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은 왜 벌어진 걸까?
난 이미 그들이 빨리 2층을 비워주지 않는 단 거에서 골이 날대로 난 상태였고 그와의 관계가 순조롭게
항해하고 있는 배 같았다면 사실 그렇게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테지만 그와의 관계도 악화되면 악화됐지
나아진다는 느낌을 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 그 당시엔 나라는 사람 자체가 날카로웠다. 흔들리는 멘탈을
붙잡고 중심을 가질 여유가 없다 보니 모든 사람들에게 날이 선 채 행동했고 그래서 집에서도, 아르바이트
하는 곳 에서도 걸핏하면 뭐가 마음에 안 드는 사람처럼 불만이 얼굴에 가득했고 남들에게 너그럽지도
못했다. 너그럽지 못했던 내 마음가짐이 화근이었던 걸까?
내가 살고 있던 그 집은 영국의 전형적인 집으로, 나무로 만들어진 집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걸어다닐 때
나무가 삐걱삐걱 거리는 소리는 피할 수 없었다. 그들의 방 밑에 살고 있던 우리는 그들이
의도치 않게 내는 층간소음으로 스트레스를 받곤 했는데 나보다 훨씬 둔한 발렌틴도 걔네가 심하다고
생각했을 정도면 내가 예민하게 굴었다고만은 할 수 없는 정도의 소음이였음은 분명하다.
그들은 남들보다 좀 더 덩치가 컸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어쩔 수 없는 층간소음이라고 생각 하려고 몇 번
노력해봤지만 가끔씩 쿵- 쿵- 하는 정도가 너무 심했고 그래서 참을 수 없어 거실에 나와보면 그의
플랏메이트들도 그 소리 때문에 잠깐 놀라 방에서 나와 천장을 보고 있는 걸 몇번 보기도 했을 정도니까.
난 가끔씩 잠이 들기 전에 그렇게 소리가 들리면 너무너무 화가 나서 이건 아니다 싶어 방에서 굴러다니던
막대기 같은 걸 이용해 천장을 쿵쿵 하고 쳤는데 그건 효과가 있었고 내 막대기가 한번 천장을 훑고 나면
잠시 그 소리가 잦아들곤 했다. 내 의도가 전달됐으니 조금은 나아지겠지 해도 그때 뿐, 쿵쿵 대는 소리는
멎지 않았다. 가끔씩 나도 막대기로 위를 쿵쿵 치는 정도로만 내 의사를 전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용기 내어 올라가서 그 사람들의 기분이 충분히 나쁘지 않은 선에서 조금만 조심해 줄 수 없겠냐고
말했겠지만 그때의 나는 그 정도의 해결책을 생각할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있지 않았다. 발렌틴한테는
더 이상 부탁해도 아무 행동을 취하지 않는 단 걸 알고 있었으며, 말을 이미 해봤다는 공허한 답변만
들려왔기 때문에 걔의 선에서 이 층간소음이 해결되는 건 바라지도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
모두가 다 외출하고 일층엔 나만 남아있던 토요일 오후.
난 친구와 만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데 또 이들이 쿵-쿵-. 화장을 하는데 갑자기 화가 치밀어올랐다.
아니 아무리 덩치가 좀 크고 걷는 데 어쩔 수 없는 소리라고는 하지만 너무 심한거 아니야? 라는 생각이
머리를 확 스치면서 난 나가기 전에 다시 한번 내 의사를 전달해야지 하고 막대기로 또 한번 쿵- 하고 쳤다.
그런데 다른 때와 다르게 갑자기 확- 하고 멎는 발소리.
좀 이상했지만 여튼 알아먹었나 보다 하던 찰나 갑자기 둔탁한 계단 내려오는 발 소리가 들리더니
내가 있는 방의 문을 쾅쾅 누군가 두드렸다.
아-올 것이 왔구나. 이들도 이제 내가 막대기로 두드리는 것에 화가 났구나. 라는 걸 일찍이 예감한 나는
물론 가슴이 미칠듯이 뛰었지만 나도 이미 화날 대로 화난 상태라 아무렇지 않은 척 문을 열었다.
당연히, 정말 당연히 너무 너무 무서웠다. 만약 발렌틴이 있거나 다른 플랏메이트가 있었다면 또 모를까,
철저히 그때의 난 혼자였다. 오롯이 이 사태를 견디고 해결해야 했던 건 나뿐이었기에 가슴이 미칠듯이
뛰었지만 그때 그 깡다구는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르겠다.
문을 열어보니 거구의 두 남녀가 가재눈을 한 채 다짜고짜
" 너 왜 쿵쿵 거려? 너 왜 쿵쿵 거리냐고!! 왜 계속 천장 치는데?! " 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나에게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난 침착하게, 그리고 하찮다는 듯한 표정을 최대한 지으면서 " 너네, 진짜 좀 과해. "
라고 말하니까 남자가 " 뭐가 과하다는거야? 아니 우리가 일부러 내는거야? 그냥 걷는거잖아!! ' 라고
응수했고 여자는 질 수 없다는 듯 " 그리고 지금이 밤이야? 우리가 밤이면 이해를 해! 지금 두시야 두시!
두시에 걷지도 못해? 왜 계속 쿵쿵 대는거야 스트레스 받게!! " 라며 소리를 질렀고
나도 나름대로 쿵쾅거리는 심장을 애써 무시하며 계속 하지만 너무 심했다, 사실 나도 참아왔고 밤마다
잠도 잘 못잤다며 항의했지만 그들은, 특히 여자 쪽은 내 말이 들리지 않는 듯 했다.
