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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드디어 그것을 하려고 한다

네가 정말로 축하해 줄지 잘 모르겠는 일

by 사랑
내 이상형은 너였다.


늘 나는 너에게 ‘나는 너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사납쟁이였던 내가 너랑 놀 때는 두 손 꼭 잡고 아파트 복도를 뛰어나가 넓게 핀 종이박스를 썰매 삼아 눈썰매 타던 시절의 초등학생처럼 헐랭 해지는 게 좋았다. 내가 그렇게 무장해제 되어도 괜찮은, 나라는 사람이 누군지 마냥 천진난만하게 다 내보이며 재밌게 놀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미래의 내 애인이었으면 싶었다. 그래서 바로 네가, 너 닮은 사람이 나의 이상형이었다. 실제로 누군가를 오래 사귀다 보면 내가 유일하게 너한테만 보이던 모습을 그 사람에게 보이게 될 때, 나 이 사람 많이 편해졌구나, 좋아졌구나, 사랑하는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정도로 너는 내 사랑과 애정의 척도였다.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




그런 네가 없어졌다.
하루아침에, 하룻밤 사이에 나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 여동생,
단짝 친구를 잃은 사람이었다.


그 사실이 견딜 수 없이 사무치게 슬펐다. 너를 잃었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도 여전히 나는 내 팔, 다리와 네 생명을 바꿀 수 있다면 바꿔달라고 하고 싶다. 지금도 빌어서 그게 이루어진다면 당장이라도 무릎이 닳도록 빌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팔다리가 없이 휠체어에 앉아 있고 그런 나를 보러 네가 걸어온다면, '언니'하고 부르며 나에게 전화를 걸어준다거나 그렇기만 한다면 난 정말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팔다리는 잃었어도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을 선물 받은 사람처럼 웃어 보일 수 있을 텐데. 정말 그러고 싶었다. 꿈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던 내가 내 팔다리와 바꿀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너는 내가 사랑을 쏟는 대상들 중 첫 번째였으니까. 그런 너를 잃게 되었다니. 남은 정신을 잡고 차를 몰아 부모님이 계신 집으로 내려가며 그럴 리가 없을 텐데, 곧 있을 내 생일에 집에 와서 같이 놀기로 바로 어제 얘기했는데, 우리 이거 하기로 했었는데, 나 너랑 이거 못해봤는데, 여기 같이 가고 싶었는데, 이제 나는 어떻게 살라고, 어떡하라고 라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갔다. 고속도로에서 운전대를 잡고 악다구니를 해댔다. 그리고 또 몇 분 뒤에는 애처롭게 빌어댔다. 그러다가 또 펑펑 울어대다가 운다는 건 고로 내가 이사실을 믿는다는거니까 울면 안 되겠다 싶어서 애써 다른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또 진짜면 어떡하지 싶어서, 무섭고 두려워서, 이 상황이 말이 안 돼서, 말이 안 되는데 실제상황으로 돌아가는 이 상황이 괴로워서 눈물이 멈추지를 않았다. 그래서 결국은 또 너에게 미안하다. 그 누구보다 삶을 잃은 건 넌데, 네가 서서히 잃어갔던 너의 희망과 미래들을, 그 아깝디 아까운 것들을 생각하지 못했던 게, 고작 내가 너랑 하고자 했던 것들만 생각하느라 그것들을 뒷전으로 미루어 바라보았던 게 너무나도 미안해.



우리 자매는 통화를 많이 하던 자매였다. 네가 군인이 되고 나서는 일찍 출근하고 늦게까지 야근하느라 점점 그 빈도수가 줄어들긴 했었지만, 나는 늘상 거만하게도 세상에서 너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라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는 한 이불 덮고 잠에 들기 전 천장을 보면서, 성인이 되어서는 소주잔을 부딪혀가며 혀가 잔뜩 꼬여서는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서로가 있어서 좋다'며 부모님께도 못하는 얘기를 우리 자매끼리는 터놓고 나누었으니까. 조잘조잘 무슨 이야기든 친한 사람에게 다 나누며 해소하는 나와 달리 너는 여기저기 다 말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그래도 언니인 나에게는 다른 사람보다야 비밀이 적을 것이라고 스스로 자신했다.


