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무탈함과 안녕함을 바라는 존재들
네가 갔다. 다시는 내가 너를 안을 수 없는 곳으로.
그만큼 나에게 자꾸 오는 이들이 있었다.
내가 너를 생각하는 동안 나를 생각하던, 그들을 나는 '친구'라고 부른다.
제주에서 지내면서 여러 친구들이 왔다. ‘당분간 제주에서 지내게 되었으니 놀러 와’라고 얘기할 때 '꼭 갈게'라고 얘기하는 친구들은 많긴 했다. 하지만 우리가 으레 하는 말처럼 돈이 많을 땐 시간이 없고 시간이 많을 땐 돈이 꼭 없다. 돈도 많고 시간도 많을 땐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여력이 없다. 이 모든 상황의 밸런스, 주어진 여건들이 맞아떨어져야 우린 제주라는 지역에서 만날 수가 있는 거다. 아니면 한 가지가 유독 높거나.
고등학교 시절 친구인 S, J가 왔고 N, D는 이제 올 예정이다. 3년 전부터 인연을 맺어온 S동생도 왔다. 대학교 때 간간이 알고 지낸 C친구도 왔고 지인으로만 알고 지냈던 Y동생도 왔고, 봉사활동을 같이 다녀와 종종 만나던 J언니도 예비 신랑과 함께 만나 반가웠다. 엄마랑 이모들도 내가 제주에 있는 김에 자매여행을 가졌고, 엄마랑 단둘이 모녀 여행도 하고, 할머니, 아빠 강아지들까지 온 가족여행을 했다. 내가 이곳 제주에 있기에 가질 수 있는 시간들과 추억들을 만들었다.
육지의 누군가가 제주라는 지역에 오기까지는 더 많은 품이 든다. 비행기표를 찾아 예매해야 하고 차가 필요하다면 렌트도 해야 하고 숙소를 잡아야 한다. 우리가 익히 아는 대중교통이라는 걸로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 나를 보러 오는 누군가라면 나름의 큰 결심을 한 후, 수많은 선택들을 다 마무리짓고서야 끝끝내 우리는 이곳 제주에서 만날 수가 있다.
'네가 있는 곳이 어디든, 네가 있는 곳이라면 너를 보러 갈게'
라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건 참 감사하고 소중한 일이다.
난 어리석게도 이런 중요한 걸 너를 통해 깊이, 아주 깊이 깨달았다.
너를 떠나보내고 네 생각으로, 그리움으로 한없이 내가 나를 한 겹, 두 겹 슬픔의 이불을 덮어가며 묻어 가두고 있을 때가 있었다. 내 친구들은 너와 내가 얼마큼 각별했던 자매였는지, 네가 나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다 알아서 너를 잃은 나를 무척이나 걱정했다. 우리 자매는 서로의 친구들 사이에서도 마치 유니콘 같은 자매였으니까. 서로 어떻게 그렇게 우애가 깊은 건지, 자매라면서 서로를 어째서 꼴 보기 싫어하지 않는지, 다투지 않는지, 어쩌면 그럴 수 있는지를 궁금해했다. 자매라면 난 다 우리 같은 줄 알았는데. 그랬던 우리 자매를 다 알아서인지 내게 닥친 상실이, 슬픔이 그들의 일상도 위협했다는 걸 나는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들도 어쩔 수 없는 일상을 보내며 갑작스러운 비보에 적응해야 했고 슬픔을 삭혀야 했다. 내 친구들은 감히 상상할 수가 없는 슬픔이라 나에게 어떠한 위로를 어떻게 건네어야 할지도 알 수가 없었다고 했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나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늘 빠지지 않고 다루는 '죽음'이라는 게 우리 가족을, 나를 가운데에 두고 잔인하게 이야기를 펼쳐나가 버렸으니까. 친구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은 위로뿐인데, 어떻게 위로해야 될지, 나라도 막막했을 거다. 그때 나는 이러한 비극의 한가운데에서 어쩌지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게, 그런 나 빼고 다 무탈하고, 누군가는 어제와 오늘이 평범하다는 게, 다르지 않다는 게, 그렇게 비현실적이고 못마땅했다. 나라는 사람이 고체였다면 이제는 비틀어지고 흘러내리고 헝클어지고 있었다.
