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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꿈에서는 언니가 약속할게

후회 없이 잠에서 깨는 날이 올까

by 사랑 Mar 26. 2025
 잠이란 건 끝이 있다. 어김없이 깨어나야만 한다.
네 꿈에서 깨어날 때, 나는 현실이 꿈이 아니라서 그리고 꿈이 꿈이라는 게 현실이라서 
그 사실이 한없이 모질게만 느껴진다.


 네가 두 번이나 내 꿈에 나타나주었다. 어디서 들었는데 꿈에 나타나지 않는 게 그곳에서 평안하게 지내고 있는 거라고 하던데. 그 말을 듣고 난 후부터 나는 섣불리 너에게 꿈에 나와달라 빌기 어려웠다. 그럼 내가 늘 너에게 그곳에서 편안하고 행복하기만을 바란다고 말해온 게 다 거짓말이 되잖아. 그건 절대 아니니까. 그래도 이렇게 너에 대한 글을 쓰는 요즘이라 그런 건지, 내 마음이 너에게 가 닿은 건지 네가 꿈에 몇 번 얼굴을 비춰주었다. 사실 얼마 전에 꿈에 한번 나와달라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그걸 듣고 찾아와 준 걸까 싶기도 하고. 



 나는 꿈을 꾸면 그게 꿈인지 어느 정도는 늘 자각하는 편이다. 자각한다고한들 현실처럼 꿈에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내 꿈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나는 공연을 하는 배우가 아니라 관객처럼, 책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써져 있는 책을 읽고 해석하는 독자처럼 그냥 그 이야기가 흘러가는 걸 바라보다 결국엔 공연이나 책을 다 감상한 후의 사람처럼 꿈에서 깨어서는 '그건 왜 그랬던 걸까, 쟤 왜 저래, 나는 왜 저랬지' 할 뿐이다.


 제주에서 나는 늘 알람 없이 아침 햇살에 의해 자연스럽게 눈을 떠 왔다. 네 꿈을 꾼 이번 주도 그랬다. 알람 없이 눈을 뜬 후에, 나는 늘 너의 꿈을 꾼 이후에 그렇듯 후회를 했다.

 왜 난 이렇게 되어버린 마당에도 꿈에서 여전히 나쁜 언니인 걸까. 왜, 어째서, 지겹게도 똑같은, 한결같은 언니인 걸까. 혼자서 신나 떠들고, 너한테 부탁하고, 시키고, 목소리 높여 자기주장만 하고. 꿈에서 오히려 더한 것 같아서 그런 내가 몹시도 짜증 났다. 제발 꿈에서 만나면, 그 꿈에서라도 좀 하고 싶었는데 못해본 거라든가, 같이 가고 싶었는데 못 가본 데를 간다던가 할 수는 없을까. 못다 한 말을 듣던지 아님 내가 못다 한 말을 하면 안 되는 걸까. 꼭 이렇게 꿈에서조차 깨고 나서 못 견디는 순간들을 만들어내서 내 속을 후벼 파야 되는 건지 내 꿈공장이 있다면 따져 묻고 싶다.


 네가 나온 첫 번째 꿈은, 꿈속에서 내가 너의 이름을 부르는 장면에서 잠에서 깼다.


나는 그 순간이, 그 꿈속에서 내가 널 부르는 나의 음성이 생생해 한동안 잊히지가 않았다. 나는 너의 이름을 총 네 번 외쳤다. 우리 둘 사이에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 동네 전체가 들썩일 목소리로 쩌렁쩌렁 크게도 불렀는데 그 부름이 너무 오래간만이라서, 정말 너무 오래간만이라서 반가웠고 슬펐다. 나는 꿈속에서 정확히 너라는 아이의 눈을 마주치며 불렀다. 현실에서처럼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대상들을 바라보며 너를 부르던 것 과는 달랐다. 꿈속에서의 나는 아주 당연히도 대답이 돌아올 거라는 걸 아는 듯 자신 가득한 목소리였다. 그 네 번을 부르면서 점점 '어.. 어?' 하며 무언갈 깨달아 가는 듯했고 그래서 더 있는 힘껏 부르다가 잠에서 깼다.

