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한 모습이 감성의 비대와 연결되다
2006년 1월 5일, 나는 3.8kg의 단단한 사내아이를 품에 안았다. 신생아실에서도 가장 크고 포스가 넘쳤던 아이. 처음 본 순간, 중소기업 사장님처럼 느껴졌고, ‘이 아이는 뭔가 다르다’는 막연한 감각이 스쳤다. 그 아이는 그 후에도 계속 다르게 자랐다. 빠르게, 크고 진하게.
한 시간이 멀다 하고 깨는 밤. 분유를 더 타서 먹이고서야 잠들었던 그 시절. 백일이면 보통 6kg 전후인 아이들이 많았지만, 우리 아이는 이미 9.5kg. 돌 무렵엔 ‘그래프 바깥’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너무 빠른 성장, 너무 진한 존재감. 아이의 몸은 늘 현실보다 한발 앞서 있었다.
하지만 이 아이는 몸만 컸던 게 아니었다. 다섯 살 유치원생이 “내일은 유치원 못 가요, 택배 받아야 해서요”라고 말해 담임 선생님을 당황하게 할 줄 아는 어른스러운 개그감, 네 살 크리스마스에 받고 싶은 선물이 ‘공기밥’이라며 순수하게 외치던 직진 본능. 성장곡선처럼 뻗어나가는 몸 사이사이에 사람의 온기와 농담, 그리고 이상한 조숙함이 스며 있었다.
초등 1학년, 부모의 결혼기념일 저녁식사 자리를 아이가 계산했다.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오늘은 제가 사드릴게요’라고 했다고 한다. 장사하던 식당 사장님도 처음 보는 광경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질서를, 마음을 쓰는 방식을 아이는 어느새 몸으로 먼저 익히고 있었다.
늘 1년에 10kg씩 몸무게를 키워가며 자란 아이는 초등 5학년 때(80kg) 태권도 대회에서 은메달을 받았다. 겨루기에서 많이 맞았는데 왜 은메달인가 했더니, 헤비급 참가자가 둘뿐이었다. 허탈하고 웃기면서도, 그 은메달을 당당하게 목에 걸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 왠지 뿌듯했다.
중3이 되었을 땐 130kg. 어딜 가나 성인 취급을 받았다. 까페에서 음료를 사면 “주차하셨나요?”라고 묻는 직원,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에선 50대 신사가 “선생님, 이 우산 당신 거죠?”라고 공손히 묻는다. 고등학교 1학년엔 반장이었고, 올블랙 패션에 갤워치까지 차고 출석부를 들고 교실로 들어가던 그를 고3 선배들이 교사로 착각해 인사했다. 모두가 겉을 보고 말 걸었지만, 나는 안다. 이 아이는 노안이지만 노심(老心)은 아니다. 속은 더 따뜻하고 부드럽다.
이 아이는 도시락을 스스로 싸 간다. 김밥 대신 큐브스테이크. 어린이날 선물로 육회거리를 사달라 했고, 정성스럽게 소스를 만들어 가족들에게 시식시켰다. 먹는 일에 대한 관심은 요리에 대한 창의성으로 확장됐고, 결국 외식조리과가 있는 특성화고로 진학했다.
고등학교 2학년, 학교 지침으로 모의고사를 보게 되었을 때, 아들은 밤새 공부해야 한다며 야심차게 선언했다. 그러나 ‘밤샘’의 정의는 달랐다. 공부를 위한 밤샘이 아니라, 시험 시간에 푹 자려는 밤샘. "시험 끝날 때까지 교실 밖도 못 나가고, 폰도 못 보니까 미리 자두면 손해. 그냥 시험 빨리 치고 책상에 엎드려 자야지!"
웃기지만, 너무 이 아이다운 계획이었다. 계획은 실패했고 2시에 잤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이 계획을 세운 네 마음이 예쁘다. 어떻게든 네 방식으로 하루를 잘 살아보려 애쓰는 거니까.’
겉으로 보기엔 늘 어른 같았던 이 아이는, 실은 누구보다 오래 어린 감성을 지닌 아이였다. 1988년 도시의 아이들 ‘달빛 창가에서’를 즐겨 부르고, 노래방 번호까지 외워 친구들 앞에서 부르며 "너 몇 년생이야?!"라는 핀잔을 듣는다. 아이의 몸이 비대하듯, 감성도 그만큼 커져 있다. 노안은 얼굴에 있었지만, 따뜻한 감성은 마음 깊숙이 있었다.
나는 이 아이를 보며 ‘존엄’이란 단어를 떠올린다. 남과 다른 길을 걷고, 다른 속도로 자라며, 세상의 기준에 들지 않는 아이가 자기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히 살아갈 수 있게 돕는 일. 그것이 부모의 사랑이고, 교사의 사유이자, 인간으로서의 연대다.
사람들은 몸무게나 외모, 시험 성적이나 사회적 기술로 아이를 판단하려 한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 아이는, 누구보다 섬세하고 인간적이며, 누구보다 일찍 '사람 간 거리'를 고민해본 존재라는 것을. 도시락을 자기가 싸고, 엄마 아빠 고깃값을 자기가 내며, 경찰서에서 아빠의 무죄를 주장하던 그 아이의 일관된 태도는 하나였다. 자기 안의 감정과 감각을 솔직하게 살아내는 용기.
나는 교사로서, 엄마로서, 이 아이와 함께 자라고 있다. 겉만 보면 웃기고 이상한 이야기들의 나열 같지만, 그 안에는 하나의 철학이 있다. 세상이 정해준 기준이 아니라, 자기만의 리듬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존엄.
이제 나는 말한다. 이 아이의 연대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건 지금도 진행 중이며, 그 비대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의 감도를 높이며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 여정의 배경음악으로, 조용히 한 곡을 신청한다.
**도시의 아이들 – 「달빛 창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