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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초요 Sep 25. 2021

어느 엄마 선생님의 고백

톡톡, 기억을 소환해 봅니다.

우리 아이, 글쓰기와 함께 키우기

 쉰이 훌쩍 넘은 나이
살아갈수록 부모의 양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으면서 많은 반성을 합니다. 
반성 속에서
"이랬으면 좋았을 걸..."
 그 마음을  
정성껏 담아 보렵니다. 

솟대


1. 어느 엄마 선생님의 고백     



[#1. 장면]

“무슨 씨앗을 심었니?”

“응, 돌을 심었어.”
 “돌?”

“이제 돌이 자라서 산이 될 거야.”

“정말? 여기에 큰 산이 만들어지는 거야?”

“응, 산이 자라면 나무도 심고 꽃도 심을 거야.”

승현이는 봉긋이 솟은 흙더미에 물을 주며 자랑스럽게 말한다. 

나는 다만 창의적인 아이라 생각하고 스쳐 지나갔다.     


[#2. 장면]

물음표가 그려진 종이를 갖고 오더니

“엄마, 이거 농담이다.”

“농담? 무슨 농담?”

“농담이라고 읽어야 한다고.”

종이에 ‘?’를 그리고선 ’ 농담‘이라고 읽는다. 승현이는 이런 식으로 몇 가지 자기만의 글자를 만들어서 읽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은 학교를 들어가기 전까지 세종대왕이 만드신 한글을 깨치지 못했다. 아이가 만든 글자와 세종대왕이 만든 글자가 계속 부딪히면서 5월쯤에 한글을 깨치게 되고 학교에서 보는 받아쓰기 시험 점수는 엉망이었지만 그다지 안타깝지 않았다. 

때가 되면 될 거라 생각했다.     


[#3. 장면]

유치원 재롱 잔치하는 날이다.

모두가 탬버린을 치면서 율동을 하며 노래를 부른다. 무대에 오른 아이들은 신나 하기도 하고 부끄러워하기도 한다. 율동을 크게 하는 아이, 입을 크게 벌려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아이, 율동을 아주 정확하게 하는 아이, 정확한 음과 박자를 지켜 노래 부르는 아이, 환하게 웃는 아이, 무표정한 아이, 부끄러워 고개 숙인 아이... 우리 승현이는 부끄러워 엄마가 왔는지 찾아보지도 못하고, 고개 숙이고, 노래는 부르는지 마는지, 탬버린은 치는지 마는지...

승현이는 어렸을 때부터 잘 생겼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유아 때는 얼굴 생김새가 더 빛났던 것 같다. 길을 가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정도로...

”어머, 얘 너무 이쁘게 생겼다. “ ”야, 너, 정말 잘 생겼구나. “

이쁘다는데, 잘 생겼다는데 이쁜 척 잘난 척하면 좋을 텐데, 승현이는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불편해했다. 집안에서 활발하게 잘 노는데 문 밖을 나가는 순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기표현을 잘하지 않았다. 

나중에 크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4. 장면]

 승현이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었다. 5살 즈음이었다. 아이는 낮에 다녀가신 아빠 친구들이 차를 나누어 마시던 모습을 그렸다. 원형 찻 상에 둘러앉아 차를 마시는 장면, 가장자리에 모양을 낸 차상과 차상의 다리도 정확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5살 정도의 아이들은 앉아 있는 모습을 대부분 바닥에 누워있는 모습으로 나타내는데 승현이는 그야말로 둥글게 앉아 있는 모습과 사람들 사이에서 보이는 차상과 차상 다리의 형태를 정확하게 입체적으로 표현하였다. 

그림을 보면서 그림에 소질이 있나 보다. "또래 아이들보다 잘 그리네."라고만 생각했다.     


[#5. 장면]

초등 1학년 여름방학을 맞이할 즈음이다. 학교에서 방학 계획서를 작성하는 활동이 있었다. 같은 학교에 다니다 보니 담임 선생님께서 방학 계획서를 보여주셨다.                     

여름방학 계획 세우기 
1. 한 숨 자기  2. 한숨 더 자기  3. 한숨 또 자기

  집에서 아이가 안 보여 찾아보면

가장 안락한 곳에서 누워 연필 하나 들고 공중에 그림을 그리거나 ’위이잉~‘소리를 내며 연필 비행기를 날리고 있다.

자폐가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귀차니즘이 심한 아이일까? 

