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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초요 Oct 01. 2021

5. 아이의 능력 온전히 믿기

Ⅱ. 아이를 키우시나요?

나의 노하우가 우리 아이 삶에서도 노하우가 될까?

 

  "아, 바로 이거야, 요것만 하면 완벽해!"

 부모 생각엔 정말 이것만 갖추면 우리 아이 능력이 출중해지겠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 아이가 싫어하고 거부하면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결국은 시간만 낭비하게 될 뿐만 아니라 아이와 마음마저 멀어지 된다.

 이렇게 간단하게만 끝나면 다행일 수 있지만 이로 인하여 아이의 스트레스 지수는 높아지고 그것이 관리가 되지 못하면 누군가에게 함부로 행동하급기야 그동안 쌓아놓았던 인간관계는 무너지는 도미노가 되고 만다. 

 반대로 부모의 강요나 억지가 아니라 아이 스스로 선택하게 하면 결과는 달라진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선택한 것에 대해 애착과 책임감을 갖는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이것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한 템포 쉬어가는 게 좋다. 아이가 선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아이가 원하지 않으면 접는 게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련이 남는다면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한번 선택의 기회를 주는 것도 괜찮다. 

아이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것이야 말로 아이가 주체적으로 자기 삶을 살 수 있게

스스로 노력하게 되는 가장 좋은 원동력이고, 성취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무슨 소리요. 우리 애는요, 그런 거 몰라요. 내가 알려 주어야 해요. 내가 도와주어야 해요."

정말 우리 아이가 아무것도 모르고,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할 수 있는 게 없는 걸까? 진심 그런 아이이길 바라는가?


 가끔 1학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이 안에 우주가 들어 있음을, 아주 큰 어른이 있음을 가끔 느낀다.


  부모인 내가 아이보다 우월한 것은 무엇일까?  

우린 왜 그런 생각을 당연히 여길까? 인간으로서 가져야 하는 감정이나 기본 능력은 비슷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이 세상에 먼저 왔기 때문에 아이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면서 나름대로 자기만의 노하우를 가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야. 이 시대 부모의 노하우가 우리 아이에게도 고급 정보가 될까?"


  며칠 전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육백 불 시대에 태어난 사람이 어떻게 삼만 불 시대에 태어나고 자란 사람을 이해할 수 있겠냐?"

"아하, 태생부터 다르다."

이만 불 시대와 삼만 불 시대에 속한 사람들의 가치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문화가 다르고 사회적 가치가 다르기에 같은 사안을 바라보는 기준이 다르다.


  90년대생의 아들이 둘 있다. 60년대생 부모가 90년대생 아들을 이해하려면 부족한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래서 일단은 무조건 들어보기로 했다. 들어보기로 하기고 마음먹는데 까지 걸린 시간은 아마도 거의 25년이나 된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자락에 가서 "그런데 말이야,~~" 그 말이 나오면 아들은 몸서리친다. "엄마, 제발~" "음, 알았어."

나는 요만큼 변화 발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딪힌다. 모든 것을 내려놓지 못해서... 하지만 이런 노력 덕분인지 그래도 시간이 갈수록 서로서로가 조금씩 스미어가고 있는 부분은 있다. 분명 발전해가고 있는 것이다.


 60년대 생 한번 생각해보자. 

라테는 말이야,  시내버스에도 안내양이 있었지. 전화 교환원도 있었어. 나는 버스를 탈 때마다 우렁찬 안내양 언니가 너무 멋있어 보였어. '이다음에 크면 나도 버스 안내양이 되어야지.'혼자 야무지게 생각했지.

"아, 아, 알리겠습니다. 00 씨네 따님 00님 전화 왔습니다." 마을에 전화가 한 대 뿐이었어, 이장님이 전화 왔다고 방송해주면 쏜살같이 달려가지, 그럼 다시 전화가 오지. "아, 여보세요. 히히"

그런 내가 요즘은 스마트폰 중독에다 유튜브에다 심지어 브런치까지....

"그런데 말이야. 아주 자연스러웠어. 이 변화, 그냥 전자기기 세상에 나오면 그때그때 사서 쓰다 보니 이렇게 되었어. "

변화의 흐름 속에서 함께하다 보니 모든 것은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다. 아예 개인적 변화 자체를 감지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90년대생과 같은 가치관이나 사회적 잣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60년생과 90년생의 차이는 하늘과 땅이다. 그 차이를 인정하고 수시로 기억한다면 나의 잣대로 아이를 바라보거나 사회를 바라보지만은 않을 것이다. 더더군다나

"엄마 말만 들어. 그러면~"이라고 횡포를 부리지 않을 것이다.


 교육과정도 많이 바뀌었다. 내가 초등학교에서 배웠던 교과 내용 중에는 무용지물이 된 것도 있고, 사실이라고 배웠던 것은 사실이 아닌 것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생각나는 것은

 북한 사람들은 괴뢰군, 붉은 늑대처럼 생겼는 줄 알았다.

서울에는 나무 한 포기 풀 한 포기 안 자라는 줄 알았다. 내가 알고 있는 70년대 서울은 사람이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공기 오염이 심각하여 모두가 환자인 줄 알았다.

  나는 학교 교육을 통해 그런 세상인 줄 알았다. 

그런 내가 80년대 대학을 다니고 교사가 되었

학교 아이들 생활지도를 위해

"만화책을 보지 맙시다."

"핸드폰을 학교에 가지고 오지 맙시다."라는 주제로 논술지도를 하고

떠들썩하게 새천년 2000년을 맞이하여 

스마트폰 무제한 용량을 이용하여  아이들에게 핫스폿으로 데이터를 나눠주며 영재수업을 하고 

이제 2021년,

예체능 교과서에 이어 사회. 과학도 검인증 교과로 바뀌면서 선생님들은 선정위원이 되어 꼼꼼히 자기가 수업할 교재의 선정권을 가지게 되었다.

국정교과서로만 배운 우리가

검인정 교과서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교과내용의 기본 목표, 성취목표는 같으나 내용 구성과 자료에서는 각각 특성이 있다. 적어도 왜곡된 배움을 받을 확률이 낮아진 것은 틀림없다. 

다양한 관련 자료로 한 가지만 고집하지 않게 되리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세상은 쉼 없이 달려온다

그 속에 스미어서 나도 달린다.

너무나 다른 세상에 와 있으면서도

이 세상을 살아보지 않은 우리 부모가 나를 키우던 방식대로 혹시 우리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금은 한 번쯤 돌아볼 때다.

어찌 보면 우린 가장 큰 변혁기에 살아가고 있는 것일 수도...


그러나 한 가지.

내가 경험한 것을 내 아이가 경험할 확률은 낮다.

내가 생각한 노하우가 내 아이의 삶에서 고급 정보가 될 확률 또한 적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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