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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Jun 16. 2024

도서관에 있을 때

2024년 6월 16일 일요일, 맑음


도서관에 와서 네 시간 가까이 죽치고 있다. 지금 이 시각에 집에서는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도서관에 와 있을 때가 나는 마음이 가장 편안하고 행복하다. 그래서인지 정기 휴무일이나 어제나 오늘처럼 폐관 시간을 당기는 제도에 대해서는 결사반대다. 물론 내가 반대한다고 해서 정기 휴무일이 없어질 리는 없다. 주말에도 10시까지 열람실을 개방해 놓을 리도 없다. 어쨌건 간에 내 생각은 그렇다는 것이다.


몇 편의 글을 썼다. 잘 썼냐고 물어본다면 시쳇말로 '노 코멘트'다. 그건 내가 평가할 영역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설령 못 썼다고 평가를 받는다고 한들 어쩔 텐가? 오명을 씻으려면 기껏 작성한 글을 지우는 방법 말고는 없는데, 굳이 그러고 싶은 마음은 없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어쩌다 괜찮게 쓴 글이든 대부분 못난 글이든 다 내 배 아파 나은 새끼들이다. 과연 어느 새끼를 내칠 수 있을까? 그냥 싸안고 가는 것이다. 못난 글이면 어떻게든 다음에는 조금은 더 나은 녀석을 낳으면 될 일이다. 세상에서는 우월한 인자를 가진 사람이 두각을 드러내고 살아남는 게 정석인지 모르겠지만, 내 글이 최소한 나에게서만큼은 그렇게 대접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점심을 먹고 들어왔더니 노곤하다. 식곤증이라고 지금껏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내가 며칠 전 통렬한 지적을 해주었다.

"늙어서 그렇지, 뭐."

우리 나이가 뭐 늙었냐는 말을 하려다 앞에 앉은 자식들을 보니 그 말도 영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다. 하다 못해 학교에만 가도 지금의 내 나이는 젊은 축에는 결코 속하지 않는 처지에 와 있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스르르 눈이 감기려 한다. 잠이 오면 잠시 눈을 붙일 수도 있겠지만,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높이가 꽤 있는 의자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관계로, 혹시라도 낮잠이라도 자다 몸의 균형을 잃으면 굴러 떨어질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나도 모르게 코를 고는 것만큼 볼썽사나운 일인지도 모른다. 별 다른 방법이 없다. 이 일기를 발행하는 대로 서가 사이를 돌아다니며 어디, 더 빌릴 만한 책이 없는지 찾아봐야겠다. 그렇게 해서라도 오던 잠이 달아날 수만 있다면 두 시간 남짓 남은 시간도 더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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