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작이 Jul 15. 2024

대답 없는 너

삼백 일흔두 번째 글: 너 T야?

늘 하는 말입니다. 제가 MBTI를 그다지 크게 믿지 않는다는 것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이게 영 근거 없는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흔히 말해서 T 성향과 F 성향의 차이를 절실히 느끼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MBTI는 자기가 스스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인데, 종종 타인이 바라보는 성향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쉽게 말해서 본인은 F형(감정형)이라고 하지만, 타인이 봤을 때는 T형(사고형)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너, T야?


그렇다 보니 이런 유행어 아닌 유행어까지 생기는 판국입니다. T성향이라고 해서 사실 크게 문제 될 건 없습니다. 어쩌면 감정에 휘둘리는 F 성향보다 일을 추진하는 데에 있어선 사고형인 T성향이 더 집단에 도움이 되는 것도 엄연한 사실입니다. 다만 T 성향은 지나치게 냉정한 관계로 자잘한 감정의 흐름을 포착하지 못한다는 맹점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정서적인 공감을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올해 동학년 부장 교사를 맡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그 일을 하다 보면 업무를 전체적으로 수합하거나 의견을 물어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우리 동학년에서는 'T' 성향인 분들이 많습니다. 아니 적어도 제게는 그렇게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솔직히 요즘 좀 지친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산에 올라가서 '야호'라고 했을 때 메아리가 되어 돌아와야 흥이 나듯, 어떤 메시지를 띄워 놓으면 반응을 해야 일을 이끌고 나갈 수 있는 법인데, 어지간한 일엔 묵묵부답인 'T'들 사이에서 혼자 발을 동동 구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T이지만  어느 한 선생님은 이런 저를 보고 그러려니 여기라고 하지만, 좀처럼 그 '그러려니'가 안 되더군요. 물론 이 선생님은 감사하게도 제 앞에선 자신의 성향과는 반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바로 그 선생님은 사람들의 그런 모습에 아무런 동요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처음엔 제가 너무 민감해서 그런가 싶었습니다. 필요한 메시지를 보낼 때마다, 혹은 반드시 답신이 필요한 경우에도 제대로 답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바쁘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이 되니 그런 모습이 바빠서 그런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성향 혹은 기질의 차이 때문인 듯했습니다. 여기에서 전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다양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자극 혹은 의견에 대한 반응 및 동의(혹은 비동의)가 제대로 안 되는 그들을 제가 마냥 이해해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왜 그들이 그러는 건 당연하게 생각되고, 그들에게 제가 최소한의 반응을 바라는 건 지나친 기대 혹은 과욕이 되는 걸까요? 네, 맞습니다. 정작 그들은 아무렇지 않지만, 완벽히 'F' 성향인 저는 너무도 큰 상처(?)를 받습니다. 고작 이런 걸로 상처라고 표현해도 될까요?


처음에 우리 동학년이 결성되었을 때 다들 환상의 조합이라며 부러워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못 가 이런 문제가 불거질 거라고는 꿈에서조차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정말 그들이 정상이고, 제가 오히려 비정상인 걸까요? 어차피 저는 쉽게 공감을 하는 편이니 T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으레 그러려니 공감하며 마음에 담아두지 않아야 할까요?


짧은 제 소견입니다만, '나는 T 성향이니 당신들이 이해하라'라고 고집하는 건 분명 경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설마 그들이 그렇게까지 할까 싶긴 합니다. 어쨌건 간에 단체 생활을 한다는 건 서로가 서로를 맞춰가야 하는 것 아닐까요?


꾸역꾸역  학기를 마치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 업무적으로 보자면 나무랄 데 없이 완벽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다들 경력은 얼마 안 되지만, 현직에서 25년째 몸담고 있는 저보다도 훨씬 능률적이고 효율적으로 일하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이 역시 어쩌면 학년 부장 교사로서 크나큰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만 저에게는 여전히 그 심정적인 부분에서의 단절감이 더 크게 와 닿습니다. 앞으로 한 학기를 또 어떻게 지내야 할까요?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매거진의 이전글 엎드리는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