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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초요 Oct 05. 2021

7. 신부 수업 아닌 엄마 수업

Ⅱ. 아이를 키우시나요?

Ⅱ. 아이를 키우시나요?

엄마가 될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엄마가 되었던 것 같다

첫 아이가 허니문 베이비였으니 결혼하자마자 임산부가 된 것이다.  

첫 아이를 낳은 날, 

 "안녕? 내가 네 엄마야."라고 속삭이고 싶은데, 그 말을 차마 내뱉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뭔가 모르게 부끄럽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엄마답다고 생각되지 않았고, 아직 자격을 갖추지 못한 듯한 느낌... 뭐 그런 복잡한 양심(?)때문이었던 것 같다.


태교 일기는 꾸준히 썼다

아마도 두서너 권은 되는 것 같다. 첫 아이를 가졌을 때에는 모교인 시골 초등학교에 근무했었다. 본가가 바닷가에 위치하여 산속 품에 있는 학교를 향하여 갈 때면 오대산 월정사의 말사인 영은사가 있는 곳을 향하게 된다. 두 날개가 쫘악 펼쳐진 그 산자락 아래 영은사가 있다. 직접 보이지는 않지만 위치를 알기 때문에 그 산자락이 내게는 일반적인 산이 아니었다. 안개라도 끼는 날이면 더욱더....

 

  그때 당시 태교 일기가 유행했다. 출근길에 태아인 첫아이를 위해 부처님을 향해 많은 기도 말을 속삭였던 것 같다. 무교이기는 하지만 사월초파일이면 열일 젖히고 절에 가시는 친정엄마로 인해 어렸을 적부터 나는 부처님에 대해 영험함(?)을 알게 모르게 체득하면서 자라왔다. 엄마는 부처님 뿐만 아니라 정안수를 떠 놓고 손을 비비며 또 다른 신께도 자주 기도를 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니 엄마의 종교는 불교와 유교 그리고 샤머니즘이 섞인 엄마만의 종교(?)가 있었던 것 같다.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게 그리고 선명하게 떠오르는 엄마의 기도문은

 "비나이다 비나이다. 00님께 비나이다. 우리 00가 남의 눈에 꽃이 되고, 남의 입에 꽃이 되고, ~ 되고, ~되고, ~될 수 있게" 

새벽녘에 무슨 소리가 나 일어나 보면 영락없이 엄마는 정화수를 떠 놓고 열심히 우리 육 남매를 위한 기도를 하셨다. 머리맡에서 더러는 부엌에서, 장독대에서... 그 때문인지 나는 살아오면서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는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지장보살 지상 보살'을 마음속에 읊조린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내 마음이 조금씩 정리가 된다.

 

  어쨌든 엄마가 되는 공부는 하지 않았지만 태교 일기는 열심히 썼다. 

그나마 그것이라도 했다는 것에 조금 자위를 하지만, 50대 후반이 되어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는 '아이가 아이를 낳았고 아이의 성장에 기대어 어설픈 엄마 역할'을 해 왔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40대 중반 어느 날, [미술 치료]에 대한 30시간의 연수를 받으면서 

두 아들들에게 내가 얼마나 횡포를 저질렀는지 알게 되었고,  

아이의 심리, 아이의 마음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 낮은 상태에서, 그 중요성도 모르면서 아이를 키웠던 것을, 한심한 엄마인 나를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나에겐 이상한 자책(?) 어린 생각이 있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키웠을까? 아이 스스로 자라난 거지."라는 반항 아닌 반항심이 심술처럼 발동된다. 

그러나 '아이를 키웠다.'라고 말하기 부끄럽게 우리 아들들은 잘 자라나 주었고, 

요즘은 가끔씩 '나보다 나은 아들'의 모습을 보여주는가 하면, '엄마를 믿을 수 없어하는 아들'의 모습도 가감 없이(?) 보여주기도 한다.

 "두 아드님, 미안합니다." 아들들 초등학교 다닐 때. 담임했던 학급 아이들의 좋은 엄마 학부모를 만날 때면, '우리 아들에게도 나 아닌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었다.


 살아갈수록 느끼고 깨닫는 것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사람과의 관계이다.

 '인간관계'는 각자 자신의 양육과정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나이가 들어도 어른이 되어도... 마음 깊숙이에 본능처럼 자리한 부모의 양육태도에 기인한 감정들을 해결하지 못하여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그나마 그것을 알아챈다면 다행이지만,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감정의 발로로 애써 만들어 온 관계를 망치기도 하고, 한번 실수로 끝나지 못한 채, 그 상황이 되면 또 그렇게 본능처럼 반복하고...

 라테는 말이야,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는 '요리 학원'을 다니는 게 유행이었어.
그것이 결혼을 위한 최선의 신부수업이라고 생각을 했거든.
이제 시대는 바뀌었으니 '아이의 발달 단계'에 대한
신부 수업 아닌 '엄마 수업'을 받는 것은 어떨까?


  최근 '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상행동을 보이는 아이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얼마나 두렵고 무섭고 불안하기에 그렇게 온몸으로 표현할까? 하나하나 원인을 찾다 보면 대부분 양육과정에서 어떤 외부의 충격이 있었던 것이다. 초등학교에서 30년간 근무하면서 많은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마음이 아픈 친구들이 생각보다 많다. 안 그런 척하는 친구들도 많고, 자기보다 엄마를 더 안쓰럽게 생각하는 속 깊은 아이도 많다. 그러나 '아이는 아이다. 다 상처로 남는다' 그 상처로 인하여 세상살이가, 인간관계가 힘들어 삶을 내려놓고 싶을 때도 있어진다. 살다 보면...


대물림, 당대에서 끊어라.


  엄마가 될 준비를 결혼 전 필수 코스로 의무화하는 것은 어떨까? 

지능 정보화 사회,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많은 정보를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지금 젊은이들은 예전의 우리보다 훨씬 스마트하다. 이들이 마음만 먹으면 아이의 발달에 대하여 공부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잘 배우고, 아이를 키우면서 자신의 것으로 재 창조한다면 훨씬 지혜롭고 현명한 엄마 역할을 제대로 할 것이다. 나아가 그런 양육과정을 겪고 자라난 다음 세대 또한 아이의 발달을 존중하며 아이들을 행복하게 잘 키우게 될 것이다. 

결국은 '행복한 가정,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데 크게 기여할 있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우리 아이가, 우리의 후손들이 이 세상에서 소풍 같은 삶을 살다 갈 수 있을 게다. 



 미술 심리 치료에 대한 연수를 받은 이후로 

다중지능, 에니어그램, 디스크, MBTI, 코칭, 세븐헤빗, 학습코칭, 학습전략, 영재 심리 등에 대한 공부를 체계적으로 했다. 우리 집 두 아들뿐만 아니라 내가 가르치는 모든 아이들을 이해하려고, 더 나아가 주변 사람을 이해하려고 열심히 공부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공부한 만큼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그렇다고 누구나 인정하는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그로 인해 내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다.  도리어 내가 더 행복해졌다.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아이를 낳기 전에 아이를 이해할 수 있는 공부를 충분히 하겠다. 그래서 막연히 ‘나를 닮았으니 이것은 잘할 거야.’ ‘누구 닮아서 이렇지? ’ 등의 쓸데없는 말로 합리화하지 않고 온전히 우리 아이 그 자체를 인정하고, 아이의 발달 단계에 걸맞은 양육에 대하여 고민하고 연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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