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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너머 Aug 26. 2023

22.다정은 어디 가고 말 바꾸는 너.

근데 나도 잘 한 거 없다. 

오랜만에 날 만난 그는 왠지 모르게 나보다 훨씬 들떠보였다. 날 평소처럼 대하는 너 같았지만 뭔가 조금은

들떠 있는 그를 보면서 난 괜히 더 아무렇지 않게 굴었다. 난 물론 날 1시간동안 기다렸던, 아니 

1시간보다 훨씬 더 오래 기다렸을 그에게 몇번이나 미안하다고 사과했고 그는 별 거 아니라고 말했다. 

내 임시 숙소로 향하는 길에 우린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안부를 물었고 그나 나나 별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냈더라. 그는 여전히 파이브가이즈를 다니고 있었고 이사 간 집에서도 나름 잘 적응해서 살고 있다고 했다.그리고 더 웃겼던 건 내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그는 그의 플랏메이트 얘기를 꺼냈다.

사실 그가 이사를 갈때 같이 살기로 한 플랏메이트 1명이 있었는데 그 플랏메이트는 일본인으로, 여자였다.

묘하게 들뜬 듯한 그를 보면서 기분이 참 싱숭생숭했던 기억이 있고 사실 한국 가서도 

(정말 정말 찌질하지만 솔직하게 쓰기로 작정한 이상, 끝까지 솔직해보련다. 익명성에 기대어.)

발렌틴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리스트를 뒤져서 그녀의 인스타 아이디도 알아내어 가끔씩 들어가보곤 했다. 

예전에 그가 말했던 그 일본인의 직업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찾는 건 쉬웠고 혹시나 둘이 무슨 진전이 

있어 사진이 올라오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던 날도 몇 밤 정도 된다. 


내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그는 대뜸 '나 그 플랏메이트랑 이제 거의 얘기도 안한다?' 라길래 난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왜? 너 신났었잖아.' 하며 은근 걔를 떠봤고 분명 내 의중을 알아챘을 그 또한 내 의도를

모른 척 하고 '내가 언제 신났냐. 여튼 걔 영어를 정말 하도 못해서 대화가 안 이어지더라고. 거기다가 여행

가는 걸 너무 좋아해서 한달마다 여행을 떠나더라.' 라며.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다. 정말 아주 가끔씩 그녀의 스토리를 훔쳐 봤던 적 있는데 그 때 딱 한번 스토리에

누군가와 밥을 먹은 사진을 올렸고 그 사진에 언뜻 보인 팔이 아마도 발렌틴 팔이라고 난 추측을 했으며 

그 날 어찌나 친구에게 욕을 했는지 모른다. 빼도박도 못하는 데이트 사진을 보면서 '그래 어차피 우린

헤어졌는데 뭐' 하며 맘을 다 잡기도 했는데 말이지. 


마치 바람핀 남자친구가 도둑이 제 발 저려 말하는 것처럼 먼저 말을 꺼내는 그를 보면서 '어쩌라고'와 동시에

아주 살짝 안도했다고 하면 난 바보인걸까?

그렇게 이상한 대화를 하며 도착한 임시 숙소는 퀄리티에 비해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한 집이었고 혼자 

지낼 수 있다는게 큰 장점이었다. 1시간을 넘게 기다린 그는 주차도 힘겹게 하고 내 짐까지 옮기는 것을

도와주었다. 어떤 면에서 참, 얘는 답 없이 다정하다. 매번 말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그러는게 문제일 뿐이지. 

발렌틴은 곧 오후에 일을 가야 해서 떠났는데 또 막상 같이 있다가 생각보다 일찍 떠나는 그를 보면서 훅-하고

찾아오는 공허감에 조금 힘들었다. 얼른 이 우울감을 소멸시키기 위해 짐을 후딱 풀며 정리하다가도 또 

조용한 집 안에 앉아 있으니 엄마와 헤어졌던 생각이 나서 엉엉- 하고 울기도 했다. 


