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그래야만 했냐.
사실 이사 문제를 발렌틴이 그때 갑자기 꺼냈던 건 아니었다. 그 전부터 슬슬 이 집을 계약 했던 것보단
좀 더 빨리 빼려고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해왔기 때문에 그 말이 크게 갑작스럽진 않았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진 모르겠지만. 물론,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땐 배신감도 크게 느꼈다. 왜 다 너 맘대로
들어오라고 하고 또 나가라고 하는건지. 더 이상 이사에 관한건 그만 신경 끄고 싶었는데 이제 너희들이
다 나가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에 나도 어쨌든 나가야 한다는 뜻이 담겨있는 그의 말은 그에게 있어서
얼마나 내 의견이 중요하지 않은지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그래서 처음 들었을 땐 당연히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내 마음이 어떨지 공감은 할 수 있는거냐고. 그러나 나도 딱 그 정도였다.
그 포인트까지 가선 나도 더 이상 감정을 소비하는 말다툼 따위 할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았으며 어찌보면
잘 됐다 싶었다. 이 이상한 관계의 출발점은 같이 살아야 할 수 밖에 없었던 환경 탓이 클 터인데, 강제로라도
내가 나가게 되면 이 요상한 너와 나의 사이도 완결을 볼 수 있을테니.
우리에겐 물리적인 거리가 필요했던 게 사실이었고 나도 더 이상 그의 결정에 가타부타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뭔갈 해서 바뀔 것도 아니었지만.
그때부터 그는 그가 후에 살 방을 구하러 다녔다. 방 찾는 것이 쉽진 않아보였지만 이제 아예 3월달에
집을 모두 다 비워야 했으므로 발렌틴과 다른 플랏메이트들은 다음 살 공간을 구하러 바쁘던 반면 난, 이미
한국행 비행기를 끊어 놓은 상태였다. 그때쯤의 나는 상처 받고 해진 마음을 꽁꽁 숨기기 위해 온통 날이
선 채 모두를 대할 만큼 예민해져 있었으며 더 이상의 스트레스 받을 만한 일이 생기면 와르르 하고 무너지기 직전의 상태였다. 정말 그때는 런던이 지겨웠다. 코로나라 여행 갈 생각은 꿈도 못 꿨을 뿐더러
오로지 내 탈출구는 가족이 있는 '한국'뿐이었다.
그때의 내 우울감은 이미 피크를 쳐놓은 상태여서 심지어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나 언니가 웃는 표정을 본 게 너무 오래 전 일 같아요' 라고 했으니 말 다 했다. 물론 그 말도 울면서 들었다.
딱 그만큼 매일매일을 버티고 있었을 뿐 영국에서 살아가는 느낌조차 희미해지고 있었고 비자가 발급이
됨을 확인 받자마자 난 비행기표를 샀다.
지금 가장 나에게 필요한 것은 가족들의 품이었기 때문에 한국 행 비행기를 사자 마음에 파도처럼
안도감이 밀려왔고 이 한국행으로 나를 힘들게 하는 모든 것들을 내팽개친채 달아나고 싶었다. 그 때쯤엔
아르바이트를 다니던 한식당에서도 워낙 날카롭게 굴었던게 몇몇 동료들에게 안 좋은 인상을 줬는지
사람들과의 관계도 개판이 되어가고 있었고, 이젠 정말 다 됐다 싶었다.
항상 모든 것에 갖은 핑계를 대가며 그 핑계 뒤에 숨기 급급하던 나는 이번에도 한국행을 통해
지금 당면해 있는 모든 문제들을 미뤄놓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난 이사를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일단
이사는 그때가서 생각하자-, 이 정도에서 더 이상의 고민을 중단했고 맘같아선 한국에서 취업준비를
하다가 정말 취업이 될 것 같으면 그때 다시 영국으로 돌아갈까 생각도 했을 만큼 영국으로 다시 돌아올
확신조차 흐릿했으니까. 그래서 돌아오는 날짜도 정해놓지 않고 난 무작정 한국행 편도 티켓을 끊었다.
그렇지만, 한국으로 아예 돌아가기로 결심한건 아니었으니까 모든 짐을 바리바리 싸서 무모하게 한국으로
갈 수는 없었기 때문에 남겨 놓을 수 있는 짐은 두고 가야 했고 이번에도 다정함이 무기인 내 '전' 남자친구는
내가 한국에서 다시 돌아올때까지 맡아주기로 했다.
짐도 하루하루 조금씩 싸고 발렌틴이 가져가야 할 짐도 따로 싸면서 그 애증의 방을 떠날 준비를 했다.
