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수공원 Jul 16. 2024

몸을 따라 해

공부하지 말고요!

머릿속에 전체를 담아 일단 몸을 똑같이 만들어요. 기억에 남은 각도대로 해보세요. 겁내지 말고.


아니, 당신 몸하고 내 몸이 다른데 똑같이 어떻게 만들어! 네 울퉁불퉁한 각도는 어디를 기준으로 재냔 말이야. 겁은 안나! 막막할 뿐이지!


다리를 앞으로 뻗어 무릎을 벌리고 일어나야 해요. 좋아요. 가만히 엉덩이를 앞으로 말은 다음 허리를 밖으로 펴면 돼요.


무릎을 벌리라고? 그런 다음 일어나라고? 엉거주춤 흔들흔들 이게 맞는 거니? 어디에 힘주어야 할지 중심을 잃었는데 엉덩이를 어떻게 말아야 하지? 서로 붙어있는 허리와 엉덩이를 따로따로 반대로 하라 그러면 마술을 부리라는 거야?




백만 개쯤 질문을 담고 있는 내 몸짓에 호랑이 표정으로 쉬자고 한다. 쉬는 것도 이리 서워서야 제대로 쉴 수나 있겠냐고. 만날 이리 가 혼이 다 나갈 것 같다.


그래도 이 믿음은 내 습관인지도 모른다. 사람을 믿는 게 편안하고 좋다. 믿으면 좋아하게 되고 좋아하면 존경하게 된다. 그냥 따르면 된다.


머릿속으로 공부하는 게 보인단다. 공부 같은 건 다 필요 없단다. 여기선 그냥 몸만 따라 하면 나머지는 자기가 다 해준단다. 아니 남이 해주는 거 말고 내가 알아서 하고 싶다고요라고 말하진 못했다. 멋쩍게 웃으며 그러겠노라 했다.


하고 싶은 걸 관찰하고 혼자 책을 읽고 연구하고 결국 내 것으로 만들며 느껴온 쾌감의 습성을 어떻게 한순간에 버릴 수 있을까.


수영할 때 다이빙으로 입수하는 방법, 수영장 끝 벽을 차고 퀵턴 하는 방법을 책을 보고 배웠다. 수영장 하나 정도의 물을 마신 후에야 터득했지만 날렵히 물속을 가르고 거스르는 기술은 그 어떤 순간보다 큰 기쁨을 준다. 


그를 만나며 언젠가는 하게 될 키스를 위해 소설을 읽다가 그 황홀함을 살짝 노트해두기도 했다. 막상 첫 키스를 하고 나니 당황한 그가 그런 건 어디서 배웠냐고. 책에 나오더라 하고 나니 나는 어쩌면 체온이 있는 생물적 인간은 아닌 것 같았다. 싱글살이가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무작정, 배우는 건 다 좋다. 배워 오랫동안 내 것으로 만드는 그 과정이 소중하다. 그런 과정이 결국 삶을 촘촘하게 채우는 거라 믿어 왔다.


결론에 벌컥 다가가길 원하지 않는다.

돈다발이 툭! 떨어지길 원하지 않는다.

원나잇스탠드의 공허를 원하지 않는다.


단 한 번의 예술로 평생살이를 꿈꾸는 것은 진정한 예술가만이 할 수 있다. 그런 예술적 원나잇스탠드는 찰나에 가장 찬란한 모습을 보이고는 영원히 잦아든다. 단 한 번의 불꽃, 그런 뜨거운 클릭의 순간, 스카알렛 주홍의 태양이 보여주는 일몰의 녹색 광선 같은 원나잇스탠드는 예술가의 몫이다.


나는 예술가가 아니다.

나는 배우며 공부한다.

나는 익히고 실행한다.

나는 평범한 인간이다.


남의 근육을 따라 하며 내 근육을 만든다지만, 영상을 보며 평생을 따라 할 수도 있겠지만, 오롯이 내가 흘린 땀과 몫으로 있고 싶다.


내 몸은 내 것이다. 내 것이어야 변화하는 것이다. 남이 자신을 변화시킬 있다는 가장 허황된 판타지다.

매거진의 이전글 대답 없는 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