나는 바로 전날 너와의 마지막 통화에서도 남자친구 이야기를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어떤 점이 어떻고, 싫고, 잘 모르겠고, 우린 너무 다른 것 같다는 쪽의 이야기였다. 내가 남자친구와 사귄 지 200일 전후정도일 때였다. 우리 커플과 너의 커플은 두어 차례정도 같이 만나 논 적이 있었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며 '헐', '그래?' 하던 너는 다른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난 그때쯤 남자친구와 너무 다르다고 느끼던 찰나라 이별도 염두에 두며 만남을 지속해 나갈 때였다. 차라리 그때 너랑 통화하면서 엉엉 울어버릴걸. 이 남자친구랑 헤어지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고. 근데 그게 맞는 건지 잘 모르겠고 또 이별이라는 걸 생각하니 너무 슬프다고. 엉엉 울어버릴걸. 그럼 너도 울면서 네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을까. 그럼 우린 같이 엉엉 울면서 다른 답을 찾지 않았을까.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 너와의 마지막 통화에서 내가 마구 험담을 늘어놓던 그때 그 남자친구인 J와 함께 양가에 인사를 드렸다. 그래, 그 마지막 통화 속 주인공인 J오빠가 이제 너의 형부가 될 예정이다. 인사드리는 날, 다른 어느 날보다 전국에 대설주의보가 내려지고 그 와중에 갑작스레 차도 고장 나고, 아빠의 비행기도 결항되는 등 여러모로 순탄치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네가 박수를 치며 축하해 주는 건지 예전에 사귀던 전 애인처럼 술 잔뜩 먹고 사실 나 그 오빠 맘에 안 든다며 입술이 대빨 나와서 언니가 아깝다며 혀를 내두르고 있는 건지 정말 모르겠더라. 언니는 사실 네 생각이 그 누구의 생각보다 제일 궁금한데, 나를 제일 잘 아는 너니까, 그런 나와 잘 어울릴 사람을 보는 눈은 네가 제일 정확할 텐데 그걸 들을 수 없는 게 정말 애통하기 짝이 없다. 이제 나는 너를 잘 안다고 하기엔 너무 모자란 언니라서 더더욱 그렇다. 네 마음을, 생각을 도무지 예상할 수가.. 없다.

양가에 인사를 드리러 제주에서 육지를 갔을 때, 오빠네에서 우리네 집으로 가는 중간에 대전에 있는 너에게 들렀다.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고 싶었다. 그런데 너에게 들리러 가면서 우리 커플은 또 한 번 싸웠다. 처음엔 결혼 후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가진 작은 의견 차이였는데 점점 의견차이가 커져서 감정싸움이 되려 했고 그전에 서로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너에게 가까이 가면 갈수록 그날이 생각나고 무엇인가가 겹쳐져 느껴지고 마음이 안 좋아져 자꾸 눈물이 차올랐다. 너에게 기쁘게 소식을 전해주고 싶었는데, 그래야 축복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너도 나도 우리 자매는 그 누구보다 그저 서로의 행복을 바라는 사람들이니까. 너에게 줄 꽃을 사고, 주전부리와 술을 따라주며 마음이 너무 속상했다. 정식으로 소개해주는 자리인데 왠지 '언니 왜 싸우고 온 거야 도대체'하며 우리 중간에서 눈치 볼 착한 네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너에게 왔으니까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은데, 정말 오랜만에, 숨쉬기 어려울 만큼 목놓아 울었다. 그렇게 울다 제례실 화면에 떠있는 동글동글 아꼽디 아꼬운 너를 보며 겨우 말을 내뱉었다.




언니가 제일 사랑하는 네가 곁에 없어서.. 그다음으로 사랑하는 이 사람을 이제 가족으로 만들고 싶나 봐.



J는 말을 내뱉고서도 더 쏟아낼게 남은 듯 흐느껴 우는 나를 꼭 안아주었다.

사실 동생아, 어떻게 보면 이 결혼은 네가 결정적인 주선자다. 왜냐면 언니는 네가 곁에 없자마자 '결혼'이라는 단어를 내 삶에 들였으니까.


그러니까.. 축하해 줄 거야? 지금이 맞는 때일까? 이 사람이 맞는 거겠지? 언제가 좋을까? 넌 언니 결혼식할 때 뭐해줄 거야? 언니 웨딩드레스랑 머리 스타일 네가 꼭 잘 골라줘야 해? 결혼식은 어디서 하는 게 좋을까? 이런 자질구레하면서도 너무나 중요한 것들을 단하나도 함께 의논해주지 못하는 동생아.


이 사람은 네가 없는 슬픔으로 허덕일 때 내게 그나마의 웃음을 만들어줬던 사람이야. 내 모든 슬픔을 나눠 가져가고도 내가 기댈 수 있게 평온함을 가진 잔잔한 사람이야. 비록 너에게는 험담만 남긴 게 마지막이라 걱정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무엇보다 예쁘디예쁘던 너를, 그리고 사이좋은 우리 자매를 직접 눈에 담았던 사람이야. 네가 떠날 때 이 사람이 없었더라면 언니는 참 힘들었을 텐데 늘 한결같이 곁에서 함께해 주며 힘이 되어줬던 사람이야. 내 이상형이 너라고 했던 걸 기억하고 자기가 많이 분발하겠다고, 노력해서 꼭 따라잡아 보겠다며 약속해주더라. 그러니까.. 지켜보고 있을 너와 우리 가족을 실망시키지 않고 예쁜 가정을 꾸려나가 볼게. 응원해 줬으면, 축복해 줬으면 좋겠다.


언니는 정말 꼭 네가 축하해 줬으면, 기뻐해줬으면 바라고 있어. 축하해 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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