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틀리제 Sep 29. 2024

사연녀와 그녀의 수호천사들

13화 : 민정의 세 번째 여정(1)

“천사님들, 괜찮으신 거죠?”


천사들이 사라지자마자 민정이 해일에게 질문했다.


“많이 걱정되셨습니까? 저 정도는 수호천사들에겐 긁힌 상처 수준이죠. 민정씨도 병원에서 저만큼 고생하지 않았습니까.”


해일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들은 어느새 사무실 같은 공간에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해일은 태연했다.


“시간도 있으니 설명을 좀 해 드릴까요.

직접 겪어보셨듯이 수호천사와 사탄의 싸움은 공격과 방어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때로 공격하는 입장이 되기도 하고 방어하는 입장이 되기도 하죠. 그리고 보통은 서로 팀을 이뤄서 싸웁니다. 그래서 서로 공수의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역할을 배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 천사님들은 어떻게 했죠?”


“주로 나래 천사님은 방어를 하고 루미 천사님과 로운 천사님은 공격을 하시던데요. 아, 로운 천사님은 방어도 조금 하셨구나.”


“그렇습니다. 좀 더 정확히는 나래 천사님은 방어, 루미 천사님은 공격, 로운 천사님은 보조의 역할입니다. 그렇게 나누는 이유는 각 천사의 특성에 따라서 잘 할 수 있는 임무를 수행하는 겁니다. 나래 천사님은 경찰을 특성으로 삼았으니 지키는 것을 잘 하고요. 특성에 맞게 방어력이 공격력에 비해 월등히 뛰어납니다.

루미 천사님의 특성은 ‘선녀’입니다. 아름답고 우아하지만 매섭죠. 신비롭고 자유로운 바람을 비롯해 많은 생물이나 자연물들을 다루십니다. 방어보다는 공격에 좀 더 유능하시지만 사실 다 하실 수 있어요.

로운 천사님도 비슷합니다. 나무의 정령이니 나무를 소환하는데, 나무는 날카로운 창이 될 수도 있고 단단한 방패가 될 수도 있고 또는 적의 다리를 옭아매고 시야를 가리는 견제와 보조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만능이죠.”


“해일 천사님은요?”


“저는 알다시피 군인이고, 총을 쏩니다. 그냥 권총이나 소총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모든 화기(火器)를 다룬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안에 영력을 얼마나 집어넣느냐에 따라서 소총도 되고 저격총도 되고, 폭탄도 됩니다.”


민정은 모의 전투에서 시종일관 커다란 소음을 내며 펑펑 터뜨리던 해일의 공격이 생생했다. 마지막에는 반경 수십 미터를 하얗게 물들였던 거대한 섬광도 있었다.


“영력이 뭐죠?”


“영력(靈力)은 천사가 가진 힘이나 능력을 말하는데, 사람으로 치면 체력, 근력 같은 신체적 능력뿐만 아니라 음감, 미적 감각, 지능 같은 정신적인 능력도 포함입니다. 영력 중에서도 전투에 사용되는 영력은 무력(武力)이라고 하고요. 무력은 스포츠나 격투기의 예시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겁니다.

영력은 천사의 급에 따라서 나뉘고 무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가 다른 천사님들보다 급이 높은 건 아닙니다. 제가 무력이 강한 이유는 수호천사 특수부대로서 사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자세한 건 모르셔도 되고요.

아무튼 저는 방어보다는 공격을 잘하는 편입니다. 총으로 공격을 막는 건 애매하죠. 대충 보셨겠지만 바람이든 나뭇가지든 간에 총알로 튕겨내는 게 좀 웃기게 보였을 수도 있겠습니다.”


“웃기진 않았는데 좀 신기하긴 해요. 내가 알던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에요.”


“육신의 세계를 기준으로 쇠로 된 총알이 바람을 막아내는 것은 말이 안 되지만, 여기선 총알도 바람도 모두 영력의 결정체입니다. 영력을 총알로 만들든 바람으로 만들든 그건 천사의 자유지만 본질은 같은 에너지이기 때문에 충돌할 수 있죠. 심지어는 이런 것도 가능합니다.”


