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없어보니 더더욱 지금이라도 해야된다고 생각하는 일.
2025년의 십이 분의 일이 지나갔던 1월.
1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나는 올해 가장 잘한 일을 꼽을 수 있다.
그건 바로 가족사진. 제주에서 지내고 있는 나를 만나러 가족들이 여행을 왔다.
2025년 1월은 너도 알다시피 막내가 우리랑 술을 먹을 수 있는 스무 살이 된 해이자 할머니 생신의 달. 명절의 달. 그리하여 겸사겸사 아빠의 승인 아래 온 가족 제주 여행을 계획하게 됐다. 강아지들도 다-같이.
막내가 엄마 배에 있을 때 할머니까지 우리 가족 여섯 명이 제주도로 여행을 왔었는데. 그 이후로 19년 만의 가족 제주 여행이었다. 네가 없는 슬픔으로 미룰 만한 일인데도 나는 가족사진을 예약했다. 사실 예약을 하기까지 나도 퍽 오랜 시간이 걸렸다. 조금 많이 망설여졌다. 네가 없는 가족사진을 찍는다는 게. 하지만 알게 모르게 매년 점점 걷는 것을 힘들어하시는 여든넷의 할머니와 우리 가족 모두의 사진을 하루라도 젊은 날 남겨야겠다는 생각으로 스튜디오를 물색했다. 스튜디오를 찾으면서 제주 느낌이 물씬 나는지, 분위기가 따뜻한지, 흔하디흔한 가족사진의 느낌이 안 났으면 좋겠다는 대충의 경계가 있었다. 열심히 인스타그램 발품을 팔아 찾다 보니 가격, 스튜디오 모두 마음에 드는 곳을 찾을 수 있었고 바로 예약했다. 어디서 찍냐는 고민을 해결하자마자 그다음 고민이 밀려왔다. 정말, 너까지 다 해야 우리 가족인데.
근데... 너의 사진을 들고 찍으면 우리 가족 또 모두 울음바다가 되진 않을까. 마음이 아팠다. 늘 마음으로 슬프시겠지만 간만의 가족여행인데 이런 좋은 순간까지 우리 가족이 슬픈 모습으로 기억되게 하긴 싫었다. 이젠 성인이 되었으니 상의를 해봐야겠다 싶어 막내에게 얘기하니 자기가 몰래 들고 찍겠단다. 엄마, 아빠 모르게 아이패드로 너의 예쁜 사진을 띄워 들고. 그래, 더 좋은 생각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그렇게 해보자 하고 말았다.
그 뒤로 별다른 상의 없이 그렇게 하기로 잠정적으로 결정을 내린 상태였는데 가족사진을 찍기로 한 날 아침 엄마가 네모난 액자를 꺼내 너의 사진을 거기에 끼워 넣고서는 안고 우셨다. 대체 무슨 마음으로 그걸 준비해 오셨을까. 이러나저러나 우리 마음은 늘 아플 수밖에 없지. 차라리 가족들 다 보여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찍으러 가서 카메라 앞에서 엉엉 우느니 미리 예방주사 맞은 걸로 하고 찍으러 가서는 활짝 웃으며 후회 없이 찍고 싶었다.
진작 찍을걸. 진작 가족 여행 좀 갈걸. 진작 뭐 좀 할걸. 진짜 네가 아닌 너의 사진과 함께 한 우리 가족사진. 다행히도 참 예쁘게 잘 나왔다. 코끝이 좀 빨간 엄마지만 다들 잘 웃고 잘 찍었다. 네가 너 빼놓고 찍었다고 삐치거나 분해했으면 좋겠기도 하다. 아 나도 저거 찍어야 했는데. 싶었으면. 그러길래 어디 갔냐.
다 찍고 난 후 아빠는 우리 세 자매의 사진과 가족사진을 아크릴 액자로 주문하셨다. 가족사진 찍기를 아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아, 언니는 또 나중이 되어서 우리 모두 그때 찍을걸, 그 후회를 더는 안 하고 싶어서 이날 찍었다. 네가 만들어준 지금의 현명함이라고나 할까. 우리가 자주 약속하는 '이다음에', '나중에'는 영영 없기도 하니까. 후에 들어보니 엄마가 너의 사진을 액자에 넣기 위해 뽑으러 가시기까지 정말 많이 망설이셨다고 했다. 엄마도 내 마음과 같았겠지. 너의 빈자리를, 우리가 서로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음을 다시 감각하고 싶지 않은 마음. 내성이 절대 생기지 못할 일이다 이건.
아빠는 이번 가족여행 후에 계획을 얘기해 주셨다. 1년에 한 번, 어려우면 2년에 한 번씩은 가족여행을 하시고 싶으시다고 하셨다. 아빠의 계획에 덧붙여 나의 계획도 생겼다. 그렇게 떠날 가족여행마다 가족사진도 꼭. 남기기.
우리는 네가 없는 빈자리를 더 채우려 무의식적으로 틈이 없도록 꼭 부둥켜안으려 한다. 뚫린 틈새 구멍으로 들어오는 찬바람이야 어쩔 수 없지 싶으면서도 서로 꼭 안은 덕에, 춥지만, 죽을 것 같이 춥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