그러나 우는 것도 잠시, 할 일이 산더미였다. 일단 생활비를 벌어야 하니까 다시 다니기로 한 한식당도 

바로 일을 시작해야 했고, 취업 준비도 해야했지만 가장 급하고 중요했던 건 바로 집을 구하는 거였다. 

이젠 정말 철저히 내가 혼자서 해야 하는 것이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지금까지는 뭐 워홀 처음도

페이스북에서 어떻게 얻어걸린 첫 집에, 그 이후론 쭉 발렌틴과 살았고, 헤어지고 나서도 매니저 언니오빠의

도움으로 살았지만 이제 이 비자가 남아있는 2년이란 기간동안 자리 잡고 제대로 살아볼 안정된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하지만 이 집을 구하는 과정은 영국인들에게도 최대 스트레스인 일인데 심지어 나같은 외국인에겐

넘어야 할 장벽이 굉장히 많았다. 특히 부동산을 끼고 하는 프로세스는 너무 복잡하고 시간도 많이 걸려서 

혼자 하면 맘 고생을 꽤나 많이 한다. 비싼 렌트는 너무 당연해서 굳이 말을 꺼내지도 않았다. 

집을 구하는 것에 관한건 다음에 좀 더 자세히 풀기로 하고. 


그래도 영국에 좀 살아봤다고 뭔가 다시 내가 살던 자리로 돌아온 느낌이었으며 반가웠다. 또 날씨가 꽤

좋은 6월 쯤에 영국에 와서 날씨도 최대한 즐기고 싶기도 했고. 이럴 때마다 매번 찾게 되는 사람은 당연히

그였다. 친구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가장 나답게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오로지 발렌틴과 있을 때였고

그와 있을 때 제일 편안한 행복감이 찾아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엔 매번 그였다. 

그와의 관계에서 추구하는 편안함은 정말로 중독 된 것 마냥 멈출 수가 없었다. 친구들이 내가 그렇게 하는게

너의 가치를 깎아 먹는 일이라고, 좀만 혼자 있는 걸 참아보라고 충고도 여러번 해줬고 나 또한 발렌틴을

4년간 알아오면서 반복되는 이 관계 속에 배운 것들 중 하나는 내가 밀어냈을 때 확실히 그는 당겨진 다는 

것이었다. 그가 나에게 좀 더 친절해지는 모멘트들은 항상 우리가 오래 보지 않았을 때나 내가 연락을 

잠시 끊었을 때 였다. 근데 이것도 난 내 나름대로 엄청 꾹꾹 참은거였다. 사실 매번 고독할때, 힘들때 다 

연락하고 싶었지만 맞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참은건데. 

그래서 우린 데이트도 한번 하고 야속하게도 그 데이트 또한 너무 행복해서 의도치 않게 '아 난 역시 그인가'

라는 얼토당토 않는 생각도 여러번 하고. 


그렇지만 다시 우리 관계의 맨얼굴을 봐야 하는 상황이 와버렸다. 그리고 그 맨 얼굴은 항상 내가 힘든

시기를 겪고 있을 때 찾아온다. 정말 불나게 집을 찾아다녔지만 코로나가 막 끝난 그 시기쯤, 원래라면 

나온 집들이 많아야 할 시기인 6-7월. 학생들이 다 자기 나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아서 빈 집이 많아야 

했지만 코로나 끝의 여파로 다시 영국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너무 많아지면서 그때의 런던은 집이 없었고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이제 1000파운드 아래로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을 고려해봤을 때 가격과 퀄리티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는 없다는 걸 깨닫고

가격을 포기했는데도 집을 뷰잉 할 수 조차 없었다. 그도 그럴게 돈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뷰잉도 하지 않고

집을 계약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결국 난 계약한 3주의 끝이 다가오면 다가올 수록 너무 조급해졌고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스트레스가 생각나 배가 아파올 정도로 힘들었던 그때. 