피융 하는 경쾌한 총소리가 났다. 해일의 손에 든 총에서 나온 총알이, 공중에 떠서 멈춰 있었다. 그리고 해일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이리저리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아, 그때 그 흰 새를 공격할 때 쓴 방법이네요?”


민정은 모의 전투 후반부를 기억했다. 최후의 순간, 백학을 저격한 해일의 총알은 방패를 들고 막아선 나래를 피해서 넘었다. 저런 식으로 날아가는 각도를 임의로 조정한 것이었다. 그런 곡예 같은 일을 해낸 해일에 대한 감탄이 섞인 말이었다. 하지만 민정의 말에 오히려 놀란 것은 해일이었다.


“...그걸 보셨어요?”


“아, 그때만 뭔가 좀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느낌? 슬로비디오처럼 보이더라고요. 좀 짧은 시간이라서 내가 착각한 건지 모르겠는데...”


“음... 놀랍군요. 집중력이 좋으시네요.”


“집중력이요?”


“네. 영력이 높을수록 강한 공격을 하는 것처럼, 영력이 높을수록 빨리 움직일 수 있습니다. 영혼의 세계에서는 시간이 존재마다 동일하게 흐르지 않습니다. 급이 높은 영은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죠.

행동뿐만 아니라 인식하는 것도 마찬가지죠. 영급이 높을수록 빨리 움직이는 무언가를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아직 영급이 낮은 민정씨가 우리 전투 장면을 제대로 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민정씨는 그 순간에 집중력을 발휘해서 현재 수준을 초월하신 겁니다.”


“와, 그래요? 뭐, 실제로 거의 제대로는 못 봤어요. 다들 너무 빠르시던데요.”


“네, 하지만 노력은 할 수 있죠. 영의 급과 영력만으로 모든 것이 결정한다면 노력할 이유도 없죠. 영력 차이를 극복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의지입니다.”


“의지요?”


“마음의 힘이라고 할까요. 육신의 세계에서 말하는 간절하게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 같은 불명확한 이야기가 아니고요. 영계에서 마음의 힘은 실재하는 에너지를 가집니다. 그게 영력 발현의 원천이죠.

천사님들이 전투할 때에 주문 같은 걸 외우거나 기술명을 외치는 것이 그런 이유죠. 좀 더 강한 의지를 담아 영력을 극대화시키려고. 아까 전에 로운 천사님이 숲을 만들 때 하셨던 것처럼요.”


“생명력이 어쩌고 하셨던 거.”


“그렇죠. 만화도 아니고 유치하게 기술명을 왜 외치겠어요. 조금이라도 강한 의지를 담기 위해서 그런 겁니다.

어쨌든 민정씨가 갑자기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처럼 또렷이 싸움을 인식하신 것도 강한 의지를 가지고 집중해서 살펴보았기 때문에 그때 한정으로 영력 차이를 극복했던 겁니다.”


“그렇다고 하시니까 그런 줄은 알겠는데, 정말 신기하네요.”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원래라면 말씀드릴 일이 없는 부분인데 민정씨가 직접 해냈으니 조건이 생겼습니다.”


민정의 마음 속에 기쁨이 차올랐다.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로운 천사님이랑 루미 천사님은 말씀하신 것처럼 기술명도 외치시고 화려하게 공격을 하시던데 해일 천사님은 그런 거 없으세요? 일부러 안 쓰신 건가.”


나무 정령에 걸맞게 거대한 숲을 만들어낸 로운이나 새 두 마리를 소환하고 어마어마한 화염 태풍을 만들던 루미와 달리 해일의 공격은 담백하게 짝이 없었다. 그럼에도 승리자는 해일이었다.


“'기술'은 천사들이 자기 특성에 맞게 비장의 한 수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로운 천사님이랑 루미 천사님은 기술을 갈고 닦으시죠. 특히 루미 천사님은 오랫동안 수호천사로 존재하시면서 다양한 기술을 많이 준비를 하셔서 상황에 맞게 효율적으로 사용하십니다. 아까 새를 소환하신 거나 새와 함께 회오리불꽃을 만드신 것은 루미 천사님의 기술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로운 천사님은 이제 열심히 기술을 발전시키고 계시고요. ‘생명력 넘치는 만물의 터전’은 한 번에 거대한 숲을 만들어내는 기술로 강력한 공격이면서 상대를 꼼짝 못 하게 하는 견제 역할도 합니다. 공격이나 방어 입장이나 어디든 효과적인 기술이죠.

