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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치고써 Aug 02. 2023

희망, 꿈, 설렘

스물일곱 번째 글: 그 순수했던 마음은 어디로 갔을까?

아침에 출장을 가려고 기차를 기다리다 한컷 남겼다. 문득 잔뜩 달궈진 선로를 따라 올라가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물론 그럴 수는 없다. 선로에 뛰어들면 범칙금이 1,000만 원이라는 표지판을 본 기억이 났다. 범칙금도 범칙금이지만, 이제는 그러다 자칫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알기에 누군가가 그렇게 하라고 떠다밀어도 막상 그렇게 할 수 없을 터였다.


선로 끝에 부옇게 안개 낀 듯한, 막 어둠을 벗어나 밝은 빛이 닿는 곳에 도달한 듯한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기차가 들어오기 전 저 지점을 본 순간 아주 오래전 생각이 났다. 맞다. 아주 오래전이라고 표현하는 게 옳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 계시는 어머니 말씀을 빌자면 아마도 그때가 대여섯 살 정도였던 걸로 알고 있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1970년대 후반은 막 가난의 티를 벗어던질락 말락 하던 시기였다. 당연히 우리 집도 형편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경제적인 여건이 넉넉하지 않은 사람이 사는 곳엔 항상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골목이, 그것도 겨우 두어 사람 마주 보고 지나갈 수 있을 듯 말 듯한 골목이 많았고, 집으로 가기까지 계단이 많았으며, 또 더러는 언덕을 끼고 있는 집이 많았다. 그때 그 집은 언덕을 끼고 있었는데, 그 어릴 때에 동네 친구들과 밖에 나가 놀 때면 어머니가 늘 신신당부하던 말이 있었다.

- 무슨 일이 있어도 저 언덕 너머로는 가지 마라.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이 그러하듯 다른 아이들도 똑같은 얘기를 들으며 낮동안 신나게 놀았고, 기껏 해봤자 언덕 위에 올라 뭔가를 타고 내려오는 게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 중에 한 명이 내게 그런 말을 했다.

- 야, 우리 저 언덕 너머로 가보자. 저기를 넘어가면 꼭 뭔가가 있을 것 같지 않아?

유독 호기심이 많은 계집아이, 무엇이든 지기 싫어하는 아이, 남자아이들과 스스럼없이 뒤엉켜 놀던 아이였다. 구슬 따먹기를 하다 된통 잃으면 분한 마음에 밤에 잠 못 이루던 그런 아이였다.

그 아이의 말은 내게 기름을 부은 꼴이 되었다. 나 역시 언젠가는 저 언덕 너머로 가보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아이와 나는 일단 가지고 놀던 세 발 자전거를 집 대문 안에 들여놓고 밖에서 다시 만났다. 둘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그 가파른 언덕을 걸어 올라갔다. 그 어린 나이에, 그 짧은 다리로 막상 걸어 올라가기엔 무척 버거웠지만, 우리 둘은 진짜 그런 생각을 했다. 언덕을 넘어가면 분명 뭔가가 있을 것이라고, 그 아이와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세상이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마치 그때의 마음은 무지개를 보고 그 끝에 꼭 닿고 싶어 마냥 무지개를 따라 걷는 마음과 같았을 것이다. 다리도 아프고 힘들었지만, 그때의 나와 그 아이에게는 뭔가 새로운 세상을 볼 거라는 꿈에 부풀어 있었고, 걷다 보면 그 꿈을 이룰 거라는 희망이 있었으며, 그 세상을 만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무척 설렜었다.

몇 시간을 걸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점심 먹자마자 걷기 시작한 것이 해가 질 때까지 걸었던 기억이 났다. 사실 우리가 걸었던 길은 꽤나 단순한 길이었다. 언덕을 올라가자마자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줄곧 걸었기 때문에 겁은 났지만, 어두워지자마자 그대로 몸을 돌려 반대로 걷기만 하면 되었다.

- 야! 우리 이러다 다리 부러지는 거 아냐?

울먹울먹 하며 걷던 그때 다시 우리 동네가 있는 언덕 위까지 왔다. 물론 그날 동네는, 아이 둘이 없어졌다고 발칵 뒤집혔다. 그 아이와 나는 울면서 언덕을 걸어 내려갔고, 엄마 품에 안기자마자 집에 돌아가서 실컷 두들겨 맞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 작은 머리에서, 가슴에서, 어떻게 그런 생각이 생겨났을까?

그런 희망과 꿈과 설렘으로 가득했던 그 시절이 오늘 아침 따라 무척 그리워졌다. 과연 그것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어른이 된다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닌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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