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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의 식탁 이효진 Feb 18. 2017

명절 보내는 남자

제주에 사는 남자, 네마음을 보여줘~!

<명절보내는 남자>
 
남자는 이날을 기다려왔어요
한달전부터 아기다리 고기다리며 기다려온 민족 최대의 명절.. 설날!!!!
남자는 며칠 전부터 기분이 들떠있었대요..
오랜만에 친구들 만날 생각으로, 술한잔 할 생각으로!
하지만 남자, 올해는 기분이 별루래요.. 좀 아깝대요.. 기분 나쁘대요
올해 설날은 주말과 딱!!!! 겹쳐버렸거든요
거기다 이 무슨난린지, 발렌타인데이와 설날이 떡하니 합체가 된 날이라는 거에요
못내 아쉽고 속상하다 말하는 남자!!!


남- 초콜릿은 물건너 갔구나~~~··


올해는 설날에 발렌타인데이가 파묻혀 버렸대요. 남자의 희망도 마음 안에 파 묻어버릴까 생각했다가. 그래도 조금의 희망은 걸기로 해요.. 아니, 희망을 걸어요.. 하지만 역시나 헛물이에요... 헛물 단단히 켰나봐요. 초콜릿 준비가 웬말이에요? 아내는 차례상 준비로 바빠요
 
남자도 바빠요.. 차례상 때문이 아니에요.. 휴대전화 눌러대기 바빠요. 남잔 약속 만들어내기 바빠요.

 
남- 이번 설에 집에 내려올 거지? 서울이야? 뭐야? 벌써 내려왔다고?


초등학교 모임, 중학교 모임, 고등학교 동창 모임, 대학동창 모임.. 인터넷 동호회 모임에.. 모임은 왜 그리도 많은지 두탕 세탕은 기본이에요
아내는 옆에서 말이 많아요, 말만 많은게 아니에요. 입도 삐죽 튀어나와 이러쿵 저러쿵 불만이 많아요. 차례비용은 얼마가 드네 마네.. 말들이 참 많아요. 남자는 관심이 없어요. 관심 안 둬도 그동안 아낸 잘 알아서 해왔거든요. 하지만 오늘따라 아내 말이 많아요. 구박에 면박에 타박까지 쓰리박 날려주시니,남자는 어쩔수가 없어요. 아내의 잔소리에 못이겨 결국 함께 장을 보러 가요. 사야할 건 왜 그리 많은지 이것 사고 저것 사고 정신이 없어요. 거기다 하나 살 때마다 남자에게 탁탁 안겨주는 게 그새 남잔 짐꾼으로 취직이 됐나봐요.
 
장보는 것조차도 이렇게 힘든데.. 차례상은 또 어떻게 차릴지 그제서야 아내의 어려움을 이해해보는 남자. 그래서 슬슬 아내 눈치를 살펴요.. 하지만 아내의 눈치만 살피느냐... 그게 아니에요..살필 눈치도 많아요. 집안에서의 눈치까지!!! 명절에는 어르신들 눈치보느라 아내 돕기가 힘들어요. 같이 전부치고 동그랭땡 만들고 하다못해 콩나물이라도 다듬어 보려고 해도.. 어르신들의 부리부리한 시선이 두려워 부엌에는 얼씬도 못하는 남자에요. 그 대신 절하고 차례 지내고 다른 일로 바쁘대요.

세배 주고 받고~~~· 덕담주고 받고


남- 그래.. 새해에는 원하는 대학 가고!!!


못 먹어도 고로 가라 말해요.
대학 go!!! 취직 go!!! 시집 go!!! 장가 go!!!  덕담으로 go go!!! 를 외쳐요.. 준비해둔 세뱃돈도 쓰윽 내밀어요..
올핸 주머니가 얇아져 힘이 덜 들어간 세뱃돈!
은행에서 찾아둔 빳빳한 신권이라지만 남자 마음의 눈에는 축쳐져보여요. 조카 녀석의 징징거림에 더욱더 기운 잃고 처져보이는 세뱃돈이래요
팍팍!!! 기운 팍! 힘을 실어줘야할 세뱃돈에 자꾸만 조카녀석은 불만을 터뜨려요.. 작년은 삼만원이었는데 올해는 어째서 오천원짜리 석장이냐 불만이에요. 아내의 궁시렁에 모자랐는지 조카까지 보태서 징징대고.. 이러니 명절날에는 귀구멍 눈구멍 모두 다 활짝 닫아두고 싶은 남자들이에요.
 
하지만 그 어떤날보다 귀가 바쁜 명절날!!!!!!
이번에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로 귀가 시끄러워요
쏟아내는 정치 얘기들.. 올해는 지방선거가 있어서 찧어대는 입방아에 귀가 더 시끄러요.


남- 거난... 고등학교 동창.. 가이.. 가이네..집
 누가 선거에 나온댕게..


모이면 늘 빠지지 않는 정치 얘기!!! 거기다 누구집 아들이 취직을 했다느니 어느 직장에 누가 어느 직책이라는 둥 안 나오면 섭한 명절의 18번 이야기들이에요
이번에는 부모님 건강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했어요


남- 당신 탓이오.. 내탓 아니오.. 당신 탓이로소이다~


서로 탓하기 바빠요.. 오랜만에 만난 서울서 내려온 가족과 괜히 얼굴 붉히는 일이 많아져요.. 일로절로 맘 상하고..피곤하고 힘들어요
1년 365일 처자식 먹여살리느라 뼈골이 빠지는데 명절날이라고 편한법이 없어요.
아내는 아내대로 입이 툭 튀어나와있고.. 이눈치 저눈치에, 이 얘기 저 얘기에 산만하고 정신없는 명절이에요
 
그래도 모처럼 집안에 활기가 넘쳐요
평소 만나지 못했던 일가친척이 다같이 함께 모이니, 오랜만에 사람 사는 향기가 폴폴 전해지고 정이 흘러요.  가족들 모두 정성들여 준비한 차례상 앞에서 올해는 풍성하고 복이 많기를!  돈도 많이 벌게 해달라며 조상님께 바라는 명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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