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확행 함정
삼백 한 번째 글: 아직은 소확행을 누릴 때가 아닙니다.
소확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을 가진 줄임말이 통용되고 있습니다. 낱말의 의미로 보나 풍기는 느낌으로 보나 별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일상 속의 작은 부분에서 행복을 느낀다는 건 어쩌면 누구나가 가져야 하는 바람직한 마음가짐인지도 모르니까요.
대개 사람이라면 큰 데에서 뭔가 의미를 찾으려고 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서 대단한 성취나 발전을 이루었을 때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혹은 신변의 제반 여건들이 과거에 비해 개선되었을 때 행복을 느끼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네 인생이라는 것이 어디 그렇던가요? 앞에서 언급한 이런 류의 성취나 발전 및 변화 등이 쉽게 찾아올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닙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사람들은 대체로, 행복은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본다면 소확행은 또는 소확행을 추구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고 긍정적인 삶의 자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린 생각해 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정작 '소확행'이란 말을 유행시킨 무라카미 하루키와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엄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한 철학자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적어도 문학계에서 세계적인 입지를 굳히며 그만의 틀을 형성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확행과 우리의 그것을 동일선상에 놓고 생각하는 건 크게 무리가 있다고 말입니다.
모든 사람이 해당되진 않더라도 우린 어지간해서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또 어떤 분야에 소질이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성이 명확히 정립되어 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그냥 어제도 살아왔으니 오늘도 습관처럼 살아가는 것, 그게 일반인의 삶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그와 한낱 평범하기 짝이 없는 우리를 같은 조건으로 비교한다는 건 그 자체로 성립이 안 되는 것입니다.
출근길에, 혹은 퇴근길에 4000원 이상씩 하는 테이크 아웃 커피를 들고 다니며 우린 그것이 소확행이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소중한 시간들을 SNS에 몰입되어 타인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쾌감을 느끼거나 혹은 자괴감에 빠지면서, 이런 게 소소히 즐길 수 있는 행복이라며 자기 최면을 걸고 있습니다. 별 것 없는 자신의 일상을 글이나 또는 사진으로 올리면서 자신을 치장하고, 일면식도 없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날린 댓글과 '좋아요'에서 울고 웃으며, 행복이 뭐 별 게 있느냐며 교묘하게 자기 합리화를 시도하며 살아갑니다.
감히 말하건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은 소확행을 느끼는 소시민적 삶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대체로 월 급여의 10%에 육박하는 커피값을 쓰는 것이 어찌 소소하다 할 수 있을까요? 사회적으로는 철저히 고립되어 있으면서 사이버 상에서만 영웅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이 어떻게 행복일 수 있을까요? 단지 우리가 그렇게 생각할 뿐이지 실상은, 우리의 삶에 대해 무책임과 무개념의 태도로 일관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소확행이라는 이 달콤한 말의 함정에 걸려들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그런 작은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아직은 그런 허울 좋은 사탕발림에 넘어가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소확행을 추구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자신에 대한 탐색과 성찰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에 소질이 있는지,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본모습도 모르면서, 무슨 소소한 행복 타령을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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