 마시다가 손님들은 거의 크리스마스 날 동이 트고 나서야 떠났고 난 다행히도 아침부터
우울해할 필요 없이 난리가 난 집을 깨끗이 치우고 닦고 하느라 아침을 그렇게 보냈다.
그래도 크리스마스 저녁쯤에 밥을 해먹으려니까 텅 빈 집에서 조금 외롭기는 하더라. 거기에 더해
당연히 그의 생각이 나기는 났다. 나한테 그렇게 큰 엿을 줬던 그였지만 아직까지도 그 시점에는 그리움의
부등호가 실망감이나 증오보다 훨씬 커서 걔가 나한테 어떻게 했었는지는 쉽게 잊혀져버렸다.
또 걔가 친구들이랑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낼 지 뻔히 알고 있으니까 더 전전긍긍했던 것도 얘는 친구들이랑
크리스마스를 굉장히 즐겁게 보낼 것이고 떠난 나 따위는 생각 조차 안하겠지란 생각에까지 이르니까 너무
서글퍼지고 슬펐다.
락다운만 아니었으면 한식당에 나가 일이라도 하면서 머리를 비울 수도 있었을텐데 그것도 안됐고 석사
논문에 매달리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논문의 주제를 생각해내는 것부터가 이미 장애물이었는데 이별을
겪고 나서는 내 머리가 내가 원하는 것만큼 돌아가는 것 같지도 않았고.
브런치스토리의 익명성에 기대어 내가 그 기간동안 어떤 것에 의존했는지 말해본다면, 유튜브에 있는
타로 였다. 난 사실 타로를 아직도 믿지 않는다. 그리고 이 이별 이전엔 그 믿음은 더욱 더 덜했다. 사주는 또
몰라, 타로는 도대체 어떤 구석에서 신빙성이 있다는 건지 논리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았기 때문에 타로를
재미로라도 본 적이 없었다.
아, 예전에 내 친한 친구가 헤어졌을 때 잠실 롯데타워 한 쪽에 위치해있는 타로를 즉석으로 보고 싶다고 해서
본 적이 있는데 이제서야 솔직히 말하면 좀 웃겼다. 이런거에 아아 하면서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는 친구가
왜 이러나 싶기도 하면서 또 동시에 안타깝고 안쓰럽기도 했다. 얘가 얼마나 남자친구랑 헤어진게 힘들면
이런 신빙성 없는 거에 고개를 주억 거리고 있으려나 싶어서. 난 그때도 발렌틴과 사귀고 있는 중이었지만
나와 발렌틴의 사전엔 '이별' 이라는 단어 자체가 등재되어 있지 않았다. 아마 내가 그와 사귀는 중이었으니
어느 정도 친구의 마음을 이해해서 타로까지 보는 그녀의 절박함을 아예 모른 척 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을 이제 보지 못한다는 게 어떤 느낌일지 어렴풋이 상상은 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타로는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인간은 역지사지라고.
난 타로에 죽자 살자 매달렸다. 그것도 유튜브 타로에.
'재회 타로', '이별 타로' 등등. 새로운 타로 채널을 매일 찾아봤고 최신 타로가 제일 잘 맞을 것 같아서
울적해지기만 하면 타로를 검색해서 조회수 제일 높은 타로 채널을 들어가 보기도 하고 별 짓을 다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대부분의 타로가 다시 연락이 올거라고 했고 희망고문인걸 알면서도 그 희망고문에라도
매달리고 싶었던 나는 일부러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많이 해주는 타로 채널이 용하다고 자기최면을 하면서
그 타로 채널의 비디오를 훨씬 더 많이 보기도 했다.
그도 그럴게 내 상황과 그의 상황, 성격까지 다 맞추긴 했으니까 어머 어머 진짜 맞네 하면서 일부러
그 채널에 있는 재회 타로는 모조리 다 본 것 같다.