너를 떠나보내고 약 1년 동안은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주어진 일들을 꾸역꾸역 책임감이란 이름으로 해냈고 자주 참고, 자주 울고, 자주 갔다 너에게. 그 당시엔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내 친구들은 나를 찾았다. 가끔 어떤 순간엔 잠시 잊고 지내다가 친구들이 날 걱정해 찾아줄 때 '맞다 나 지금 이렇지' 하며 슬퍼질 때도 있었다. 갑자기 나의 현실이 느껴지는 순간들. 친구들을 만나서 내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의 나는, 어제, 오늘, 내일이 매일 달랐고 시시각각 생각이 변했다. 그냥 내게 펼쳐진 현실이 믿기지가 않고 나 스스로가 불행하다는 생각이 제일 컸었다.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것 같았다. 우리 부모님이 너무 불쌍했고 내 가족들이 너무 짠했다. 너 없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정말 알고 싶은데 그건 평생 불가능할 것 같았다. 그런 방법이 존재하질 않는 것 같았다.
내가 믿고 의지하고 살았던 무언가가 와장창 깨져버려서 그걸 다시 붙이는 게 맞는 건지, 새로 사야 하는 건지, 깨져버린 저 잔해들은 그냥 버려야 되는 건지, 간직해야 할지, 내가 직접 주워야 할지, 누가 주워주길 기다리는 게 맞는 건지, 거기서 벗어나야 하는 건지, 있는 채로도 잘 살 수 있을지 도무지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매일이었다. 평범함을 지루해하던, 복에 겨웠던 과거의 나에게 화가 났다. 내가 알던 나는 이제 더 이상 없었다. 가장 사랑하는 동생을 잃은 언니만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내가 죽는 날까지 변함없을 터였다. 삶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꾸역꾸역 내게 주어진 일들을 해치워나가며 때때로 친구들을 만났다. 힘든 나를 조금이라도 위로하고자 손 내미는 용감한 친구들을 저버릴 수 없었다. 위로도 용기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이때 깨달았다.
친구들을 만나면 나는 매일매일이 다른 복잡한 내 머릿속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해댔다. 그들은 공감해 줬고 나를 다독여줬고 같이 울어줬다. 그냥 날 무지 많이 걱정했다. 마음을 썼다. 자신들의 이야기도 나누어줬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우리 모두가 저마다의 상황으로 힘들었다.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헤어질 때면 내가 조금이라도 괜찮아졌으면 하고 바라는 그들의 마음이 오롯이 느껴졌다. 나는 그런 친구들을 봐서라도 주저앉아만 있기보다 조금이라도 걸어야 했다. 함께 있을 때 웃을 수 있었고 다음과 내일을 생각해 낼 수 있는 힘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도 고마워서 눈물 나는 순간들을 받았다. 위로도 고마움도 용기가 있어야 표현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배웠다. 나도 내 친구인 그들 덕분에 더 용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그렇게 오늘날 내가 제주에 와 있을 수 있게 된 거다. 덕분에.
네가 가고 세 번의 명절을 보내고 여기 제주로 왔다. 그리고 여기 제주에서의 시간도 어느새 곧 끝을 향해간다. 너만을 생각하면서 글을 쓰며 너를 그릴 때, 그런 내가 괜찮을지를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내 주변이 이제야 눈에 띄었다. 그들에게 사실 지금도 '나 괜찮아'라고 말할 자신은 없다. 전혀 괜찮지는 않기 때문에. 그래도 '덕분에 좋아졌어'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것 같다.
한 명 한 명 각자의 방식으로 나한테 해 준 위로를 떠올리면 조금이라도 힘이 난다고, 내가 어디에 있던 나를 보러 와줄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내일을, 아침을 그리게 만들어준다고. 나를 위해 같이 울기보다 같이 웃고 싶은 일들을 만들고 싶게 한다고. 말해 주고 싶다. 나도 너네가 어디에 있든 그곳으로 너네를 보러 갈게. 우리 꼭, 무탈하자, 안녕하자, 사랑하는 나의 벗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