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마에 떡하니 붙여진, 나는 잠깐 모르고 싶은 슬픔
제주에서의 6개월. 익숙해진 일터와, 정든 동료들과, 사랑해 마지않는 제주라는 곳과 아주 성심성의껏 작별하는 데에 온 마음을 다해 시간을 보낸 후 끝끝내 맞이한 그날. 나는 이유는 모르지만 두 배정도로 불어난 짐을 싣고, 사랑의 희망을 가지고 육지의 땅을 밟았다.
6개월간 떠나 있었던 육지에 다시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하겠지.
오랜 항해 뒤에 육지에 발을 딛는 것이 어색한 선원처럼, 바다 위에 오래 떠있다 보면 그 리듬이 몸에 배어 찰랑거림이 편안해지는 것처럼.
더 익숙했던 풍경이 덜 익숙해진 것을 다시 익숙하게 만드는 작업.
지금 있는 곳에서도 그만큼의 새로움을 봐내는 힘이 필요하겠지.
언니는 육지에 도착해 가족들과의 시간을 보낸 후 비어져있던 자취방을 둘러보러 다녀왔다. 말 그대로 둘러보기만 하고 금방 내려왔다. 6개월간 내가 없는 사이 관리가 안되어있던 집. 한두 번의 말썽도 크게 일으켰던 내 자취방. 집도, 비싼 물건도, 사람도 자꾸 둘러보고 들여다보지 않으면 어디 한 군데는 꼭 고장이 나는가 보다. 많이 아픈가 보다. 너무나 오래간만인지라 또 어디 한 군데가 고장 나 있어 난감한 상황이 펼쳐질까 떨리는 마음으로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불을 켰다. 집은 내가 떠날 때보다 오히려 더 깔끔했다. 내가 제주에 있는 사이 수도가 터져버려 가깝게 사는 이모가 엄마 대신 들러주셔서 집 정리를 해주어서였다.
언니는 사실 제주에 지내면서 이제 다시 돌아가면 이 자취방을 정리하겠노라고 엄마에게 얘기를 해두었다. 네가 떠나고 나서 언니는 이 집이 어딘가, 무언가 버거웠다. 그래서인지 제주에서 내가 돌아올 곳이 이곳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아마도 너와의 추억을 혼자서 오롯이 이겨내야 하는 이 공간이 괜찮아진 나를 괴롭게 할 거라고 생각해서인 듯했다.
이곳은 네가 먼저 살기 시작했던 너의 집이었다. 내가 외국에서 돌아와 너와 함께 살기 시작했지. 이전에 살던 자취방보다 인적이 드물지 않은 동네에 집도 나름 더 신식으로 깔끔한 편이라 우리가 좋아했었다. 그래서일까, 이 집의 시작이 너였어서일까. 나는 계속 네가 떠난 후에도 너의 이름을 마주해야 했다. 옆집의 오지랖 넓은 아줌마의 질문에 사실대로 이야기할 수 없기에 마주치고 싶지 않아 자꾸 숨게 됐다. 방음이 안 되는 집이라 집에서 조차 숨죽여 울어야 했다. 혼자서 술 한잔 먹으려 해도 함께 이 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모습이 눈에 선해서 또 울게 뻔해 술 마시는 것도 무서웠다. 어쩌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걸어오다 보면 우리가 좋아하던 고깃집을 애써 외면한 채 걸어와야 했다. 그 고깃집 앞에서 너는 '우리 언니는 참 사랑이 많은 사람이야'라고 이야기했었는데. 너를 잃고 처음 맞는 봄에는 목련꽃이 활짝 피는 집을 보며 '이제 봄이 왔네'라고 말하던 장면이 떠올랐고, 네가 공부하며 아르바이트했던 일식당, 우리 둘이 진탕 술을 먹은 다음날 해장했던 중국집, 동그랗게 떠있던 보름달을 보며 산책하던 길. 너와 나만 아는 것들이 이 동네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 추억들이 너무 소중한데 너무 소중하지만 과거일 뿐이라 나를 아프게만 했다. 우리 둘만의 추억이 참 많은 곳이었다. 오래되었지만 내게는 아직 너무나 생생했다. 더군다나 그 집은 내가 믿지 못할 소식을 들은 곳이자 너와의 마지막 통화도 그 집이었다. 내 방 그 침대 위에서 24시간도 되지 않아 내 인생이 뒤틀렸다. 내게 이제 그 집은 네가 우리 곁에 없다는 걸 계속 선연히 알려주는 곳뿐이 안되었다.
이상하게 그 집을 가면 내가 벽지 속으로 스며드는 느낌이 든다. 끝없이 땅으로 꺼지는 기분이 든다. 한없이 우울과 슬픔의 심연으로 들어가게 되는 나를 발견한다. 그렇게 바닥으로 꺼져버리는 나를 가만두고 싶지 않아서 술이 먹고 싶어진다. 헛헛한 마음을 술과 안주로 달래야겠다 싶다가도 그게 좋지 않은 해결방안이란 걸 내 머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잠에 들기도 어려워진다. 처음엔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냥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많이 좋아지고 있다고 느껴짐과 동시에 '그 집을 정리하자고 엄마에게 말해야지'라는 생각도 같이 떠오르는 걸 보고 이제는 정말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너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언니는 너랑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느끼나 보다. 언니는 아직도, 여전히, 다시 있는 그대로의 '너'라는 사실을 마주 안으면 꼼짝 못 하고 깔려 숨 막혀하는 모습이 보인다. 생생하고 잔인한 사실들, 절대로 부정 못할 아픈 문장들을 내가 똑바로 보고 읽어내며 다니기보다 이마에 대문짝만 하게 써붙이고 다닌 들, 어쨌든 나 스스로는 마주 안지 않는 편이 내가 덜 힘들기 때문에 언니는 그쪽을 선택했다. 이런 생각이 들다 보니 너에게 무척이나 미안하다. 나는 너에게 언제까지고 나쁜 언니일 수밖에 없는 걸까. 이젠 울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래. 내가 너무 나를 궁지로 몰고 있는 걸까. 아직 나 아픈 걸까.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목이 멍울진 것처럼 깡깡하다. 그래도 눈물을 흘리진 않고 싶다. 이것 역시 자연스러운 걸까. 산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그래야 한다니까, 애써본다. 그러니까, 네가 없다는 건 너무 슬픈 사실인데 내가 슬프고 싶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슬프다. 그런데 슬프고 싶지 않다. 슬프게 살고 싶지 않아. 근데 슬픈 사실이야. 이것의 반복.
이런 나를 보고 너는 뭐라고 말을 할까.
언니, 잘하고 있어. 언니가 안 슬펐으면 좋겠어. 또는
언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 그러지는 마. 라고 할까.
내 마음이 내 마음이 아닌걸 네가 조금만 알아주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