 

 너의 이름을 외치는 내 목소리. 그 나의 목소리가 가지고 있는 알맹이가, 내가 영원할 줄 알고 남발했던 그것의 생명력이 너무 예전의 것이라는 것. 꿈에서 낸 목소리라 하더라도 실제로 앞으로는 절대 내가 꿈에서처럼 내볼 수 없는 목소리라는 것. 그래서 눈을 떠서도 내 쨍알 쨍알 한 목소리로 부르는 너의 이름 세음절이 귓가에 쉬지 않고 맴돌았다. 더 안타까워 미치겠는 건 널 부르는 나의 부름에 너의 대답을 듣지 못하고 잠에서 깨어나버렸다는 것.


 이틀 후에 다시 내 꿈에 등장한 너와, 나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 내용이 참 가슴이 미어졌다. 왜냐면.. 네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걸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꿈에서 나는 네가 모르고 있는 사실의 자초지종과 이유를 너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첫 번째로 설명할 때는 내가 굉장히 완강한 어조로 사실을 이야기했다. 아마 너에 대한 원망이 몇 가닥 들어갔었 던 듯하다. 그런 후에 나는 곧바로 그렇게 말한 나 스스로를 책망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번 꿈에서는 매번 꿈에서 깨어나 후회하는 나를 안쓰럽게 생각한 꿈공장장이의 배려 덕분인지 꿈속에서 내가 후회하자마자 다시 그 상황의 처음으로 돌아갈 수가 있었다. 그렇게 얻은 기회로 두 번째 때는 어렵게 어렵게 돌려 돌려 너를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다. 마치 '어바웃타임'영화 같은 모양이었다. 그 영화 속 주인공이 마음만 먹으면 시간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과 같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꿈속에서 사실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그걸 굳이 곧이곧대로 설명을 했어야 하나 싶다. 꿈일 뿐인데 그냥 오랜만에 같이 좀 웃게 재밌는 이야기나 할걸. 그런 이야기 있잖아. 우리 둘은 서로 뇌를 나눠 쓰는 자매라면서 가끔 우리가 절묘하게 통할 때마다 그게 그렇게도 재밌고 웃겼었는데. 시답지 않은 얘기들도 같이 하면 웃느라 배가 다 아팠는데. '너도? 언니도? 나도! 나도.'

 누가 꼭 해내야 한다고 협박하면서 내준 숙제도 아닌데 다시 기회를 얻어 돌아가도 그 가슴 아픈 사실을 어떻게든 이해시키려고 설명하던 내가 어이가 없어서 웃기고, 내 말을 못 믿는 너는 하나도 안 웃기고. 그냥 결국은 어차피 너도 나도 말 그대로 슬프고 아픈 꿈.


꿈은 무의식이 드러나는 거라고도 하던데, 모든 꿈이 그렇지는 않지만.
내가 끝끝내 이해시키고 싶은 사람은 너였을까, 나였을까.


동생아, 있잖아. 평안하게 푹 쉬다가 정말 심심할 때 언니 꿈에 한번 더 나와주면 좋겠어. 그날은 우리 꿈에서 그냥 재밌고 즐겁게만 놀자. 그곳이 행복하고 편안하다고 말해줘도 좋을 것 같은데, 그렇게 된다면 오로지 그냥 내 속 편하려고 꾸는 꿈이겠지만. 아니, 그냥 우리 이런 사실들은 다 잊고 정말 재밌게 놀자. 나 즐겁게 말고 유독 특별히 너만 즐겁게. 그렇게 놀자. 언니가 다 맞춰줄게. 꼭 그러자. 우리 강아지들도 엄청 보고 싶어 할 텐데 애기들도 같이.

 그리고 만약 그런 꿈을 꾸게 된다면 언니가 하나 약속할게. 그 꿈만큼은 절대 깨고 나서 딱해하지도, 안타까워하거나 슬퍼서 서럽게 울지도 않고 꿈에서 우리가 그렇게 만나서 재밌고, 즐겁고, 행복하게 놀았다는 사실 하나만 기억할게. 웃어 보일게. 좋아할게. 행복해할게.

약속할게. 그러니까 다음번엔 그렇게 만나 놀자, 꼭. 그렇게 한 번이라도 꿈에서 만나,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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