그 방 안에서 별 일이 다 일어났는데, 이제 정말 다시 영국으로 와도 이 집으로 돌아올 일은 없겠구나 하니
마음이 괜시리 울적해졌다.
그런데 그 울적함에 겹쳐 날 더 묘하게 싱숭생숭하게 만들었던 건 바로 발렌틴의 이사였다.
사실, 내가 떠나고 나서 그가 이사를 갈 줄 알았는데 그는 하루 빨리 이 집을 떠나고 싶어했다. 다행히도(?)
내가 있어서 그런 것 같진 않았고 이 집을 떠나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간단 사실을 통해 자신의 삶도
리프레시 하는 걸로 동일시 하고 싶었던 듯 하다.
나, 그리고 그는 그만큼 변화가 간절했다. 단지 우리의 관계에 국한된 것 만이 아닌, 각자의 삶에 있어서도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또 더이상 안주하지 않고 확실하지만은 않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했다.
쳇바퀴처럼 굴러가던 그때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던 건 주거공간의 변화였기에 그땐 그 공간에 제대로
작별인사를 할 여유도 없을 만큼 우린 얼른 달라지고 싶었다.
물론 나도 같은 마음이었지만 무슨 심보인지, 나보다 그가 먼저 떠난다고 하니 그게 그렇게 기분이 이상했다.
상실감이 온 몸을 휘감았고 뭔가 다시는 그를 못 볼 것 같다는 이상한 기분에 슬펐다. 그는 그렇게 빨리
이사를 하지 않아도 됐는데 굳이 굳이 이사를 이르게 나갔고 이제 그 집엔 정말 나와 발렌틴 친구 1명만
남아 있게 됐다. 물론 나도 한국을 가기까지 일주일도 채 안남은 시간이었지만 발렌틴이 없는 집에 혼자
들어간다는 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별로였다. 날 보호해줄 수 없단 그 느낌부터 해서, 이제 그가 남자친구가
아니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기분이 이상하다며 연락조차 할 정당한 이유가 없었다.
그가 이사를 간 날은 너무나도 맑은 날이었는데 그와 그의 친구들이 그의 이사를 도우러 모두 다 떠나고
그 큰 집에 나 혼자만 덩그러니 남았을 때의 그 울적함은 이루 설명할 수 없다.
내 마음과 다르게 날이 너무 맑아서, 햇빛이 너무 밝아서, 온도가 너무 따뜻해서. 공허함의 부피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졌고 이럴 바에야 일이라도 그냥 가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 내가 떠나는 그 날. 밤 비행기 였기 때문에 엄청 서두를 필요는 없었지만 싸도 싸도 나오는
짐때문에 짐을 정비해야 하기도 했고 이 집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기 보다 공항에서 한국으로 간다는 설렘을
친구 삼아 공항에서 머무르는 게 더 나은 옵션 같았다.
게다가 프린트를 해야 했기 때문에 난 그날도 어김없이 발렌틴에게 부탁했고 한국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발렌틴의 얼굴을 보러 파이브가이즈로 갔다.
그를 만나는데 그 순간에 다시 알 수 없는 애틋함이 밀려왔고 나조차도 당황했다. 그땐 내가 정말 언제 다시
영국으로 돌아올지도 몰랐고 또 이젠 예전의 장거리 연애를 하던 우리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으로
가도 그에게 따로 연락할 일은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그에게 인사하는데 기분이 이상해져 마지막으로 그를 꼭-하고 안았다.
아직까지도 공항에 그의 배웅 없이 혼자 가는 그 현실 자체가 나에겐 너무 부자연스러울만큼 아직도 그는
나에게 정신적으로 큰 버팀목이었고 그는 나에게 있어 아직도 누구와도 대체하기 힘든 큰 몫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싸우고, 그렇게 오해하고, 그렇게 볼 꼴 못 볼꼴 가릴 것 없이 다 보여주며 끝장을 봤던.
어떤 못생긴 사랑 스토리와 견주어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던 우리의 어찌보면 미숙하고 못났던 내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 역할을 톡톡히 해냈던 그였지만, 그래도 난 그를 떼 놓지 못했다.
내가 한국으로 가는 날 비가 추적추적 내렸는데 우버에 짐을 실으면서, 그리고 우버를 타고 드디어
그 집을 떠나면서 속으로 혼자 안녕- 했다.
한국에서 머무르는 기간이 그를 내 마음속에서 완전히 떼어놓을 수 있는 충분한 연습기간이 되길
간절하게 바라면서, 나 또한 발렌틴이 먼저 찾으러 떠났던 그 변화를 간절히 바라며
나도 드디어 한국으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