난 다시 발렌틴을 떠올렸다. 


보고싶어서가 아니라 그가 한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내가 한국으로 떠나기 전 그가 다정하게 건네줬던 말. 

너 만약에 집 못 찾으면 집 찾을 동안 내 방에서 지내도 되니까 너무 걱정 마.


사실 그 말을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하고 남겨뒀던 건데 이제 상황이 이렇게까지 오니까 나도 어쩔 수 

없었다. 돈을 아끼면서 집을 알아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안다, 정말 안다 미친 짓이라는 걸. 이게 과연 헤어진 남녀 사이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걸

알지만 나와 그는 그랬다. 이 이상 더 붙일 이유가 없다. 정말 나와 그는 그랬다. 할말이라곤 이게 전부다. 

물론 그 여자 플랏메이트가 걱정이 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난 그 집에 머무를 시간이 거의 없을 테고 

오래 머무를 것도 아닌데다가 일단 그와 그녀가 아무 사이도 아닌거니까. 괜찮겠지 싶었다. 

내가 너무 곤란했으니까 이성적으로 생각할 여유도, 내 자존심을 챙길 겨를도 없었다. 

막상 말을 꺼내려고 보니까 조금 두려워졌던 것도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바로 오라고 하겠지, 

생각했는데 내 예상은 무참히 짓밟혔다. 


그는 너무 곤란해했다. 원래 같으면 당연히 되려 내가 미안해하며 신경쓰지 말라고 했을 테지만

이 상황에 믿었던 마지막 보루에서까지 이렇게 되니까 난 잠시 내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상식대로 

행동하기는 커녕 서운한 티를 팍팍 냈다. 이게 사는 문제가 되고 막상 내가 몸을 누일 공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사실에서 오는 중압감은 타인의 상황에 대한 이해를 불가능하게 했다. 

난 그가 먼저 제안했다는 사실로 계속 그를 들볶았고, 머리로는 그가 거절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거절이란 것을 알면서도 너무 억울해서 그를 계속 비난했다. 

날 더 비참하게 했던 건 그의 문자였는데, '내가 에어비엔비 찾아서 돈 내줄테니까 거기에서 잠깐

있는 건 어때?' 라고. 아니, 내가 돈이 없냐고. 돈이 없어서 그랬다고 해도 자존심 상해서 거절 했을 문제인데

그가 생각했던 최대한의 배려는 나에게 절대 먹히지 않았다. 이래서 사람 관계란 거 어렵다. 

아마 자기가 뱉어 놓은 말에 책임을 지려고 했던 그 나름대로의 해결책이었지만 난 그 제안을 받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았다. 너무 힘들어하는 나를 보고 그는 결국엔 일주일 정도는 머무를 수 있게 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는데 지금 같으면 됐다며 쳐다도 안 봤을 제안이지만 정말 그땐 딴거 다 필요 없고 일단은 

집이 필요했다. 집이. 


정말 안되면 7일이라도 살아야지 하며 있는데 마침 한인사이트에 아주 단기로 짧게 5일정도 머무를 수 있는

숙소가 있었고 난 그 곳을 예약했다. 말이 일주일이지만 그 일주일이 나에게 얼마나 지옥같을지 알고 있고

이미 상해버린 감정으로 그를 마주할 수도, 그러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에. 

지출이 컸지만 그렇게 플랏메이트 눈치를 보는 그를 보고 싶은 마음은 정말 1도 없었다. 그래서 그에게 

나 이틀만 자고 나머지 5일은 그냥 다른 곳 생겨서 거기서 지내기로 했다고. 

그리고 너무 당연하게도 그는 나를 잡지 않았다. 안 잡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혹시- 했는데 역시였다. 

그러니까 더 괘씸하게 느껴졌다고 하면 나 참 이기적으로 들리고 보일 거라는 거 아는데. 그땐 그랬다. 

너무 야속하고 미웠다. 


매번 제일 힘들때마다 내 손을 놓는 너 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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