그 외 별다른 문제를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의 고민은 하지 않았다.     


[#6. 장면]

  4학년 때 지인의 영어학원에 아이를 보냈다. 사립초라서 학교에서는 1학년 때부터 영어를 해 왔다. 그런데 학원 진단 평가에서 0점을 받았단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혼내기보다는 신기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지나고 외부 영어 시험에서 00구 1등을 했다. 

그렇게 해낼 거라 생각했다.     


[#7. 장면]

  승현이는 사립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집 근처 중학교에 입학하여 반 배치 고사를 보았는데 전교 1등을 했다. 사립초등학교이기에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이 정도까지 공부를 잘하리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대견했다. 

한편으로는 '그럼 그렇지라.' 나의 믿음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8. 장면]

  중학교 2학년 중간고사 결과 수학 점수가 엉망이었다. 이유인즉 시험을 보는데 연필이 없었단다. 볼펜밖에 없어서 시험지에 바로 풀지 않고 뒷면에다 풀었는데, 그것을 옮겨 쓰는 중에 시험 시간이 종료되었단다. 이 이후로 승현이는 수학 시험 불안감에서 헤어나지를 못했다. 

그 후 겨우 해 준 것이라고 시험이 있는 날 아침에 연필을 챙겼는지만 물어보았다.     


[#9. 장면]

  약간의 귀차니즘과 차분한 성향인 승현이는 친구의 폭이 넓지는 않았다. 그러나 중학교에 다니면서부터 단짝 친구들과 몰려다니기 시작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나오는 학원에 대한 정보를 듣고, 학원을 옮겨달라고 요구해왔다. 승현이의 성적이 상위권이라 친구가 다니는 학원에서 장학금을 주겠다고 제안했단다. 어른들의 상술이라고 안된다고 잘라 말했다. 아이가 요구한 것 중에서 뭔가 도전하고 싶어 한 가장 큰 것이었는데 나는 한 방에 단호하게 거절했던 것이다. 

아이는 이후 도전하고자 하는 그 무엇인가는 요구하지 않았다.      


[#10. 장면]

승현이는 남녀공학인 중학교를 다녔다. 쉬는 시간이면 여자아이들이 ”제가 승현이야. “라고 교실 안을 들여다보고 수군거린다. 그런 소문이 여러 차례 있고 난 후, 성격 좋고 리더십 강한 여자 친구를 만났다. 세상을 그 아이의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가끔은 그 여자 아이의 언니인 대학생의 말이 부모 말보다 효력이 좋았다. 

그때부터 가족의 말을 잘 수용하지 않았다.     


이렇게 중학교까지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그리고 세월이 아주 많이 흘렀다.  
승현이는 이제 이십 대 후반이 되었고, 나는 오십 대 후반이 되었다.  
모두 아름다운 기억이다.  
그러나 미련은 남는다.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었다면? 
적절한 질문을 해 주었더라면? 
보다 더 깊이 있게 생각하게 해 주었더라면? 
말이나 글로 자기표현을 더 확실하게 할 수 있도록 해 주었더라면?     

[#1. 장면] 엉뚱한 생각이 유용성을 갖춘 창의적인 생각이 되었을 것이고,

[#2. 장면] 자신의 생각에 비판적 사고력을 더했을 것이고,

[#3. 장면] 자기표현을 제대로 하는 아이로 자라났을 것이고,

[#4. 장면] 자기의 강점을 최대한 발휘하는 아이로 자라났을 것이고,

[#5. 장면] 자신의 하루를 돌아보고 성찰할 줄 아는 아이로 자라났을 것이고,

[#6. 장면] 무한한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도전하는 아이가 되었을 것이고,

[#7. 장면] 자기 효능감이 강한 아이가 되었을 것이고,

[#8. 장면] 시험불안에 대하여 보다 분석적으로 접근하여 이겨냈을 것이고,

[#9. 장면] 보다 주도적인 아이가 되었을 것이고,

[#10. 장면] 세상에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함을 알게 되었을 것이고, 더 다양한 의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아이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아들이 부족하다는 것은 아니다.
승현이는 돌고 돌아서 오늘에 이르렀지만 
나름 그 돌고 돈 길도 의미는 있었지만 하지만 
엄마인 내가 많이 아쉽다.
그래서 
자녀 교육에 대하여 고민하는 모든 어머님들께
이 글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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