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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Jul 15. 2024

엎드리는 날

0764

초복初伏


처음으로 엎드리는 날이다.


내가 엎드리고 그 옆에 개를 엎드리게 하니 비로소 복날이다.


엎드리는 것은 맡김이다.


사제가 되기 위해 서품식을 할 때 신에게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모습과 같다.


초복의 자세는 자연의 섭리에 엎드림으로써 나를 맡기는 것이다.


추위는 애써 뛰어넘지만越冬 더위는 피할 수 없다면 엎드리는 것이 최선이다.


시원한 바닥에 몸을 붙이고 있으면 어느새 더위는 잊혀지고 선선한 바람이 등을 쓰다듬는다.


엎드리는 것은 순종이다.


순순히 자연의 이치를 따르겠다는 것이다.


까마득한 겨울을 그리워하지 않고 현재의 난관을 고스란히 받아 안는다.


자리를 지키다 보면 한줄기의 소낙비가 위로해 줄 것이고 한줄기의 바람이 나직이 속삭여줄 것이다.


너의 날이 곧 올 거야


엎드리는 것은 배꼽만 바닥에 닿는 게 아니라 팔다리를 쭉 뻗는 것을 포함한다.


낮아진 듯 보여도 쉬 웅크려 위축되는 게 아니다.


겸허의 힘은 이와 유사하다.


도드라져 자신을 내세우지 않아도 돋보이는 역설.


초복은 보신의 날을 넘어서는 의미를 가진다.


중복을 거쳐 말복까지 세 번만 진지하게 엎드린다면 네 번째 복날인 광복에는 만세를 부를 것이다.


그날에는 엎드림에서 일어나 복을 끌어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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