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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편선 Sep 30. 2023

봄과 가을 그리고 사랑

가을앓이를 하는 친구를 보며

여름도 예전의 여름이 아니다. 다들 아열대 기후가 된 것 같다고 한다. 

올해는 유독 무더운 여름이었다. 

꽤 오래 가물었다가 또 꽤 긴 장마였다.

그래도 말복 지나 처서를 지나니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이면 제법 가을 느낌이 난다.


나는 가을앓이는 없는 편인데, 봄앓이는 연례행사이다. 때로운 가벼운 몸살감기처럼 때로는 독감처럼.

어느 해는 몸이 아프기도 하고, 어느 해는 마음이 울렁거리기도 한다. 

'아! 봄이 오는구나'하는 생각에 또 한편으론 설렌다. 


그리곤 오렌지 한 봉지를 사들고 들어온다.

나의 봄앓이를 이겨내는 비법은 오렌지다. 귤도 아니고 레몬도 아닌 오렌지여야만 한다. 

내 몸이 오렌지를 원한다. 

한 사나흘 오렌지를 먹고 나면 봄이 회복되곤 한다. 

오렌지로 봄앓이를 이겨낸 후에는 맘껏 봄의 설렘을 즐긴다.

불멍을 하러 북면 노지 캠핑장을 가기도 하고, 벚꽃을 보기 위해 퇴근길에 평상시와 다른 곳으로 방향을 잡기도 한다. 

멀리 가지 못하면 퇴근 후 단대 앞 천호지에 차를 세워두고 커피를 내린다. 


가을은 그저 좀 우아하게 즐기고 싶어진다. 

커피향이 유독 진하게 코끝을 스치고, 

어느 수필가의 글에서처럼 낙엽도 한번 태워보고 싶고, 

유달리 파아란 하늘 아래 우아한 손짓으로 나를 부르는 억새와도 만나고 싶다.


나의 봄, 가을 맞이를 생각하며 사람 사이의 관계 그 중에서도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나이와 상관없이

봄은 시작하는 연인이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설레는 일인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울렁거린다. 

만나도 좋지만 만나려고 옷을 고르고, 화장을 하고, 집을 나서는 그 시간만으로도 충분하다. 

핸드폰에 그 사람 이름만 떠도 미소가 지어진다.

20대에 첫사랑을 하던 나,

그리고 세월이 좀 더 흘러

결혼 전 남편과 만나며 설레던 나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아! 그때 나 참 행복했구나' 싶다. 


그러나 시작하는 연인은 힘들다.

설레며 만나러 갔는데, 사소한 것 때문에 말다툼을 하기도 한다. 

나와 생각이 달라 이해하지 못해서 속이 답답할 때도 있다.

시작하는 사랑으로 어느 정도 극복이 되긴 하지만 힘든 것은 힘든 것이다.

나의 봄앓이처럼.


나이와 상관없이

가을은 오래된 연인이다.

입던 옷 그대로 만나려 나가도 괜찮지만 그저 무심히 티셔츠만 새로 갈아입는다.

때로는 만나자는 연락이 귀찮다. 

그저 그 사람을 만나면 편안하다.

못마땅한 것 투성이인데 그럼에도 뭐 그리 이해 못할 것도 없고, 뭐 그리 싸울만한 것도 없다. 


그러나 오래된 연인도 때로는 설레고 때로는 가슴 울렁거린다.

이런 설렘과 가슴 울렁거림이 없다면 연인이 아닌 것이다. 

만나면 더 행복하고 더 편안하게 즐긴다.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기에 만남의 깊이가 있다. 

사박사박 익숙한 동네 뒷산으로 걸어들어가는 나의 가을 즐기기처럼.


시작하는 연인도, 오래된 연인도 그들 사이에는 사랑이 있다. 


가슴앓이, 몸앓이를 하는 봄도, 좀 심심하지만 편안하게 즐기는 가을도.

봄과 가을.

그 속에는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고, 온몸으로 사랑하는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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