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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Jun 27. 2024

기차에 앉아

삼백 쉰일곱 번째 글: 서울까지 달리고 싶네요.

기차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광만으로도 아직 오늘의 더위는 찾아들지 않았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오후부터 비가 온다는 예보도 마침 있었고요. 유튜브를 열어 가수 김현철 씨의 '춘천 가는 기차'라는 노래를 재생합니다. 그놈의 빌어먹을 에어팟인지 뭔지가 없어서 소리는 '0'으로 만들어 놓고 가사만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이 아침에 싸구려 감상에 젖는 거야 제 자유지만, 공공장소에서의 예절은 지켜야  하니까요.


입에서 감탄이 절로 흘러나옵니다. 아름다운 우리 강산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을 하거나 듣습니다. 또 이렇게 새삼 확인하는 것도 꽤 괜찮은 일입니다. 요즘도 춘천행 기차가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노래를 듣고 있으려니, 아니 가사를 보며 마음속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다 보니 지금 당장이라도 청량리역에 달려가고 싶습니다.


이렇게 가다 딱 한 번만 서울까지 갔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무려 12년 전부터 했습니다. 물론 단 한 번도 실행에 옮길 수 없었습니다. 만약 그런 꿈같은 일이 실행에 옮겨지는 날이 온다면, 교무실에 전화를 걸어 아프다고 핑계를 대야 합니다. 그것도 아니면 무단결근하는 날이 될 것 같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그래서 앞으로도 실행에 옮기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4시간 가까이 기차에 앉아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가면 좋겠다 싶습니다. 그러다 지겨우면 열차카페 객차로 가, 주변 사람 눈치 보지 않고 바깥 풍경을 실컷 감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겁니다. 뭔가가 하나 떠오르면 스마트폰을 꺼내어 한 편의 글을 써 봅니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제대로 찍힐지는 알 수 없으나, 눈여겨 두고 싶은 장면은 폰으로 찍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어차피 학기 중에 실행에 옮길 수 없다면, 방학 중의 하루 시간을 내어 출근한다고 둘러대고 서울까지 가 볼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시간은 생명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서울까지 무궁화호를 타고 가는 건 그다지 현명한 방법이 아니라는 말도 있고요. 시간이라는 게 더없이 소중한 건 틀림없는 사실이나, 그 소중한 시간도 추억과 맞바꿀 가치는 충분할 듯합니다. 몇 번 서울을 드나들면서 느꼈습니다. KTX나 SRT에 의존해 서울을 가는 건 꽤 무료하다는 걸 말입니다. 솔직히 전혀 낭만적이지도 않고요. 시간을 절반 가까이 단축할 수 있다는 것 외엔 아무런 장점이 없는 방법입니다. 제가 촌각을 다투는 사업가도 아니니까요.


어느 날 그렇게 해서 서울까지 가는 날이 온다면, 그날의 최상의 시나리오는, 돌아올 때 내친김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것이 아니겠나 싶습니다. 생각만 해도 마냥 마음이 설렙니다. 저만의 버킷리스트에 살짝 끼워 놓아야겠습니다.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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