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는 거야.

사실은 내가 해야 하는데 안 하고 있는 일.

by 사랑
너는 너의 이야기를 적어달랬다. 언니라면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참 웃기지도 않아. 네가 없이 네 이야기를 하면 여린 네가 늘 그랬던 것처럼 나는 입을 떼자마자 그저 울기만 할 텐데. 헉헉 서럽게 우는 소리뿐이 안 들릴 텐데. 나는 결사코 단 한 문장도 우느라 이어가지 못할 텐데.라고, 곧바로 그 생각을 했다. 그리고 속으로 너의 요청에 답했다. 아니, 언니는 못 해. 싫어. 안 할래. 아마 못해서 안 할 거고 안 해서 못할 거야. 몰라. 그러니까 그렇게 궁금하다면 네가 여기 있어야지. 나는 말이야. 그해 가을, 전역을 앞둔 너랑 '이제 우리 자매는 더 자주 보겠지', 우리 자매답게, 우리 가족답게 새롭게 만들어갈 미래에 꽤나 설레었는데. 네가 삶에 지쳐 힘들어하고 있을 때 언니는 이렇게 까맣게, 어리석고 둔하게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언니가 미안해 동생아. 정말. 미안해.


그래, 이럴 줄 알았다. 내가 두려워했던 게 이거다. 이 이야기의 끝에 나는 너에게 '미안해'라는 말밖엔 할 수 없으니까. 비겁하게도 너의 부탁을 거부했던 거다. 아무리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도 그 애교 섞인 목소리로 '헤헤 괜찮아'라고 답해줄 네가 없으니까. 그걸 감각하고 싶지 않아서.

솔직히 말하자면 세상에 너같이 착한 동생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내가, 나에게 그런 부탁을 하고 떠난 너에게 처음으로 못되고 나쁘고 모질고 잔인한 애라고 조금, 많이는 아니고 종종, 조금 미워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오늘은 너를 떠나보낸 지 약 600일 정도가 지난 어느 하루다.

얼마 전 최진영 작가님의 <구의 증명>이라는 책을 읽고 오늘은 책방 풀무질에 갔다가 최진영 작가님의 다른 책을 만났다. <쓰게 될 것>이라는 책이었다. 그 책의 뒤에 큰따옴표 쳐진 문장 하나가 이것이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는 거야"

결심만 수십 번, 혼자 끄적이다 비밀에 부친 너의 이야기들을, 너의 마지막 부탁을 나는 계속 숙제처럼 안고 살고 있다. 심지어 제주에 사는 요즘은 그냥 마치 없었던 일처럼 지내는 나를 볼 수 있다. 내가 남은 삶을 너를 그리워하며 시시때때로 우느라 일상생활도 제대로 못 하면서 지내는 것보다는 네가 떠나기 전의 나처럼(물론 그전의 나로 절대 돌아갈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다.) 다시 씩씩하게 지내는 나를 네가 더 좋아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이어리에 챙겨 온 네 사진을 새로운 내 제주의 방 한쪽에 붙여놓지 않았다. 최대한 빨리 조금 더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나로 돌아가려면 모순되게도 최대한 너를 생각하지 않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냥 눈앞에 놓인 하루하루를, 당장을, 지금을 열심히 살았다. 제주도는 우리 가족의 뻥 뚫려버린 한가운데를, 네가 없는 빈자리를 잊고 지내기에 굉장히 최적의 장소였고, 나는 '여기 오길 너무 잘했다'며, 전보다는 현저히 우는 빈도수도 줄어들고, 잠도 잘 자고, 술도 덜 먹고, 웃음도 많이 찾아가는 그런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자, 이 글을 써 내려가게 한 저 문장을 다시 끄집어와 본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는 거야'



동생아. 지금까지 언니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네가 걱정하지 않도록 지금을 잘 사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게 사실 제일 시급했다. 주변 사람들이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나라는 사람의 삶을 찾는 것. 사람들이 주는 튜브나 구명조끼 따위 다 집어던지고 스스로 가라앉기를 자초하며 슬픔 안에서 허우적대기보다 뭍으로 이제는 좀 나와 숨을 고르는 것. 숨을 쉬는 것. 네 생각 말고 제발 다른 생각을 해보는 것.


그런데 이 글을 쓰는 지금, 동생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부제와 같이 해야만 하는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겠다. 이제는 너의 부탁을 들어줘야 한다는 것을 알겠다. <구의 증명>을 읽으며 언니는 한시도 네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네가 나에게 한 부탁을, 별거 아닌 듯 건넨 그 말이 가진 뜻을 알았다. 너는 내가 너의 삶을 증명해 줄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을. 언니라면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언니가 해주면 안 될까. 너는 나에게 너의 삶을 증명해 달라고, 언니만큼은 잊지 말아 달라고, 나를 기억해 달라고 그렇게 간절하게 부탁한 것이다.


그래서 언니는 언제까지고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너일 나를, 그리고 그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동생이었던 너를,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던 우리 자매를 증명하기 위해, 앞으로 남은 내 생과 28년 동안의 너의 생을 증명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글을 쓸 거다. 나중에 우리가 혹여나 만난다면 나의 미안하다는 사과에 '괜찮아' 말고 그래도 '언니 고마워'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