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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Jul 05. 2024

정신없는 아침

161일 차.

항상 정신을 차리며 살아야 하는데, 어젯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오늘 새벽에 꽤 황당한 일이 제게 있었습니다. 늘 그랬듯 잠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용케도 알람소리도 듣지 않고 말입니다. 보통은 그 소리를 듣고 일어납니다. 오늘처럼 알람이 울기 전에 일어나는 날은 특별히 일찍 가야 하는 날인 경우가 많습니다. 알람 설정 시각은 5시 반이지만, 잠들기 전에 몇 번이나 '5시'를 외친 덕분입니다.


오늘 새벽에도 그런 날 중의 하나인 줄 알았습니다. 알람이 울기도 전에 일어난 제 자신을 기특하다며 칭찬하고는 욕실로 갔습니다. 세수하고 머리를 감았습니다. 심지어 면도까지 마쳤습니다. 눈에 피곤한 기색은 역력했지만, 매번 있는 일이니 그러려니 여겼습니다. 문을 열고 나오는데 오늘은 좀 지나칠 정도로 조용한 날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창밖을 봤습니다. 도저히 5시가 넘은 시각이라고 보긴 어려웠습니다. 온 천지가 암흑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얼마나 뿌려대려고 하늘이 이렇게도 어두울까 싶었습니다. 대체로 이맘때면 딴 방에서 자고 있는 아내도 움직이기 마련인데  미동조차 없습니다.


설마 했습니다. 물기가 완전히 마르지 않은 상태로 방으로 돌아온 저는 스마트폰을 열었습니다.

2:59

제 눈에 들어온 세 개의 숫자를 보고 있으려니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늙으면 잠이 없다더니 내가 벌써 그렇다는 얘기인가?'

'다시 눕지 말고 이대로 글이라도 쓸까?'

'아냐, 그래도 두 시간 반이나 더 잘 수 있는데 지금이라도 다시 누울까?'

'또 누우면 일어나서 머리를 또 감아야 하잖아?'

결국은 본능이 이성을 압도해 버렸습니다.


한 이삼 분 고민하긴 했지만, 금세 다시 눕는 데에 큰 망설임은 없었습니다. 사실 그 시각이면 모로 보나 잠을 청하는 게 맞을지도 모릅니다. 극도로 피곤한 그때에 눈을 떠 버틴다는 건 쌓인 피로를 가중시키는 꼴이나 다름없으니까요.


결과만 놓고 보면 다시 자는 게 아니었습니다. 마치 그 시각까지 버티고 있다가 그제야 잠이 들기라도 한 것처럼 세상모르게 곯아떨어진 모양입니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눈을 뜨니 6시 20분, 집 앞의 지하철역에서 6시 42분 열차를 타지 않으면 영락없이 지각입니다. 번갯불에 콩은 이렇게 구워 먹는 거란 확신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빠른 속도로 움직였는지 모릅니다. 한 번 더 세수하고 머리를 감았습니다. 채비를 마치고 집을 나서는데 보니 6시 32분이었습니다.


새벽부터 아침까지 얽히고설키며 요란하게 하루를 시작했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는 차분하고 조용한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 주를 마무리하는 날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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