하지만 기술은 효과가 큰 만큼 영력 소모도 커요. 저는 그래서 일부러 로운 천사님이 ‘만물의 터전’을 쓰도록 유도하고 바로 파훼했죠. 그리고 그때 전투가 결판이 났죠. 그때 로운 천사님이 기술을 안 썼으면 조금 더 오래 버티셨을 겁니다. 장단점이 있는 게 기술인 만큼 저는 기술을 특별히 만들어서 하기보다는 그냥 기본에 충실한 편입니다.”


해일은 한참 설명하더니 다시 총을 들었다.


피융-


“그냥 쏘면 평범한 공격이지만,”


탕-


“영력을 더 모아서 쓰면 강력한 공격이 되고.”


피융-


“또 저격처럼 한 점 집중시키는 빠르고 강력한 공격을 할 수도 있고.”


콰앙-


“폭발을 일으켜서 넓은 범위를 쓸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다양하게 할 수 있는 이런 것들이 ‘기술’이나 다름없죠. 나래 천사님도 저랑 비슷한 성향이시고요.”


“오... 다들 진짜 너무 멋있네요.”


“본업이고 전공이니 잘해야죠. 음, 천사님들이 돌아오시는군요.”


해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무실 안의 빈 공간에서 세 천사가 등장했다. 이 정도는 긁힌 상처밖에 안 된다더니, 피가 철철 흐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완전히 말끔하게 회복한 모습이었다.


“준비 되셨습니까? 그럼 반대로 시작하겠습니다.”


이번에는 해일이 민정의 반대편에 섰다. 나래, 루미, 로운은 민정을 둘러쌌다. 선두에는 긴장한 얼굴로 방패를 땅에 꽂은 나래가 있었다. 루미와 로운은 나래의 두 발짝 뒤에서 양옆으로 섰다. 아무래도 방어의 입장이 되었으니 나래가 좀 더 긴장한 얼굴이었다.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총알 한 발이 날아와 방패를 때렸다. 멀리서 잡아먹을 것처럼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는 해일을 본 민정은 두려운 마음에 전율했다. 모의 전투라서 위험한 일은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저 총을 든 강력한 천사가 적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무서웠다.

나래의 방패는 끊임없이 공격을 당했다. 기관총을 대고 쏘는 것 같았다. 나래는 열심히 버티는 중이었다. 다른 천사들도 노는 것이 아니었다. 매서운 바람과 나무줄기들이 해일이 있는 곳으로 끊임없이 날아갔다. 그러나 해일은 그것들을 더러는 소멸시키고 더러는 빠른 움직임으로 피해 버렸다.

민정은 채 일 분도 지나지 않아, 지킬 것이 없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해일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었다. 루미와 로운의 공격은 피하면서 피하지 못하는 나래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었다. 더 놀라운 점은 아직도 해일은 아직 제대로 시작하지 않은 듯, 마치 권투로 치면 잽을 날리면서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는 사실이었다.


민정의 편이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는 걸 민정은 알아차렸다. 마치 정말로 위험에 처한 것 같아서 자기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을 뻔했다. 그러나 열심히 두 눈을 뜨고 지켜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인의 하루.”


루미가 무언가 길게 주문을 외우더니 태양이 떴다. 민정은 태양에서 강한 힘이 나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면 해일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멀리서 해일이 태양을 겨냥하고 총에 영력을 모으는 게 보였다.

저 천사가 영력을 모아 쏜다는 것은-


꽈앙 하는 거대한 충격이 태양 앞에서 터졌다. 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서듯 하는 강한 충격이 왔다. 자세히 보니 로운이 두터운 나무 방패를 소환해서 태양을 지킨 모습이었다. 로운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기술’은 장단점이 있다고 했었다. 좋은 효과를 얻은 대신 로운이 책임 지고 태양을 지키고 있어야 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해일은 그런 기회를 놓치지 않는 천사였다. 나래와 로운에게 매서운 공격이 이어졌다.


“끼악!”