씩씩거리던 그녀는 흑인이었는데 그녀는 생각 이상으로 피해의식이 심했던 사람이었고, 갑자기 자기
인종얘기를 들먹이기 시작했다.
" 너 내가 흑인이라 만만하게 보는거야?! 어? 너 저번에 내가 인사할 때도 무시하고 지나갔지? 어?! "
라며. 어이가 없었다. 내가 미쳤다고 남이 인사하는데 그걸 무시할까? 고마워서 더 밝게 인사했을 거다.
인종차별 문제에 누구보다 예민한게 나였고 약하다면 내가 더 그 문제에 대해선 약한 존재였다.
동양여자들도 만만치 않게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서는 힘들게 싸우고 있는 부분이 충분히 있는데,
걘 오로지 나를 인종차별을 '하는' 사람으로만 바라봤다.
욕을 섞어가며 " 너 그때 내가 알지도 못하는 너네 나라 말로 막 전화하면서 지나가다가 내 인사는
싹 무시하더니 뭐라뭐라 했잖아. 그거 분명히 내가 너네 말 못 알아들으니까 내 욕 한거 잖아 맞지?! "
하며 얼토당토 않은 말을 꺼냈는데 더 말도 안되는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난다.
그녀가 정말 갑자기 내 정수리 쪽을 주먹으로 쾅- 하고 쳤다.
순간 벙쪘지만 난 맞고는 못 산다. 이게 미쳤나 싶어 나도 그녀를 향해 주먹질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갑작스런 상황에 놀란 그녀의 남자친구가 우리의 중간에 들어와 우리를 막았고 내 주먹은 그녀의
머리에 닿지 못했다. 난 너무 화가 나고 몸이 덜덜 떨려 나도 소리를 빽빽 질렀고 어디서 지금
내 머리를 치냐고 막 따졌지만 이미 내 말 따위는 그녀에게 들리지 않는 듯 했다. 비교적 이성을
다시 찾은 남자 쪽은 상황을 무마하려고 노력하는 듯 했지만 그녀는 계속 해서 나와 말싸움을 벌이다가
다시 한번 내 머리를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확 하고 쳤고 다시 막아서는 그 남자를 신경쓰지 않고 난
발길질을 했다. 아니 어디서 머리를 치고 난리야!! 발로 그녀의 하체 쪽을 마구 차기 시작했지만
그녀가 날 때렸던 것보다 나의 타격은 미미했던 것 같다.
더 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다고 판단했던 그녀의 남자친구는 둘다 그만하라며 확실히 중재하기 시작했고
그녀는 분노를 조절할 수 없었나본지 괴성을 지르더니
" 너 오늘 밤에 잘 수 있나 봐! 마음먹으면 우리가 얼마나 더 삐걱댈 수 있는지 확실하게 보여줄테니까! "
라며 2층에 올라가더니 화가 어린 괴성과 함께 발을 굴렀다.
한 바탕 소동 후 난 그제서야 긴장이 풀리며 몸이 덜덜 떨렸지만 떨리는 몸을 가눌 여유가 없었다.
이 집에 그냥 있다간 또 뭔 일이 벌어질 지 몰랐고 난 얼른 그 집을 빠져나왔다. 아주 다행히도 난 울지 않고
일단 원래 만나기로 한 친구와의 약속을 취소했다. 사정을 간단히 설명하니 친구도 너무 놀랐지만
약속 취소에 대해서 이해를 해 줬고 난 발렌틴이 일하고 있는 파이브가이즈로 향했다. 가는 길에 얼마나
마음이 떨리고 몸도 달달달 떨리던지. 그와는 이미 남자친구-여자친구의 관계성은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었지만 적어도 내가 얼마나 이 일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인지는 하고 있는 정도였고
게다가 어쨌든 남자친구였다. 이제 내가 맞기까지 했으니 얘가 나서서 이 사태를 해결해주기를 간절하게
바랬다. 난 가는 길에게 그에게 문자를 했고, 그들에게 맞았다고 연락했다.
그는 ' What?! ' 이라며 놀라더니 ' They definitely crossed the line. Now I can't bear with it. '
즉, 선을 넘었고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일단 와보라는 답을 받은 내가 잠깐 안심했다고
하면 나 너무 비참해지려나? 내가 생각하는 이상의 리액션이 그에게 없으면 어쩌나 하고 살짝
걱정도 했다. 그 정도로 그가 나에게 이제 무관심해져 있었던 때가 그 때 즈음이다. 그러나 내가 맞은건
다른 수준의 얘기였을 테지.
그의 일터로 향하면서 지하철에서 조금씩 제정신이 돌아오는 나는 그때부터 모든게 어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영국에서 내가 누군가에게 맞다니. 왜 이런 일이 생긴거지? 귀납적으로 한번 사고해보자.
이런 일이 생긴건 저들을 만나서고, 저들을 만나게 된 이유는 내가 이 곳에 이사를 와서고, 이 곳에
이사를 온 건 발렌틴과 살기 위해서 왔고, 또 돈도 아낄려고 왔고.
그래서 내가 맞은거네? 하- 진짜. 돈이 뭐길래. 그리고 발렌틴 넌 도대체 뭐냐? 영국에서 쫓겨나서
집을 찾게 하지 않나. 이제 생전 얼굴도 모르는 외국인한테 머리를 맞게 하질 않나.
이런 일을 당해버린 내 자신이 너무 멍청하고 비참하고 실망스러웠다.
내 2021년은 왜이렇게 거지 같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게 다 엉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