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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Jun 09. 2024

부지런한 새는 아니지만…….

135일 차.

연휴 나흘 중 이틀은 일찍 일어났습니다. 그 이틀 중의 하루가 바로 오늘입니다. 따지고 보면 그리 이른 시간도 아니지만, 뭘 할 만한 일은 없어 보입니다. 글쓰기를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1시간도 안 되어 공공도서관에 가면 어차피 글을 쓸 계획입니다. 게다가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는 이유로, 가족들이 있는 곳에서 글을 쓰는 건 서로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기에, 웬만해서는 집에서 특히 아침에는 절대 책을 읽거나 글을 쓰지 않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하지 말라고 눈치를 주는 건 아니라고 해도, 그것 하나만 믿고 버티고 앉아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건 인간 이하의 짓인지도 모릅니다.


곧 집을 나서야 하니, 그러기 전에 청소기라도 돌리고 나갈까, 하는 마음이 굴뚝같습니다만, 아랫집을 생각하면 그것도 여의치 않습니다. 일종의 협정, 사실은 일방적인 통지에 지나지 않은 '아침 11시 이전에는 청소기 돌리지 않기'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빨래도 어제 개고 널었기 때문에 아직 갤 시점이 아닙니다. 설거지도 이미 끝냈으니 할 일이 없습니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집을 뛰어나가고 싶지만, 최소한 8시 20분은 넘어야 도서관에 입장할 시간과 얼추 맞아떨어지게 됩니다.


하릴없이 리모컨을 돌려 보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습니다. 역시 이번에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대한 얘기가 나옵니다. 한창 이야기를 하다 조선의 5대 궁궐에 대한 화제로 넘어갑니다. 그러고 보니 두어 달 전인가 서울에 갔을 때 창덕궁과 창경궁을 갔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 아름답다고 소문난 후원을 못 보고 그냥 돌아온 게 아쉬웠습니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가서 그런지, 바로 코앞에 가서 '사전 예약 없이는 입장이 불가'하다는 안내판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내친김에 스마트폰을 열어봅니다. 창덕궁 후원 예약 홈페이지가 별도로 있더군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한때 꽤 유행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간단한 것도 몰랐고 관심조차 없었으니 몇십 년 만에 서울에 가서도 수박 겉만 핥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고 있는데, 아내가 후원 예약은 하늘의 별따기라는 말을 들려줍니다. 원래 어떤 말을 하든 약간의 허풍끼가 있는 사람입니다. 뭐, 그렇게까지 힘들기야 하겠나 싶긴 한데, 막상 열어보니 한 번에 50명씩 입장하는데, 잔여 인원이 거의 한 자리인 상태였습니다. 서두르지 않으면 아내의 말처럼 보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단 즐겨찾기 설정을 해둡니다.


8시 20분이 되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노트북을 챙겨 넣은 백팩을 둘러메고 집을 나섭니다. 지하철 역까지 8분 거리, 30분이 약간 넘어 지하철에 오릅니다. 16분 후에 중앙로역에 내립니다. 중앙지하상가를 관통하고 있으려니 좀처럼 사람들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 서너 시간만 지나도 발 디딜 틈 없이 복잡해질 이곳이 너무도 한산해 낯설기까지 합니다. 대략 12분 정도 걸으니 오늘의 목적지인 '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전 대구시립중앙도서관)에 도착합니다. 아직 입장하지 못하고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보입니다. 8시 58분입니다.


일단 오늘 하루는 산뜻하게 출발하게 된 것 같아 마음이 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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