나래가 묵묵히 버티는 것에 비해 로운은 비명을 지르면서 해일이 공격을 감당했다. 로운의 나무 방패는 나래의 것에 비해 튼튼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나마 루미가 해일의 공격을 대신 막아주기도 하고 또 해일이 공격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기도 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진작에 로운은 버티지 못하고 태양이 파괴되었을 것 같았다.

결국 전투의 흐름은 나래와 로운은 오직 방어를 하고 루미는 둘을 보조하며 해일을 견제하는 모양으로 갔다. 열심히 추이를 살피고 생각하던 민정은 의문이 생겼다. 루미가 소환한 태양, ‘선인의 하루’는 강력한 힘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이긴 했다. 태양이 뜬 이후 나래는 수비하기가 원활해 보였고 해일은 태양빛을 피하거나 막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태양조차도 해일에게 특별히 유의미한 피해를 주지는 못했다. 차라리 아까 전에 로운이 나무를 사용하는 게 더 나았다.

이대로라면 결국 해일에게 두들겨맞다가 힘이 다하면 패배할 뿐이었다. 루미는 왜 태양을 소환했을까. 뭔가 노리는 게 있는 걸까.


밝은 빛을 내던 태양이 갑자기 더 밝은 빛을 내기 시작했다. 이어서 놀라운 광경이 펼쳐지자 민정은 눈을 부릅뜨고 잔뜩 집중해 지켜보았다.


“감동으로 세상을 물들여 주세요. 아름다운 노을이여.”


루미가 서정적인 주문을 외자 태양이 일순간 모든 빛을 거둬들였다. 주변이 잠깐 어두워지더니 곧바로 폭발하는 듯 빛나며 주홍색 빛을 레이저처럼 어지럽게 쏘아댔다. 약간은 살벌한 그 모습은 아름다운 노을이라기보다는,


“미쳐 날뛰는 태양 폭발 같다.”


종말이 온 것처럼 매서운 공격이었다. 잘 모르는 민정이 대충 보아도 파괴력은 아까 전 공격 입장이었을 때의 화염 태풍 공격보다도 더 강한 듯 보였지만 루미는 그렇게 지친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오래 기다린 보람이 있었던 것이다.

해일조차도 표정이 변했다. 그는 폭발하는 ‘노을’을 막기 위해 총으로 수많은 폭발을 일으켰다. 유동적이고 지속적으로 몰아치는 태양빛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비효율적으로 영력을 소모해 넓은 범위를 연속으로 폭발시켜야 했다.


펑- 펑-


민정은 폭발음이 연달아 들리고 루미의 태양빛과 그것을 막아내는 폭발의 빛들이 서로 얽히는 것을 지켜보았다. 거기에 루미의 바람과 로운의 나무가 얹어졌다. 그리고 해일이라고 맞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공격들 사이로 나래의 방패를 두들겼다. 모두가 각자의 모든 것을 걸고 싸우는 모습을 보며 지금이 결정적인 순간임을 깨달았다. 여기서 승부가 정해질 것 같았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흐른 후 그녀의 예상대로 되었다.

태양빛도 사라지고 나무와 바람은 약해졌지만 총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은 전혀 약해지지 않았다. 바람과 나무는 방패에 닿기 전에 폭발을 조금 약해지게 만들 뿐이었다. 굳건히 서 있던 나래는 점점 표정이 일그러졌고 몸이 심하게 떨렸다. 세 천사의 패배는 시간문제였다.


꽝꽝거리는 무서운 소리가 끊임없이 났고 그때마다 멀리서 발생하는 강한 충격이 전해졌다.  


‘이게 패배인가...’


자기를 지켜 주는 천사들이 다치고 힘을 잃어갔다. 지금이야 모의 전투이지만, 진짜 악령과 사탄에게 당하게 될 수도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쿨럭!-”


나래가 피를 토하며 주저앉았다. 땅에 꽂았던 방패가 사라졌다. 민정은 이만큼 버틴 것도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폭격 같은 해일의 공격이 뚝 그치고 전투 종료를 선언했다.


“이만하면 된 것 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가쁜 숨을 내쉬는 루미가 대답했다. 로운과 나래는 헥헥거리느라 대답하지 못했다. 나래가 피를 토하긴 했지만 많이 다친 것 같진 않았다. 민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바로 본부로 복귀할까요?”


