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손자녀를 키우시나요?
6살 난 승현이의 낙서 중에 기억이 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그 첫 번째 그림 속에는 검은 승용차가 가운데 그려져 있고, 아래 하단에는 두 손을 들며 환호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상반신만 그려져 있었다.
”뭘 그린 거야? “
”응, 대통령을 그렸어."
"대통령이 어디 있어?"
"이 차 속에 있어, 사람들이 박수를 치면서 대통령을 환영해주는 거야."
"엄마, 나는 대통령이 될 거야."
”승현이 대통령이 되고 싶어? “
”응, 그런데 어떡해?"
"왜?"
"나는 아직 다 못 컸는데 대통령이 너무 늙어서 돌아가시면 어떡해?"
"그래서 슬퍼?"
"응 내가 다음에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데 아직 다 못 컸단 말이야."
그 후로 아이는 며칠간 빨리 크기 위해 밥도 열심히 잘 먹었다.
요즘 초등학생들의 꿈의 목록에는 대통령이 나오지 않는다.
1990년대에만 해도 많은 아이들의 꿈 목록 1위는 대통령이었다. 아이들은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자신의 미래의 삶을 그린다. 그 당시에 텔레비전 켜면 대통령 이야기가 나왔다. 뉴스는 항상 "000 대통령께서는..."으로 시작되었다. 따라서 아이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사람은 대통령이었고, 어른들 또한 "대통령처럼 큰 사람이 되어야지."라며 아이들의 꿈을 응원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어른이나 아이나 세상의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은 대통령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사회가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의 능력으로 돌아가는지 그리고 직업의 소멸과 변화 또한 얼마나 빠르게 일어나고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진로 지도에 있어서 과거에는 직업을 목적으로 했다면 이제는 분야에 초점을 맞춘다. '내가 잘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자신의 꿈을 정하도록 안내한다. 진로에 대한 다양한 책을 통하여 관련 직종의 현실(어려움과 전망)을 보여준다.
아이들은 무엇인가를 잡을 수 있는 손 힘이 생기면 소위 말하는 낙서를 한다.
어쩜 그들의 입장에서는 자기표현일 것이다.
방바닥이고 벽이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낙서장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몸짓이 그림이 되고 글이 되는 것이다.
낙서 속에는 아이의 무의식의 세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낙서를 낙서로 보지 말고 아이의 생각을 볼 수 있는 눈을 부모가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뒤늦게 해 본다.
“뭘 그렸니?”
“이건 누구야?”
“뭘 하는 모습이야?”
아이의 낙서 속에 나타난 것들을 유심히 살펴보고 대화를 시도해보자.
등장인물의 표정을 살펴보고, 인물 간의 배치와 인물 간의 거리를 살펴보고, 인물의 몸짓을 살펴보며 말을 건네보자.
"잘 그렸다."
"우와, 화가 같아."
라는 영혼 없는 칭찬을 하지 말고, 질문으로 그림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자. 아이들은 자기가 그린 그림에 관심을 보여주면 좋아한다. 질문을 통해 아이 스스로 자신의 내면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
우리 아이가 발달 단계에 맞게 정상적으로 자라나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많을 것이다.
옆집 아이보다 어느 날은 나은 것 같기도 하고, 어느 날은 조바심이 나고...
이때에는 그림으로 판단해볼 수 있다.
그림은 아이의 정서와 지적발달을 판단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쉽게 하는 방법은 인터넷에는 수많은 자료가 있다. ‘아동 미술 발달 단계’라는 검색어만 넣으면 연령의 발달 단계에 맞는 특성을 쉽게 찾을 수 있고, 그것을 기준으로 우리 아이의 정서적 발달 상황도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다. 또 운이 좋다면 또래 아이들이 그린 그림도 많이 만날 수 있게 될 것이다. 아이마다 발달 단계가 조금씩은 다르기는 하지만 4,5세를 깃점으로 이전까지는 모든 아이들이 비슷한 보편적인 낙서를 하였다면 이후부터는 무엇인가를 그려야겠다는 의도가 담긴 그림을 그리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그림은 아이의 발달을 파악하는 굉장히 중요한 자료이다.
아이가 그린 그림에는 발달뿐만 아니라 아이의 정서가 나타나 있고 아이의 생각도 드러나 있다.
그러므로 아이의 낙서를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바탕으로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면
아이의 마음이나 생각을 터치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 사람은 누구야?
그런데 왜 눈코 입이 없니? -생김새
어머나 신나는 일이 있나 봐, 활짝 웃었네, 좋은 일이 있나 봐?
무슨 일이지?-표정
얘랑 얘는 친구니? 지금 뭐 하고 있니?
이 사람은 왜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니?-관계
왜 이렇게 크게 그렸어?
어머나 너무 작게 그렸네. 누구니? 왜 작게 그렸어?- 중요도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낙서와 글쓰기는 본능이다. 그 본능을 잘 키우겠다. 아이의 그리고 쓰는 모든 것들을 소중히 대하겠다. 비단, 유아 때의 낙서뿐만 아니라 학교에 입학하여 그리는 그림이나 그림일기에 나오는 장면까지 가능하다면 말을 건네어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