아마 난 그때즈음, 그가 날 못 잊고 돌아온다는 확신을 누군가에게 받는 것에서 위로가 필요한 것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렇게라도 해야 내 마음에 진 응어리가 풀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또 내 주변인들이 걔가 얼마나 너를 못되게 대했는지를 일깨워주면서 난 점점
이성과 현실감을 되찾고 있었고 내가 걔한테 미안할 게 하나도 없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난 걔한테 다 미안해하고 난 후라 억울한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는데 걔가 날 못 잊고
돌아온다는 타로는 나한테 조금이나마 억울함의 해소를 향한 내 갈증을 푸는데 도움이 되어줬다고 하면
웃길까?
또, 그에게 느끼는 원망과 억울함은 아직까지 그에게 느끼는 그리움을 이길 수 없었다.
그가 아무리 이 관계의 마무리를 예의없게 맺었음에도 내가 가지고 있던 그와의 끈을 댕강 잘라버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게 만약 쉬웠다면 우리의 관계는 무용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일테니.
여튼 난 그렇게 크리스마스 이후 곧 다가올 2021년까지 친구한테 징징대고, 혼자 울고, 타로 보고, 집 찾으러
다니고, 얼마나 집을 찾는게 어려운지 실감하며 절망하는 순간들을 반복했다.
행복에 가까운 감정이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하지만 어쨌든 다가오고 있던 새해. 그 날도 어김없이 저녁을 만들어 먹고 무료하게 핸드폰을 하던 중, 갑자기
날아온 문자.
또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그의 문자였다.
'잘 지내고 있는거지?'
심장이 두근두근 했다. 두근두근이 뭐야, 미쳐 날뛰었다. 하지만 이성으로 이 즉각적인 감정을 눌러야 했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된단 생각이 잠시나마 동했던 내 마음을 진정시켰고 난 더욱 더 그가 날 어떻게
대했는지 최대한 리마인드 하며 간신히 그에게 답하려던 것을 참을 수 있었다.
참은 나도 장했고 또 한편으론 내심 그가 나에게 연락이 왔다는 것이 기뻤으며 기쁘다는 걸 느꼈다는 사실
자체도 자존심 상하고, 별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친구에게 전화해서 이제 내 마음가짐은 어떻게 해야 하는건지, 연락 안 받긴 했는데 한편으론 또 얘가
연락 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진짜로 마음을 포기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고 솔직하게 내 감정의
밑바닥까지 다 드러내며 조언을 구했다. 난 내 마음을 혼자 다스릴 줄 아는 성숙한 사람이 아니었고
누구라도 내 얘기를 들어주지 않고서야 도저히 이 널뛰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가 연락 왔다는 것에 대한 기쁨보다는 왜 갑자기 또 연락을 해서 내 마음을
헤집어 놓으려고 하는건지 열이 받기 시작했다. 또 내 하루를 망쳐놓으려고 하는건지, 내가 그렇게 만만한지.
내가 잠깐 생각났다는 것 때문에 그렇게 매몰차게 날 버린 사실은 잊어버리고 맘 잘 정리하려고 하는 날
또 흔들려고 하는 건 아닌지. 도대체 난 너한테 뭐였길래 이렇게 하고 싶은대로 하는건지.
난 이제 그에게 흔들려 생각 없이 행동할 타이밍은 지났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나라도 날 꽉 붙들어 놔야했고
마음을 다시 한번 굳게 먹었다. 혼자서 다시 옛날 사진 보면서 마음이 약해지는 날들은 적어도 없어야지 하고.
허나, 내 굳은 다짐을 그가 누구에게 알려주기라도 했듯이 그는 다시 한번 연락이 왔다.
그것도 전화로.
때는 12월 31일 늦은 저녁, 1월 1일로 넘어가기 직전 난 TV에서 불꽃놀이를 기다리고 있는 런던 전역을
보며 나도 나름대로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창문에 딱 붙어있었다. 혼자지만 새해는 우울하게 궁상떨고 싶지
않아서 아무도 보지 않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그리고 울리는 전화.
그의 이름이 뜨자마자 내 심장은 또 한번 쿵 하고 떨어졌다.
메시지도 아니고 전화였다.
받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