해일이 루미에게 물었다. 루미는 천사들의 상태를 점검했다


“음, 다들 괜찮아?”


“네, 괜찮습니다.”


헐떡거리는 나래가 입가의 피를 닦으며 대답했다. 그들은 순간이동하여 제2본부로 이동했다. 의자가 준비되어 있어 민정과 천사들은 앉아서 한숨 돌렸다.


“어땠어요? 재밌었죠?”


로운이 밝은 목소리로 민정에게 물었다. 민정에게는 꽤 살벌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모의 전투였다고 생각한 로운이 일부러 가벼운 듯이 이야기한 것이다.


“네, 다들 정말 너무 멋있었어요. 루미 천사님 기술들도 엄청 화려하고 다양하고, 로운 천사님도 마찬가지고. 해일 천사님은 엄청 강력하시고. 완전 영화 보는 것 같았어요.”


민정은 흥분해서 이야기했다. 실제로 많은 감명을 받았기도 했고 천사들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천사님들은 이게 일상이라는 건가요? 정말 고생이 많으시겠어요.”


“저희가 선택한 길인걸요. 아무튼 앞으로 사탄이든 악령이든 위험한 놈들과 싸우는 걸 볼 수도 있을 텐데 대충 이런 느낌일 겁니다. 민정씨는 저희의 보호를 받으시면 됩니다.”


해일이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그러나 민정은 감정의 온도가 달랐다.


“궁금한 게 있어요.”


“질문하세요.”


“천사님들은 왜 저를 경호하시는 거예요?”


“민정씨를 왜 경호하냐구요?”


“궁금해요. 저는 미션 때문에 억지로 어쩔 수 없이 싸웠잖아요. 천사님들은 선택하신 길이라는데 이 길이 어렵고 힘든 길 아닌가요? 왜 수호천사가 되기로 하신 건지 알고 싶어요.”


진지하고 뜨거운 눈빛인 민정의 질문에 천사들이 서로 눈치를 살폈다. 일단 해일이 대답했다.


“그건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고, 천사들마다 제각각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만.”


“그럼 천사님들마다 나름대로 이야기해 주세요.”


다른 천사들이 해일의 지시를 기다렸다. 해일은 사념으로 전달했다.


[좀 예상치 못한 질문이네요. 그렇게 중요하진 않을 테니 각자 적절하게 이야기하시면 될 것 같아요.] 


“음... 저는 제가 하고 싶어서 수호천사가 되기로 했어요. 천사들의 업무도 다양한 만큼 종류도 엄청 많은데, 수호천사만큼 힘들지만 보람찬 일은 없거든요. 솔직히 인간을 지킨다는 것이 고생한 만큼 결과가 항상 잘 나오는 사명은 아니에요. 때로는 고생만 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만큼 천사들 사이에서는 최고의 사명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요.”


자유분방한 로운이 제일 먼저 솔직하게 말했다.


“저도 비슷합니다. 천사가 가지는 가장 고귀한 사명이 인간을 보호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방어 특화인 경찰을 선택한 것도 있고요.”


이어서 나래가 말했다. 다음은 루미였다.


“고귀한 것은 경호천사의 사명뿐만이 아니죠. 인간의 영혼이 귀하고 아름답기 때문에 그를 지키는 천사의 사명이 고귀한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우시겠지만...”


말하면서 겸연쩍다는 듯 웃는 루미는 분위기에 휩쓸려 괜한 말을 했다는 말투였지만 해일이 그녀의 말을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가치가 있습니다. 맞고 찢어지고 죽더라도 또 뛰어들 가치가 있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진작에 때려쳤겠죠. 전 의미 없는 일을 싫어하거든요. 내 손에 쥔 먼지만한 작은 희망이라도 붙잡을 의미가 있는 세계입니다. 그게 제가 인간의 영혼을 위해 노력하는 이유죠.”


여기저기 그을리고 상처가 난 다른 천사들과 달리 가벼운 운동을 한 듯 산뜻한 상태의 해일이 대답했다. 민정은 이 천사가 방금 말한 것처럼 작은 희망을 붙잡고 눈물로 도전한 경험이 있는지 궁금했다.


