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포기한 중1 아들에게
남자아이여서일까. 우리 큰아이는 어릴 때부터 유난히 군대 놀이를 좋아했다. 군인복처럼 보이는 청록색 옷을 챙겨 입고, 철모를 쓰듯이 모자를 눌러쓰고, 장난감 총을 들고 구르고 달리고 사격 자세를 잡았다. 그렇게 아이는 그 순간은 군인이 되곤 했다. 동생과 함께 놀 때도 있었지만 동생이 관심을 보이지 않을 땐 혼자서라도 의젓하게 군대 놀이를 이어갔다. 그 놀이를 통해 언젠가 군인이 될 거라는 믿음까지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뛰놀던 아이가 어느새 훌쩍 자라 중학생이 되었다. 지난 25일, 방 정리를 하다 아이의 옷장에서 그때 입던 옷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는 그 앞에서 멈칫하더니 말했다.
"군대 놀이 해야지."
그리고는 주섬주섬 옷을 입어보더니 웃으며 말한다.
"엄마, 옷이 작아졌어."
자기가 얼마나 자랐는지도 모른 채,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걸까? 옷이 작아진 걸 알고도 아이는 바로 바지, 남방, 모자까지 챙겨 입었다. 그리고 장난감 총을 들고는 다른 방으로 들어가 신나게 군대 놀이를 시작했다. 둘째는 TV에 빠져 있었고 큰아이는 혼자서도 그렇게 잘 논다. 도대체 뭐가 재미있을까 싶어 방문을 열고 물었다.
"뭐 해?"
"군대 놀이."
"아직도 군대 놀이야? 재미있어?"
"응. 스마트폰 하는 것보다 낫잖아."
나는 그 말에 피식 웃음이 났다. 그래, 스마트폰 붙들고 있는 것보단 낫지.
그러고 보니 그 시절 아이의 꿈은 군인이었다. 초등학교 3, 4학년 무렵, 아이는 사관학교 이야기까지 하며 눈을 반짝였다. 군대 놀이를 하고, 군인 관련 영화를 찾아보고 감상문을 쓰고 관련 책을 읽고 자신의 꿈을 글로 적기도 했다.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고 스스로 말하던 때였다. 물론 지금은 공부 포기를 선언했지만, 꿈을 향해 나아가던 시간이 분명히 있었다.
가만히 돌아보니 아이의 꿈에도 변천사가 있었다. 한때는 즐겨보았던 애니메이션 주인공인 또봇이 되겠다 하고, 또 어느 날은 도라에몽이 되고 싶다고 했다.
"군인이 될래요."
"외교관이 될래요."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될래요."
"자전거 경주 선수가 될래요."
"자전거 수리공이 될래요."
"자전거 가게를 차릴 거예요."
그때마다 아이는 반짝이는 눈으로 자신의 꿈을 말했다. 하지만 나는 최근에 이렇게 말했다.
"자전거는 무슨… 공부나 해."
아이의 꿈은 그렇게 자라고, 바뀌고, 흔들리면서 오늘까지 이어져 왔다.
▲아이의 꿈의 변천사아이의 꿈은 그렇게 자라고, 바뀌고, 흔들리면서 오늘까지 이어져 왔다. ⓒ 이효진
아이는 원래 무엇인가에 빠지면 그 세계에 온몸을 던져버린다. 한 번 빠지면 그것밖에 보이지 않는 아이. 요즘은 자전거에 빠져 있다. 온 세상이 자전거로만 보이는 듯하다. 그 열정은 누구보다 아름답다. 하지만 엄마인 나는 걱정이 앞선다. 지금은 자전거가 전부처럼 보이지만, 언젠가는 또 새로운 꿈이 아이 안에서 피어날 것이다. 군대 놀이에서 자전거로 옮겨갔듯, 지금의 자전거도 언젠가는 추억 속으로 들어가고 다른 꿈이 그 자리를 차지하겠지.
다만 자전거만 바라보다가 아이 안에서 다시 피어날 소중한 꿈을 놓쳐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이다. 그 꿈이 흔들리지 않고 자라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기본기, 아이가 배워야 하는 것들은 지켜줘야 한다. 그건 어떤 꿈을 꾸든 반드시 필요한 힘이니까.
그런데 지난 11월 26일 아침에도 아이는 말했다.
"엄마, 학교 가기 싫어."
"학교는 꼭 가야지."
"안 가! 나 학교 안 가!"
순식간에 언성이 높아졌다. 속으로는 이게 아닌데, 이렇게 밀어붙이면 더 멀어질 텐데, 알면서도 아이의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해 나 역시 목소리가 먼저 튀어나왔다.
"무슨 소리야, 얼른 챙기고 학교 가!"
예전처럼 착하고 말 잘 듣던 아이는 어디로 간 걸까. 사춘기라는 파도 앞에서 흔들리는 아이처럼, 엄마인 나도 매일 흔들리고 있다.
중학교 부모가 되기 전에는 몰랐다. 왜 '자유학년제'가 있고, 왜 다시 '자유학기제'로 조정되었는지. 명목상 "진로 탐색 시기"라고 설명하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사춘기라는 큰 파도가 있다. 그래, 사춘기 아이들은 진로와 공부 앞에서 가장 크게 흔들리는 시기다.
"공부 포기할래."
"학교 안 갈래."
이 말을 하는 아이가 내 아이만은 아닐 것이다. 중학교라는 공간은 생각보다 더 많은 아이들이 방황하는 곳이였다. 그래서 교육부에서도 그 방황을 '탐색'이라는 이름으로라도 품어줄 여지를 만들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시간을 활용해 자신의 진로를 탄탄히 다지고, 공부에 더 집중하는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중학교 학부모가 되고 보니, 사춘기의 파도가 세게 오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오히려 자유학기제가 너무 짧게 느껴지기도 한다. 방황하는 아이들이 조금 더 숨을 고르고 나를 찾을 시간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조심스레 들었다.
어찌 되었든 우리 아이의 자유학기제도 끝났다. 그러나 아이의 방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진로도, 공부도, 학교생활도 아직은 짙은 안개 속을 걷는 것처럼 보인다.
'아… 이제는 방황을 조금 내려놓고, 학업에도 마음을 조금은 더 기울여주면 좋으련만...'
엄마는 오늘도 스스로 마음을 다독이며, 조용히 두 손을 모아본다.
이 아이의 길이 너무 크게 흔들리지 않기를.
방황 끝에서 다시 단단한 자신을 만나기를.
그리고 엄마인 나 역시 흔들리지 않고 아이 곁에서 조용히 불을 지피는 사람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