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을 고르라면 그 시절로
퍼르스레한, 내 왼쪽 허벅지 위,
출렁이는 저 바다같이 검푸른 것.
우리 자매는 두 살 터울로 어렸을 때 꽤 많이 투닥거리며 컸다. 방학 때면 우리는 할머니랑 같이 시골에서 지내곤 했는데, 그 시골집에서 하루 걸러 하루씩을 치고받고 싸워댔다. 너와 나는 번갈아가며 이기고 졌고 그럴 때마다 둘 중에 먼저 씩씩거리며 울음이 터져버린 누군가는 수화기를 들고 엄마에게 일러댔다. 엄마는 수화기 너머로 우리 자매를 화해시키느라, 매번 다른 상황의 잘잘못을 가려내느라, 너와 나를 컨트롤하느라 애를 먹었다. 할머니 역시 바로 곁에 계셨지만 지지리도 말 안 듣던 그 시절의 금쪽이들 때문에 애먹기는 마찬가지셨다. 맞벌이하는 젊은 엄마 아빠를 둔 행운을 가진 그 시절 우리는 늘 붙어 다닐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고, 그래서 하나뿐인 단짝이면서 둘도 없는 원수였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너도 나도 지는 게 싫어 살벌하게 싸워댔는데, 아마 분명 나도 너에게 물리적인 공격을 했었고 다양한 상처를 너에게 남겼었을 거다. 그런데 웃긴 건 내가 한 공격들은 생각이 거의 안 나고 네가 내게 한 것 중 생생하게 기억나는 두 개의 공격이 있다. 하나는 내 목덜미를 물어뜯어 튼튼한 네 잇자국을 남긴 것, 하나는 검정 모나미 볼펜으로 내 왼쪽 허벅지를 찌른 것이 그것이다. 너의 잇자국은 며칠이 지나 당연하게도 사라졌지만 푸르뎅뎅한 그 볼펜의 흔적은 신기하게도 지금 내 허벅지에 그대로 남아있다.
우리는 싸울 때 싸우더라도 꼭 지켜야 하는 법이 있었다.
"절대 얼굴은 안된다".
언제 한 번은 우리가 서로 엉켜 싸우면서 얼굴을 손톱으로 긁었던가 해서 서로에게 상처를 낸 적이 있었는데, 그때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얼굴이 되어서는 싸움의 원인이라던가 어떠한 잘잘못을 떠나 '얼굴을 상하게 한 것'에 대해 불같이 화를 내셨다. 그래서 우리는 절대로 그 이후에 싸우더라도 얼굴만은 피해 가며 서로에게 상처를 입혔다. 안 싸우면 될 일일 테지만 내가 너와 같은 초등학생일 때까지는 우리는 꾸준히, 간헐적으로 싸웠다. 우리가 언제부터 싸움을 하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면 내가 중학생이 된 이후부터였다. 그때부터 너는 확실히 나를 ‘언니’라는 윗사람의 존재로 받아들인 듯했다. 그래서 속된 말로 개기거나 엉기지를 않았다. 아마 너의 친구들이 먼저 교복을 입은 두 살 터울의 '언니'인 나를 멋있게 여겼고, 네가 그런 나를 언니로 둔 것이 우쭐해졌기 때문인 듯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너에게 자랑스러운 언니로 자리 잡아갔고, 너는 나에게 착하고 순한 동생으로 자리 잡아갔다.
그것이 문제였을까. 동생아, 너는 아마 더 이상 착하고 순하기가 싫었던 걸까. 네가 떠나고 언니는 더 이상 나 스스로가 자랑스러울 것이 없을까 봐 살기가 무섭다. 자랑할만한 것을 더 만들 힘이 내게 있는지도, 힘이 있다한들 왜 해야 하는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냥 할 수만 있다면 다시 초등학생 때로 돌아가 너랑 치고받고 싶을 뿐.
내 왼쪽 허벅지, 푸르스레한, 퍼렇고 거먼 점. 그것을 검지손가락으로 어루만져보았다. 어떻게 하면 볼펜의 색소가 이 허연살 안으로 들어가서 그 후 20년이 넘게 내 몸 안에 처음부터 거기에 있었던 것 마냥 자기 자리를 잡고 점이란 게 된 걸까. 너는 무슨 이유로 나를 찔렀던가. 나의 어떠한 말이 너에게 자극이 되어 착한 네가 나를 찌르게 만들었을까. 떠올리려 노력하는 게 우스울 정도로 우리가 아주 어렸을 때 일이라 아무리 기억하려고 해 봤자 전혀 생각나질 않는다.
지금은 점이 되어버린 그때 그 상처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감쪽같이 점 같다. 자세히 보면 점보다 푸르지만 점이라고 하면 다 점인 줄 알 거다. 이 점이 있다는 게 지금 나에게는 천만다행이다. 네가 만들어준 이 점이 너와 나의 추억이자, 우리의 치고받고 했던 싸움이자, 눈물의 화해고 서로를 지극히 위하던 사랑과 응원이고, 채워주던 술잔들, 박장대소하던 웃음, 진심으로 나눴던 걱정과 위로이자 둘만의 비밀들이니까. 나는 다 잊어도 이 점은 기억할 테니까.
내가 가끔 네가 내게 남긴 상처이자 점에 대해 너에게 이야기를 할 때면 너는 멋쩍은 듯 웃었다. 기억 안나는 어린 시절이어도 네가 나에게 상처를 냈다는 게 미안해서였겠지. 그런 너를 보며 나는 또 웃었다. 찔렸을 당시에는 너무 아프고 놀라 서럽게도 울었을 테지만, ‘착하디 착한 네가 이런 때도 있었다’ 하며 멋쩍어하는 네가 귀여워 웃었다. 이제는 이 점을 만지며 웃고 또 울 남은 날들을 생각하며, 지금, 웃지는 못한다.
그냥 우리가 각자 돈벌이하는 어른이 되고 나서도 볼펜이든 뭐로든 네가 나는 언제든지 좀 찌를 수 있게, 언니가 몸 좀 내어줘 볼걸. 얼굴 빼고 다 할퀴고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며 투명하게 치고박던 그때처럼, 아니면 네가 화에 못 이겨 볼펜으로 내 허벅지를 찍어 눌렀을 때처럼, 내 허벅지던 엉덩짝이던 몸 어디던 마음껏 내어줬어야 했는데. 나한텐 그래도 됐었는데. 늘 그 말을 좀 해줄걸. 야, 동생아, 사람들은 힘들고 억울할 때 속으로라도 쥐고 있는 볼펜으로 수천번 수만 번씩 찌르며 산다고, 누구나 그러면서 산다고. 너 말고 남을 말이야. 자꾸 거꾸로 볼펜을 쥐려고 할 때마다 내가 바로 잡아줬어야 했는데.
지금도 내가 모르는 사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물고 있는지 모를 나의 아픔이, 상처가 언젠가는 점의 모습으로 바뀔 수 있을까.
그때가 되어서는 이렇게 크고 깊이 찔리길 잘했다며 상처 나길 천만다행이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슬픔이 감사로 승화가 될 수 있을까. 제게 이런 슬픔을 주시다니요, 제게 이런 아픔과 상처를 주시다니요. 감사로 승화되기는커녕 물을 수만 있다면 따져 묻는 투가 되겠다 싶다.
영원한 건 없다고들 하던데, 글쎄, 난 잘 모르겠다. 무뎌지고 닳아질 수 있는 거라고 한들 믿지도 못하겠다.내가 눈감는 날까지 난, 이 퍼런점에게는 고마울거고,너와 함께하지 못한 날들은 쓰라리고 아플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