아마 그러지 않았을까. 나래의 말에 따르면.


“다들 고맙습니다. 저를 위해서 많이 고생하신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민정이 천사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비록 짧은 대화로 천사들의 신념과 의지를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민정은 그들이 자신들의 임무를 귀하게 여긴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다른 천사들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지만 해일은 눈조차 깜박이지 않았다.


“답이 되었나요? 질문이 더 없으시면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다음 여정을 시작하시죠.

다음 여정은 잠깐 쉬어 가는 느낌으로 간단하게 감상용으로 할 겁니다.”


“쉬어 가는 거 맞아요? 제가 두 번 속기는 싫은데...”


“정말입니다. 민정씨, 신주연이라는 사람을 알고 계시죠?”


“어? 주연 언니요? 학교 선배인데. 왜요?”


“신주연씨가 지금 민정씨를 만나러 병원으로 가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거기서 신주연씨의 영혼을 만나볼 겁니다.”






민정이 모의 전투 여정을 하기 30분 전.

김현숙은 어제 휴대폰에 수신된 메시지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안녕하세요, 민정이 어머님. 저는 민정이 학교 선배인 신주연이라고 합니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민정이의 병문안을 한번 가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김현숙이 민정과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긴 했지만, 신주연이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봤다. 친하게 지내는 선배가 있다는 것도 들은 적이 없었다.

따라서 신주연이 정말로 병문안이 목적이 맞는 것인가 의심이 들기도 했고, 또 어려운 상황에 타인을 맞이하기가 부담스럽기도 했다.


‘너무 고맙죠. 언제든 환영이에요.’


그러나 결국 김현숙은 신주연을 부르기로 마음먹었다. 민정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집이든 가게든 친구를 데려오는 일이 없었다. 김현숙은 궁금했다. 민정이 어떤 사람들과 함께 살고 공부하고 밥을 먹고 무엇을 했는지.


그리하여 김현숙은 오랜만에 깨끗이 씻고 화장도 했으며 누워 있는 민정의 머리도 감기고, 어렵게 지갑을 열어 포도와 케이크를 준비했다.

로운은 그런 김현숙의 동향을 해일에게 보고했다. ‘모의 전투’를 하기 직전, 나래가 민정과 대화하고 있을 때였다.


“김현숙씨가 오랜만에 의욕적으로 움직이고 계세요. 지금까지는 제대로 씻지도 않으시고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하셨는데. 주연이가 온다고 하니까 씻고 과일도 사 두셨네요.”


“그런가요. 나쁘진 않군요.”


민정이 극단적 선택을 한 이후 더욱 절망에 빠진 김현숙이 조금이나마 의욕을 회복하자 로운은 기뻐했지만, 해일은 김현숙의 정신적 회복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신주연이 한 번 방문해 준다면 민정이 여정에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이기에 신주연 경호 팀에 신주연이 병문안을 올 수 있도록 요청을 했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신주연이 일찍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기회를 잘 잡아야 합니다.”


순간 웃고 있던 해일은 눈에 힘을 주었다. 입은 웃지만 사나운 눈에는 커다란 열망과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것은 그가 이번 여정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표현하는 방법이었다. 루미와 로운도 덩달아 표정이 심각해졌다. 해일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신주연은 당연히 그쪽에서 잘해 줄 거고, 민정이도 본인이 무언가 하기보다는 그저 신주연의 모습을 잘 보기만 하면 되니까요.

민정이가 신주연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려면 이 만남을 조금 더 성장한 후에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긴 했습니다. 지금은 신주연 영혼을 본다고 해서 큰 깨달음을 얻지는 못할 겁니다. 최대한 그럴 수 있도록 준비는 하겠지만 어느 정도는 말 그대로 하늘에 맡기게 될 것 같아요.”


해일이 표정을 풀고 빙긋 웃었다. 루미가 걱정을 담아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정이가 주연이한테 어떤 마음인지가 중요하겠죠. 해일 천사님도 아시다시피, 민정이는 주연이를... 불편해하죠.”


그녀의 우려대로 민정은 신주연이 병문안을 오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당황했다.


“주연 언니가요? 그 언니가 제 병문안을 왜 오나요?”


이전 12화 사연녀와 그녀의 수호천사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