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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Jul 04. 2024

화장을 고치는 여자

160일 차.

매일 아침에 기차를 타면 늘 보는 여자분이 한 분 있습니다. 생김새가 남다르다거나 뭔가 특징이 있어서 제가 그분을 기억하는 건 아닙니다. 기차 안에서 그것도 제 상식 선에선 웬만하면 하지 않을 텐데, 하는 행동을 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뭐 그렇다고 해서 그 여자분이 몰상식한 사람이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분도 분명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분일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꾼이 꾼을 알아보는 법이니까요. 아무튼 그분은 아침에 볼 때마다 민낯, 즉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입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화장이라는 것도 개인의 취향 문제이니 맨얼굴로 다닌다고 해서 그걸 뭐라고 말할 이유는 없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다른 데에 있습니다. 탈 때의 민낯이, 내릴 때에는 화장한 얼굴로 둔갑하기 때문입니다.


그 작은 물건의 이름은 모르겠는데, 여학생들이 앞머리를 둥글게 말아 고정시킨 채 돌아다니는 것도 그리 썩 좋아 보이진 않습니다. 그런데 화장이라니요? 그것도 남들이 다 보는 곳에서 말입니다. 색조 화장만 안 했다 뿐이지 거의 풀메이크업에 가까운 화장 기술을 선보이는 그분이 전 무척 궁금했습니다. 도대체 몇 시에 일어나길래 저러고 있나 싶었습니다.


기차에 앉으면 먼저 파우치부터 꺼냅니다. 편으로 눈썹을 그리고 아이스크림 뜨는 기구처럼 생긴 작은 물건으로 속눈썹을 세웁니다. 콤팩트라고 하나요, 아니면 파운데이션인가요? 그걸로 볼에 허옇게 바른 뒤에 동그란 스펀지 같은 걸로 얼굴 위에 발라놓은 하얀 분말을 얼굴 전체에 골고루 펴 바릅니다. 꽤 정성껏 바릅니다. 마지막으로 빨간 립스틱을 꺼내어 입술에 바릅니다.


그녀는 이 모든 과정을 15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해냅니다. 당사자가 보기엔 간단한 화장이라고 할지 모르겠으나, 제가 보기엔 거의 풀메이크업 수준에 가깝습니다. 사람이 전혀 딴사람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제게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남이야 화장을 하든 말든 웬 간섭이냐고 말입니다. 그게 너한테 무슨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지 않으냐고 말입니다. 당장 주변에 몇몇 사람들도 그런 말을 했습니다. 화장하는 건 자유라고 하더군요. 이걸 이렇게 보는 제가 별난 거라고 했습니다.


제가 기차를 타면 그 분만 뚫어지게 쳐다보는 건 아닙니다. 다만 제가 타는 시간대의 기차 4 호칸은 열차카페 칸인데, 지하철처럼 서로 마주 보고 앉을 수 있게 좌석이 배치되어 있어서 안 보려고 해도 고개만 들면 보입니다. 그렇다 보니 화장 한 번 해 본 적이 없는 제가 그 과정을 이렇게 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녀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제가 그녀가 보는 앞에서 전기면도기로 면도를 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하고 말입니다. 아니면 선크림을 꺼내어 온몸에 구석구석 바르고 어떤 눈빛으로 볼까 싶었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분이지만 감히 저는 그녀를 이렇게 규정지어 봅니다. 개념 없는 민폐녀라고 말입니다. 아무리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어떤 행동을 하든 법에만 저촉되지 않는다면 개인의 자유 영역에 속한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아닌 건 분명 아닌 겁니다. 집에서 해야 할 일과 밖에서 해결해야 할 일을 구분하지 못하는 그녀를 보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제가 흔히 말하는 꼰대라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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