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by 리하




최근 젊은 층 사이에서 전염처럼 번지고 있는

생경한 샤워법이 있다. 빛을 완전히 차단한 채

어둠 속에 몸을 맡기는 시간,

사람들은 이를 '다크샤워'라 부른다.


시각이라는 예민한 감각의 스위치를 잠시 내려두면,

역설적으로 들리지 않던 내면의 소리들이 선명해지기

시작한다. 외부의 모든 자극이 소거된 심연 속에서

비로소 가장 진실한 나를 마주할 수 있다는 그 말에,

내 안의 호기심이 나를 불 꺼진 욕실로 안내했다.


눈을 떴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시커먼 까망이

온 세상을 덮었다.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소리는

평소보다 육중하게 고막을 울렸고, 살결에 닿는

물줄기는 유독 차갑게 감각을 깨웠다.


그 지독한 고립 속에서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차올랐다.


만약 어느 날,

내 세계가 이토록 갑작스럽게 끝이 난다면

나는 어찌해야 할까.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에 불이 켜지기 전,

까만 화면 위로 하얀 글자들이 흐르는 엔딩 크레딧처럼 내 삶이 막을 내린다면.


내 인생이라는 작품의 마지막 페이지엔

과연 누구의 이름이 기록될까. 나를 보러 와준 관객은

몇 명이나 될지, 혹여 그들이 남길 감상평이 너무 박하지는 않을지 진지한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내 인생은 과연 별 몇 점짜리 영화로 남게 될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어둠 속에서 나도 모르게

피식,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인간이란

죽은 뒤에 내려지는 채점표와 평가에도

이토록 신경을 쓰는 존재구나 싶어서이다.


그러나 질문의 끝에서 마주한 진실은 명확했다.

내 세계가 저무는 그 찰나까지 오래도록 곁을 지킬 이는 누구일까. 찰나의 침묵 속에서 나는 그 누구의 얼굴도

떠올릴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진동하는 숨소리는 오직 하나뿐이었으니까.


그래, 아마도 그곳엔 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슬프지는 않았다. 본래 백 명의 쓰다듬는 손길보다, 내 오른손을 왼 어깨 위에 포개어 스스로를 다독이는 토닥거림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므로.


누군가에게 기대어 서는 법을 배울 때, 우리는 동시에

그 누군가가 사라졌을 때 무너지는 법도 함께 배운다.


재밌는 사실은, 처음엔 무너지는 법을 몰라

나 역시 한없이 아래로, 밑으로 고속열차를 타고 추락한 적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결국 다시 서는 법을 배우지 않는가.

나를 다독이는 법을 아는 사람은 무너지지 않는다.


이제는 안다.

내 인생이라는 영화의 유일한 관객이자 냉철한 비평가, 그리고 마지막까지 기립 박수를 보내줄 이는 결국

나여야 한다는 것을.


타인의 평가는 찰나의 소음으로 흩어지겠지만,

내가 나에게 건네는 이 안온한 토닥거림은 내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지워지지 않는 문장으로 남을 것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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